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체’를 보다가 [윤지로의 인류세 관찰기]

한겨레 2024. 4. 28.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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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체를 보다가 기후위기를 떠올렸다.

넷플릭스 에스에프(SF) 드라마 '삼체'나 그 원작을 아직 보지 않은 분을 위해 '한 줄 요약'해드리자면 인류를 벌레로 볼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똑똑한 외계인(삼체인)이 지구를 침공하러 온다는 이야기다.

삼체인이 구태여 4광년(무려 41조3000억㎞)이나 날아와 지구를 정복하려는 이유는 그들이 사는 행성이 심각한 기후변화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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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체’. 넷플릭스 제공

윤지로 | 에너지·기후정책 싱크탱크 ㈔넥스트 미디어총괄

삼체를 보다가 기후위기를 떠올렸다.

넷플릭스 에스에프(SF) 드라마 ‘삼체’나 그 원작을 아직 보지 않은 분을 위해 ‘한 줄 요약’해드리자면 인류를 벌레로 볼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똑똑한 외계인(삼체인)이 지구를 침공하러 온다는 이야기다.

삼체인이 구태여 4광년(무려 41조3000억㎞)이나 날아와 지구를 정복하려는 이유는 그들이 사는 행성이 심각한 기후변화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지구인에겐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은 있을 수 없지만, 삼체인들은 태양을 무려 세 개나 갖고 있다. 태양이 세 개일 땐 그 움직임을 정확히 예측할 수 없어(이른바 ‘삼체 문제’라고 하는데 실제로 일반해를 구할 수 없다고 한다) 어떨 땐 행성이 용광로처럼 달아올랐다가 어떨 땐 극한의 추위가 몰아친다. 삼체인이 지구를 접수하려는 이유다.

그들에 비해 우리가 겪는 기후변화는 낫다고 해야 하나. 적어도 2100년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재앙을 막으려면 뭘 해야 하는지 알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커다란 함정이 있었으니, 바로 거짓말이다. 삼체인은 클라우드 파일 공유하듯 대뇌 정보를 교환하기 때문에 거짓과 위장, 기만이 발 디딜 틈이 없다. 지구에선 그린워싱(위장 환경주의)하는 기업, 말로만 지구 걱정을 늘어놓는 사람들이 널리고 널렸다.

삼체를 보다가 ‘좀비 개미’를 떠올렸다.

개미는 창형흡충이라고 하는 기생충에 감염되면 좀비가 된다. 낮에는 멀쩡하다가 밤이 되면 개미굴로 돌아가지 않고 혼자 좀비처럼 풀 위로 기어 올라간다. 이튿날도 해만 떨어지면 무언가에 홀린 듯 풀 위로 올라간다. 도대체 왜? 창형흡충이 개미의 뇌를 조종했기 때문이다. 개미의 이상행동은 풀 끝에 매달려 있다가 양이나 소에 잡아 먹힐 때까지 계속된다.

삼체에는 좀비 개미 같은 인간이 나온다. 삼체인을 신으로 떠받드는 추종자 세력이다. 그들은 적극적으로 테러를 일삼지만 실은 삼체인의 명령대로 움직이는 껍데기일 뿐이다. 이런 좀비화가 에스에프 소설이나 동물의 세계에서만 벌어지는 일일까. 환경을 지키라고 만들어진 부처가 케이블카나 공항 건설에 손들어줄 때, 국민 안전을 지켜야 할 부처가 참사에 눈감는 모습을 볼 땐 이들이 좀비가 된 게 아닌지 겁이 난다.

삼체를 보다가 국회를 떠올렸다.

기후∙에너지를 주제로 열리는 토론회에 축사하러 나온 의원들은 하나같이 “기후 문제에는 여야가 없으며, 정치 이념이나 이해관계에 얽매이면 안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21대 국회는 재생에너지를 늘리자면서도 해상풍력발전보급촉진 특별법(풍력법)을 처리하지 못했고, 원전을 짓자면서도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고준위방폐물법)을 통과시키지 않았다. 삼면이 바다인 한국의 해상풍력 발전 비중은 0.0몇%로 참담한 수준이고, 원전 부지 어딘가엔 46년 묵은 사용후핵연료가 쌓여 있다. 삼체인이라면 이해 못할 거짓과 기만이다.

22대 총선에서 각 정당은 기후∙에너지 공약을 내놨다. 하지만 300명의 생각이 모두 같을 수는 없는 법. 누군가는 탈탄소 전환의 발목을 잡으려 들 것이다. 우리 기업과 산업의 현실 운운하며 ‘내가 정답이오’ 외칠 테지만 기실 무언가(자본, 후원자, 권력…)를 추종하며 그들의 명령대로 움직이는 껍데기일지 모른다. 머리를 내주고 팔다리만 남은 좀비 개미 같은 자가 누구인지 궁금한가. 여기 간단한 판별법이 있다.

탈석탄법 제정을 주저하는 자, 풍력법과 고준위방폐물법에 어깃장을 놓는 자,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를 21대 국회 때처럼 맹물특위로 만들려는 자.

현실에 사는 우리가 경계해야 하는 건 해답이 분명한 지구 기후변화 문제를 답을 구할 수 없는 삼체 문제로 몰고 가는 이런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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