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라는 말 듣고 은퇴 결심했다는 ‘이 남자’…“뒤도 안돌아 볼랍니다”
대통령 11명 거친 58년 가수생활 회고
“할머니의 ‘오빠’라는 말에 은퇴 결심
그만둬서 서운하냐? 그래서 그만둔다
박수 칠 때 떠나…안가본 데 가며 살겠다”
가황 나훈아(77)가 흰 민소매 상의에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1984년 발표 히트곡 ‘청춘을 돌려다오’를 부른 직후 너스레를 떨자 객석에서도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나훈아의 은퇴선언은 그가 해온 58년 차 연예계 생활처럼, 앞뒤 재는 것 없이 호쾌했다. 그는 27일 인천 송도컨벤시아에서 개막한 ‘나훈아 2024 고마웠습니다-라스트 콘서트’에서 지난 2월 내비친 은퇴 의사에 쐐기를 박으며 “고마웠다”는 진심을 전했다.
이날 나훈아는 2시간 20분 동안 총 22곡을 부르며 곡 사이 은퇴 결심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특히 공연 후반부 자신의 노래 ‘공’을 부르면서 후렴구의 ‘띠리 띠리리’라는 가사에 맞춰 만담처럼 솔직한 마음을 털어놨다. “사실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라 몇 년 전부터 아무도 모르게 혼자 생각을 했습니다. 결정적인 이유는 지방 어디에 공연하러 갔는데, 어떤 머리 허연 할머니가 날 보고 ‘오빠!’ 하는 거라. ‘아, 내가 할배구나! 이래선 안 된다’ 생각했습니다.”
팬들은 그가 여러 감정이 담긴 표정으로 이어가는 말에 ‘안 돼!’라고 소리쳤고, “그만두는 게 서운하냐”는 물음엔 목청껏 ‘네!’를 외쳤다. 그러자 나훈아는 “그래서 그만두는 것”이라고 했다. “나훈아가 계속 곡을 쓰면서 연예계에 몸담을 것이라는 건 날 몰라서 하는 얘깁니다. ‘이거면 이거, 저거먼 저거’가 제 성격입니다. 저는 피아노 앞에 앉지 않고, 기타도 절대 안 만지고, 책은 봐도 글은 안 쓸 겁니다.”
일각의 건강 이상설에는 검진 결과지를 직접 보여줬다. 올해 2월 13일 자로 적힌 문서를 전광판에 띄우고는 “숫자가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빨간 글씨가 뜬다. 25가지 검사를 했는데 하나도 빨간 게 없다”고 했다. 그리곤 “앞으론 안 가본 데 가보고, 안 먹어본 거 먹고, 안 해본 거 해보고 살 거다”라고 말했다.
공연은 나훈아의 노래 인생을 돌아보는 듯했다. 자신이 데뷔한 1967년부터 올해까지 전·현직 대통령 11명의 초상을 화면에 띄우며 “참 긴 세월이었다”라고 돌아봤다. 기억에 남는 무대로 1996년 일본 오사카에서의 ‘쾌지나칭칭나네’를 꼽기도 했다. 당시 즉석에서 ‘누가 뭐래도 우리땅,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개사해 불러 현지에서 살해 협박까지 받았다는 일화가 있다. 나훈아는 “밤 새워 이야기하는 시간도 만들어야 한다”며 추억을 풀었다.
최근 발표한 곡들은 직접 안무를 춰가며 화려한 무대를 꾸몄다. ‘고향역’으로 시작해 ‘체인지’ ‘고향으로 가는 배’ ‘남자의 인생’ 등을 연달아 불렀다. 초반 30분에 6곡을 부르며 각 곡마다 옷을 갈아입었는데, 웬만한 아이돌 공연에서도 보기 힘든 긴박한 연출이다. 아예 무대 위에 가림막을 세운 채 훌러덩 옷을 벗어 맨살이 드러나 보이는가 하면, 곡 ‘18세 순이’는 분홍색 시스루 상의에 롱스커트를 입고 춤을 추는 등 거침없었다. 관객들이 그의 패션 소화력에 ‘우와’ 감탄할 정도였다.
나훈아는 “공연 끝날 때까지 총 15번 갈아입는다. 옷값이 많이 들고 연출상 어려움도 있다”면서 “여러분이 본전 생각할까 봐 그런다. 다른 데서 맘에 안 들어도 옷으로 잘 봐달라”며 웃었다. 이어 ‘홍시’ ‘영영’ ‘인생은 미완성’ 등 오래된 명곡은 떼창과 함께 불렀고, 지난해 나온 마지막 앨범 수록곡인 ‘아름다운 이별’ ‘삶’ ‘기장갈매기’ 등도 선보였다.
드론에 마이크 날려보내고 무대 내려가
나훈아는 노래가 끝나자 뒤를 돈 채로 타고 올라왔던 리프트를 타고 무대를 내려갔다. “여러분 저는 평생 다른 데 한눈팔지 않고 그냥 노래가 천직이라 생각했습니다. 여기까지 온 것이 기적 같은 일입니다. 고마웠습니다.”
인천에서 27~28일 총 3회차에 걸쳐 열린 콘서트는 매회 5000여석이 순식간에 매진됐다. 이어 5월 청주·울산, 6월 창원·천안·원주에 예정된 공연도 모두 2~3분 만에 매진된 상태다. 하반기에도 7월 전주 공연 등 투어를 이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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