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돼지OO 있다”…인간에 새로운 삶 열렸다는데 [사이언스라운지]

고재원 기자(ko.jaewon@mk.co.kr) 2024. 4. 28.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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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에 쓰인 유전자편집 돼지 신장. [사진=미국 뉴욕대]
미국에서 유전자 편집을 거친 돼지신장과 인공심장을 동시에 사람에게 이식했다는 보고가 나왔다. 이식을 통해 심부전과 말기신장질환을 겪던 54세의 여성 환자를 치료한 것으로 돼지신장과 심장펌프를 함께 이식한 것은 세계 최초 사례다. 관련 불치병을 앓고 있던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로버트 몽고메리 미국 뉴욕대 랑곤헬스메디컬센터 교수 연구팀은 24일(현지시간) 미국 뉴저지 출신 환자인 리사 피사노 씨에게 기계식 심장펌프와 유전자 편집을 거친 돼지 신장을 이식하는 수술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최신 과학기술과 첨단 현대의학 기술을 합친 사례”라며 “전 세계 불치병 환자들에 새로운 희망을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피사노 씨는 심부전과 말기신장질환을 겪던 환자다. 이 두 질병을 치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식이다. 그러나 리사노 씨는 두가지 질병을 동시에 앓고 있어 이식 후보자 우선순위에 들지 못했다. 이식을 받아도 좋은 예후를 보이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미국에서는 약 10만 4000명이 이식 대기자 명단에 올라있다. 이 중 8만9360명이 신장을 기다리는 대기자다. 그러나 리사노 씨처럼 신장 이식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에 약 80만 8000명의 말기 신장 환자들이 있는 것으로 집계되는데, 지난해 기준 이 중 2만7000명만 이식을 받은 것으로 조사된다.

피사노 씨는 이 때문에 이번 수술에 지원했다. 피사노 씨는 “역경을 겪고 있지만 손주들을 보며 버텨왔다”며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었고, 더 나은 삶을 살며 손주들이 성장하는 것을 간절히 지켜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리사노 씨는 수술 전 심장마비가 와 심폐소생술을 실시하기도 했다.

수술은 두 단계로 진행됐다. 먼저 기계식 심장펌프를 이식하는 수술이 지난 4일 진행됐다. 기계식 심장펌프는 심부전 환자를 도와 심장이 펌프 기능을 하도록 한다. 연구팀은 “심장 펌프가 없었다면 피사노 씨는 몇 주 안에 목숨을 잃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수술이 성공적으로 이뤄진 후인 12일 유전자 편집 돼지신장 이식술이 진행됐다. 돼지신장을 유전자 편집하는 것은 면역거부반응을 없애기 위해서다. 유전자편집 기술인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CRSPR-Cas9)’를 활용해 거부반응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제거하고, 인간 유전자를 추가하는 식이다. 연구팀은 “면역거부반응의 원인이 되는 ‘알파갈’ 유전자를 없앤 돼지신장을 이식했으며 거부반응을 최소화하기 위해 면역기관인 돼지의 흉선도 함께 이식했다”며 “생명공학 회사인 유나이티드 테라퓨틱스 코퍼레이션이 제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술을 받은 리사 피사노 씨. [사진=미국 뉴욕대 유튜브 캡쳐]
여러 동물 중 돼지신장이 쓰이는 것은 계통학적으로 사람과 가까운 영장류를 쓰는 데 규제가 따르고, 돼지의 장기 크기가 사람과 비슷하다는 점 때문이다. 영장류에 비해 대량 번식이 쉬우며 새끼를 많이 낳는다는 점도 영향을 줬다. 연구팀은 “이번 사례는 기계식 심장펌프와 신장을 함께 이식한 세계 첫 사례”라며 “유전자 편집 돼지신장을 사람에 이식한 세계 두번째 사례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유전자 편집 돼지신장을 이식한 첫 환자는 미국의 62세 흑인 남성 리처드 릭 슬레이먼씨다. 그는 지난달 16일 미국 하버드대 의대 매사추세츠종합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2주 만에 건강하게 퇴원했다. 피사노 씨 역시 현재 수술경과가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식한 신장이 제기능을 하며 피사노씨가 첫 소변을 본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팀은 “수술결과는 혁신적”이라고 말했다.

