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총선 공약 이행하라 [세상읽기]
김우찬 | 경제개혁연구소장·고려대 경영대 교수
4·10 총선은 정부·여당의 참패로 끝났다. 여러 가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선거지만 자본시장 정책과 관련해서 생각해보면 정부의 선심성 자본시장 포퓰리즘 정책들이 투표에 영향을 주지 못한 선거로 기록될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작년 11월 공매도 전면 금지, 12월 주식양도세 대주주 기준 상향 조정, 올해 1월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와 상속세 완화 약속으로 1400만 주식투자자의 환심을 사려고 했다. 하지만 공매도 전면 금지는 우리 정부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를 떨어뜨렸고, 각종 감세 조치는 정부가 내세운 정책목표 달성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하면서 부자들 세금만 깎아주는 것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이를 간파한 우리 국민은 투표장에서 현명한 선택을 했다.
하지만 총선이 끝났다고 이번 사태가 모두 수습된 것은 아니다. 공매도를 재개시키고, 금융투자소득세를 예정대로 내년 1월에 시행해야 하는 일이 아직 남아 있다. 이를 위해서는 거대 야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정부에 공매도 재개를 촉구하는 일, 정부와 여당이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를 위해 소득세법 개정을 요구해왔을 때 이를 단호히 거절하는 일, 혹시라도 해소하지 못한 문제점이 남아 있다면 이를 보완하는 일 모두 민주당 몫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민주당에 요구하고 싶은 사항이 하나 더 있다. 5월 말 임기가 시작되는 22대 국회에서 자본시장과 기업거버넌스 개혁 관련 총선 공약을 차질 없이 이행하는 것이다. 당선자가 있는 정당 중 이번 선거에서 이 분야 공약을 내놓은 정당은 민주당, 개혁신당 그리고 새로운미래다. 구체성이 떨어지는 것도 있고, 제대로 된 검토 없이 급하게 포함된 것들도 있지만 그동안 학계와 시장에서 꾸준히 요구해온 것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으며 이런 것일수록 복수의 정당이 공약으로 내놓았다.
몇 가지 중요 공약을 살펴보자. 우선, 민주당과 개혁신당은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공약을 내놓았다. 분명히 주주에게 손해를 끼쳤음에도 불구하고 회사에 피해를 주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이러한 결정에 참여한 이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지금의 상황이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만 인정되었어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의 부당 합병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고, 어쩌면 투자자-국가 간 분쟁에서 우리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둘째, 민주당, 개혁신당, 새로운미래는 모두 의무공개매수제도의 도입을 공약으로 내놓았는데 그 내용은 재작년 정부가 발표한 도입 방안보다 강력하다. 정부는 기업 인수 시장 위축을 우려해 ‘50%+1주’만 공개매수하는 반쪽짜리 제도를 내놓았지만 각 정당은 100%에 대해 매수 제의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주주 평등 대우의 원칙에 더 잘 부합하는 방안일 뿐만 아니라 의무공개매수제도가 도입되면 지배주주와 일반주주에게도 지급해야 하는 지배권 프리미엄 수준이 떨어져 인수대금이 과도하게 상승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한 합리적인 방안이다.
셋째, 민주당은 상장회사 임원의 결격사유 강화, 새로운미래는 집중투표제도 도입 의무화, 개혁신당은 집단소송제 전면 도입과 절차 간소화를 공약으로 내놓았다. 우리 상법은 사외이사와 상근감사에 대해서만 여러 결격사유를 나열하고 있고 사내이사에 대해서는 아무런 결격사유를 두고 있지 않다. 범법자들이 사내이사로 선임되어 회사와 주주에게 손해를 끼치지 못하도록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자는 일정 기간 사내이사로 선임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한편, 집중투표제는 일반주주가 추천한 이사 후보도 좀 더 용이하게 이사로 선임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제도로 주주 친화적인 이사회를 구성하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하다. 다만 감사위원회를 두고 있는 회사에서 실시하는 감사위원 분리선임제도와 충돌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설계될 필요가 있다. 집단소송제도 지금처럼 증권 관련 분야에만 국한할 필요가 없다. 집단적 피해는 모든 경제 분야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사실상의 6심제 운영, 소송대리를 3년간 3건밖에 못 하는 자격 제한 규제도 손을 봐야 한다.
민주당은 과반의석을 확보한 제1당으로서 개혁신당, 새로운미래와 함께 이들 공약을 이행하는 데 앞장서서 국민과 한 약속을 지키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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