[여적]‘공식파괴’ 민희진 기자회견
하이브와 경영권 분쟁에 휘말린 민희진 어도어 대표의 기자회견은 한편의 ‘원맨쇼’였다. 지난 25일 서울 서초구 한국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민 대표는 울다가 웃고, 욕하다가 죄송해했다. 2시간을 넘긴 기자회견은 각종 밈(인터넷 유행 콘텐츠)을 만들어냈고 주말 내내 소셜미디어의 타임라인을 도배했다.
민 대표는 미리 준비한 입장문을 읽는 대신, 자신의 억울함을 쏟아냈다. 도중에 반말이 툭툭 튀어나오는 건 예사였고 “시XXX” “지X” “개저씨” 등 비속어도 등장했다. “대기업만 네트워크 이런 걸로 막 뿌리는 거 막 받아쓰지 마시고 가난한 애들 것도 좀 써주세요”라며 기자들을 성토했다. 복장도 기자회견과는 어울리지 않는 차림이었다. 보통의 기자회견이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파격의 연속이었다.
민 대표로선 악화된 여론을 반전시키기 위한 퍼포먼스가 필요했을 것이고, 일단은 적중한 듯 보인다. 회사 상사를 상대로 할 말을 제대로 하는 민 대표의 결기가 직장인들, 특히 MZ세대들에게 쾌감을 불러일으켰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민 대표 이전에도 분위기를 반전시킨 역대급 퍼포먼스가 있다. 가수 나훈아가 2008년 자신의 신체 훼손 괴소문에 수많은 취재진 앞에서 바지춤을 움켜쥐었던 기자회견이다. 당시의 회견은 언론의 선정성을 반성하는 계기가 된 바 있다.
많은 사람들이 민 대표의 기자회견을 유튜브 생중계로 지켜봤다고 한다. 욕설을 불편해하거나, ‘속이 시원하다’는 엇갈린 평가들이 유튜브 댓글창을 빠르게 채웠고, 기자회견을 재가공한 영상들이 속속 등장했다. 기자회견의 수위 높은 발언들만을 발췌한 ‘민희진 기자회견 프리스타일 오피셜’ 영상은 28일 오후 6시 현재 조회수 290만회를 넘었다. 민 대표가 유튜브의 이런 속성을 염두에 뒀다면 천재라 할 수 있다. 아니라면 뜻밖의 수확인 셈이다. 의도했건 안 했건 민 대표가 미디어 환경의 변화로 달라질 수 있는 기자회견을 보여준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하이브가 주장하는 법적 이슈를 둘러싼 내막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K팝 왕국’의 그림자를 보여준 하이브와 민 대표의 싸움을 바라보는 마음은 편치 않다. 부디 어른들 싸움에 아티스트들만 상처를 입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이명희 논설위원 minsu@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김문기의 추석 선물’ ‘딸에게 보낸 동영상’···이재명 ‘선거법 위반’ 판결문
- 조국 “민주주의 논쟁에 허위 있을 수도···정치생명 끊을 일인가”
- 최현욱, 키덜트 소품 자랑하다 ‘전라노출’···빛삭했으나 확산
- 사라진 돌잔치 대신인가?…‘젠더리빌’ 파티 유행
- “민심의 법정서 이재명은 무죄”···민주당 연석회의 열고 비상행동 나서
- 40대부터 매일 160분 걷는 데 투자하면···수명은 얼마나 늘어날까?
- 드라마인가, 공연인가…안방의 눈과 귀 사로잡은 ‘정년이’
- 중학생 시절 축구부 후배 다치게 했다가···성인 돼 형사처벌
- 은반 위 울려퍼진 섬뜩한 “무궁화꽃이~”···‘오징어게임’ 피겨 연기로 그랑프리 쇼트 2위
- ‘신의 인플루언서’ MZ세대 최초의 성인···유해 일부 한국에 기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