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인생 흑역사인 ‘나’…아버지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씨네프레소]
[씨네프레소-120] 영화 ‘변산’
학수(박정민)는 어린 시절 ‘잘 나가는’ 학생이었다. 힘이 세고 인기가 많을 뿐 아니라 예술적 재능까지 빛났다. 고등학생 때는 전국 백일장에서 장원을 차지하기도 했다.
성인이 된 뒤에도 당연히 잘 나갈 줄 알았는데 현실은 달랐다. 래퍼가 되겠다고 고향 변산을 떠나 상경했으나 좀체 두각을 드러내지 못한 것이다. 백일장에선 장원했던 그는 ‘쇼미더머니’에선 장원 급제하지 못했다. 그 근처에도 가지 못한 채 나이만 먹었다. 꿈을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때다.
‘변산’(2018)은 이처럼 인생의 갈림길에 선 남자를 그린다. 학창 시절 선망의 대상이었던 그는 왜 부러움을 사지 않는 존재가 됐을까. 영화는 여전히 그가 과거에 발 묶여 있다는 점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어떻게든 한 발짝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과거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수는 이 전화가 다소 의아하게 느껴진다. 그에게 아버지는 이미 죽은 존재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조직폭력배였던 그의 아버지(장항선)는 엄마를 두고 외도하며 가정을 내팽개쳤다. 심지어 엄마의 장례식에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경찰들이 장례식에 찾아와 그의 아버지 행방을 묻는 바람에 조용한 애도의 시간도 갖지 못했다.
원망하는 아버지였음에도 찾아간 이유는 사망하기 직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뇌졸중은 가벼운 수준이었고, 관리만 잘하면 회복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평생 아들을 보살핀 적 없었던 아버지는 아들이 이제서야 찾아온 것이 서운했던 모양이다. “아들자식은 개자식”이라는 폭언을 내뱉으며 아들 맘을 긁는다.
‘아버지’와 ‘용대’는 서로 다른 결을 가진 학수의 과거다. 아버지가 남긴 상처는 학수가 발전하려 할 때마다 발목을 잡는다. 그가 랩배틀에서 ‘어머니’라는 제시어를 받고, 실수하는 모습이 이를 보여준다. 아버지 때문에 고생만 하다 떠난 어머니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그에게 좋은 핑계가 되는 것 같기도 하다. 과감하게 한 발 더 나갈 용기가 생기지 않을 때마다 ‘나는 아버지에게 상처받은 인간’이라는 구실 뒤로 숨어버리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아버지에게 받은 상처를 싫어하지만 적극적으로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그렇지만 영화는 상처 때문에 진일보하지 못하는 건 결국 자기 손해라는 이야기를 한다. 과거를 훌훌 털고 일어나야 하는 이유는 아픔을 준 아버지를 꼭 사랑하거나 용서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삶을 세우기 위해서란 것이다. 마흔이 돼도 예순이 돼도 자기연민이나 하고 있을 거냐고 묻는 듯하다.
아마 이 영화에 낮은 평점을 준 관객이 많았던 배경엔 이런 서사의 비현실성이 존재할 것이다. 일단 30대를 앞둔 남성이 옛 친구의 ‘꼬붕’이 된다는 설정부터가 비현실적인 데다가, 그런 관계가 주먹질 한 번으로 나아진다는 것도 너무 판타지스럽다.
영화가 하려는 이야기는 자신에게 상처 준 부모, 형제, 친구에게 주먹을 한 방씩 갈기라는 소리는 아닐 것이다. 우리가 계속 붙들려 있는 어떤 과거의 망령이 있다면 그것과의 의식적인 단절이 필요하단 이야기다. 왜냐면 우리 머릿속에 과거의 상처나 영광은 너무 강렬한 이미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를 넘어서거나 이에 필적할 다른 이미지를 억지로 만들어서라도 극복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편이 좋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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