최근 이종이식이 점점 보편화 추세로 접어들고 있다. 이종 간 장기이식은 동물로부터 얻은 기관이나 조직, 세포 등을 치료 목적으로 사람에게 이식하는 것을 뜻한다. 여러 원인으로 장기이식이 필요한 질환이 늘어나고 이에 대응해 장기이식술이 발달하면서 장기이식 수요가 급증했다. 그러나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다.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KONOS)에 따르면 2023년 9월 기준 장기이식 대기자 수는 4만2276명이다. 하지만 같은 해 9월 기준 뇌사 기증자 수는 378명이었다. 지난해에는 기증자 수가 최저를 기록했다. 하루에 약 6.8명이 장기이식 대기 중 목숨을 잃었다는 분석도 있다.

이런 이식 장기 공급 부족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이종이식 기술이 발달했다. 이종이식은 동물의 장기를 이용하기 때문에 필요한 장기를 더 쉽게 구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이식에 실패하더라도 재시도가 가능하며 이식을 위해 대기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최상 상태의 장기를 이식받는 것도 가능하다.

이미 돼지의 췌도나 각막 등을 이식하는 것은 일부 실용화 단계에 이르렀다. 돼지 췌도를 분리해 당뇨환자에게 이식하는 등의 이종 간 이식 수술은 이미 시행되고 있다.이제 남은 과제는 신장을 포함해 심장과 폐, 간 등의 장기를 이식하는 것이다. 이 과제 역시 점점 실현 가능성이 높아지는 모양새다.

연구팀이 이종이식술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미국 뉴욕대 제공[
미국 메릴랜드대 의대는 지난해 9월 미 해군 참전용사 로런스 포세트 씨가 유전자 조작 돼지 심장을 이식받았다고 밝혔다. 포세트 씨는 심부전 말기로 메릴랜드대 의대를 찾았다. 사람 심장 이식 수술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수술을 진행하지 못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포세트 씨는 그 대신 유전자 조작 돼지 심장을 이식하기로 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이종이식을 위한 긴급 허가를 내줬고, 유전자 조작 돼지 심장을 이식받았다.

그는 이식 후 꽤 오랜 기간 생존했다. 면역체계의 거부반응 없이 다리 근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사이클링 같은 물리치료를 받았으며 아내인 앤 포세트 씨와 카드 게임을 하기도 했다. 수술을 집도한 바틀리 그리피스 메릴랜드대 의대 교수는 “포세트 씨를 돌보는 의사들이 심장 기능이 훌륭하다고 얘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심장에 거부반응 징후가 포착됐다. 그러면서 심장 이식 30일 후 사망에 이르렀다. 연구팀은 “유전자 조작 돼지 심장이 아닌 사람 장기와 관련된 이식 수술에서도 가장 문제로 꼽히는 것이 거부반응”이라고 설명했다. 돼지 심장을 이식하려는 시도는 이번이 두 번째였다. 첫 번째 환자는 2022년 1월 돼지 심장을 이식받은 바 있다. 메릴랜드대 의대 연구팀이 이식을 진행한 것으로 당시 환자는 두 달 만에 사망했다. 거부반응은 보이지 않았으며 돼지에게 폐렴을 일으키는 바이러스 DNA가 몸 안에서 발견됐다.

이종 간 장기이식 연구가 조금씩 가능성을 보이자 관련 사업에 뛰어드는 기업도 늘고 있다. 미국 노바티스, 오건리커버리시스템, 화이자, 이제네시스, 스페인 트랜스플랜트바이오메디컬, 스위스 로슈, 일본 아스펠라스파마, 영국 오건오엑스리미티드 등이다. 국내에서는 옵티팜과 제넨바이오 등이 이종 간 장기이식 사업화를 추진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데이터브리지마켓리서치’에 따르면 이종 장기이식 시장은 2021년 129억5000만달러(약 16조9904억원)에서 2029년까지 연평균 성장률 8.3%를 보이며 245억1000만달러(약 32조1571억원)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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