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제 안 정했다지만 … 이재명 '3대 요구안' 밀어붙일 듯
영수회담을 하루 앞둔 28일 윤석열 대통령은 공개 일정 없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첫 회담 구상에 집중했다. 이 대표 역시 이날 자택에 머물며 영수회담 준비에 시간을 쏟았다. 29일 오후 2시부터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리는 영수회담은 전례를 볼 때 1시간30분 안팎으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은 회담 전날부터 '총선 민심'을 앞세워 윤 대통령에게 "민의에 화답하라"며 이 대표가 요구할 의제를 수용할 것을 압박하고 나섰다.
영수회담은 의제가 정해지지 않은 '자유 회담' 형식으로 진행되지만 성과가 필요한 이 대표는 특정 의제에 대해 '선택과 집중' 전략을 구사할 가능성이 크다. 빈손으로 회담이 끝나면 오히려 이 대표에게 마이너스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안팎의 설명을 종합해보면 이 대표가 영수회담에서 거론할 것이 확실시되는 의제는 채상병 특검법 수용, 대통령의 거부권 자제, 전 국민 25만원 민생지원금 지급 등 세 가지다. 민주당은 그동안 '민생 회복'과 '국정 기조 전환'을 양대 축으로 영수회담 의제를 준비해왔다.
그러나 전 국민 25만원 지원금을 위해서는 대규모 추경(추가경정예산) 편성이 불가피하다. 재정건전성과 취약계층에 대한 선별적 지원을 우선시하는 윤 대통령이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문제다. 이 밖에 이 대표가 의정 갈등과 관련해 여·야·정과 의료계가 참여하는 4자 협의체 구성을 다시 제안할 가능성이 있다. 또 전세사기 특별법 등 민주당이 오는 5월 처리를 예고한 법안의 수용을 요청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채상병 특검법은 사실상 윤 대통령을 겨냥해 발의된 법안이라는 점에서 이 의제를 직접 거론한다는 것 자체가 윤 대통령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 대통령의 고유한 권한인 거부권 행사를 자제해달라고 요구하더라도 윤 대통령이 즉석에서 수용할 가능성은 없다.
그럼에도 의제에 제한이 없는 회담이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이 대표가 윤 대통령 앞에서 직접 '김건희 여사 특검법' 문제를 꺼내들 수도 있다.
민주당은 첫 영수회담을 앞두고 "대통령이 답을 내놓아야 할 자리"라고 주장했다. 박성준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번 영수회담은 이 대표가 윤석열 정부 2년 동안의 국정 실정에 대해 국민의 목소리를 전하는 의미가 있다"며 "민의에 대해 윤 대통령이 답할 차례"라고 했다.
그러면서 회담을 마친 후 '공동 합의문'을 작성할 가능성에 대해 그는 "실무회담에서 그런 얘기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이 주장하는 25만원 지원금과 전세사기 특별법, 양곡관리법 등에 대해 김민수 국민의힘 대변인은 "이런 것을 다 돈으로 해결하자는 것은 결국 미래 세대 주머니를 강탈해 현재의 문제를 막자는 것과 똑같다"며 "현금 살포 외에도 충분히 논의하면 답이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권 일각에서는 첫 영수회담에서 윤 대통령이 주도하는 의제가 없는 점이 아쉽다는 평가도 나온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민주당이 던진 의제에 대해 우리가 선대응하지 못하고 끌려가기만 하는 상황이 안타깝다"며 "윤 대통령이 거꾸로 의제를 던져 이 대표가 생각해보겠다거나 고민하는 그림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 첫 영수회담이 우여곡절 끝에 성사되면서 협치의 발판을 마련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지만 전례를 참작했을 때는 큰 성과가 도출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헌정사 최초 영수회담은 박정희 정부 시절이던 1965년 7월 진행됐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 박순천 민주당 대표는 한일협정 비준과 베트남 전쟁 파병 동의안을 임시국회에서 다루기로 합의했다.
영수회담이 가장 활발하게 이뤄진 시기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집권했던 국민의 정부 때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2000년에만 7차례 만나며 약사법, 남북정상회담, 9·11 테러로 인한 민생 안정 조치 등에 합의했다. 특히 의약분업 문제로 진료 마비 사태를 불러온 의료대란 당시 영수회담에서 의약분업을 예정대로 추진하되 여야 합의로 약사법을 개정하자고 뜻을 모으기도 했다. 다만 이 전 총재는 후일 회고록에서 "몇 차례의 영수회담 뒤 돌아온 것은 후회와 분노, 통탄뿐"이라고 술회했다.
참여정부에서는 영수회담이 두 차례 열렸다. 2005년 9월 영수회담에서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에 "연정 언급은 다신 하지 말아달라"며 단호히 거부하기도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총 세 차례 영수회담을 열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여당과 야당 대표가 모두 참석한 3자 회담은 있었지만 양자회담은 없었다. 가장 최근에 진행된 영수회담은 문재인 전 대통령과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 사이에서 이뤄졌는데 이견만 확인하고 돌아섰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과 이 대표 간 만남은 '정쟁을 그만하고 국민의 삶을 들여다봐 달라'는 국민의 기대에 따른 것"이라고 전했다. 영수회담에서는 정치적 사안보다 민생 현안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전경운 기자 / 박윤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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