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비 원가 공개하라면 어쩌지…이통3사 떨고 있는 이유

김재섭 기자 2024. 4. 28.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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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섭의 뒤집어보기
제4 이통사 출범·새 과방위 구성 촉각
공정위 답합조사 결과도 부담
이동통신 번호이동 전환지원금을 50만원까지 합법적으로 줄 수 있게 된 첫날(3월14일) 오후 서울의 한 휴대전화 판매점의 모습. 연합뉴스

‘이동통신 원가 공개하라면 어쩌지!’

이동통신 3사가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이동통신 원가공개 요구를 받을까 긴장하고 있다. 한 이통사 임원은 한겨레에 “느낌이 좋지 않다. 제4 이동통신 사업자의 행보, 새로 구성될 22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 어떤 의원들이 지원하고 배정될지 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전했다. 다른 이동통신사 관계자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이동통신 사업자 담합 건 조사 결과가 이통 3사에 또다시 카르텔 논란을 불러오고 원가공개 요구로 이어질까 모두 납작 엎드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28일 이통사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먼저 제4 이통사 스테이지엑스(X)가 이통 3사와 통신망 로밍(통신망을 미처 구축하지 못한 지역에선 기존 사업자 망을 빌려 서비스) 계약을 맺고, 상호접속료 산정 요율을 산정하는 과정에서 엘티이(LTE)와 5세대(5G) 이동통신(이하 파이브지) 원가를 공개하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통신망을 구축·운용하는(설비보유) 기간통신사업자 간에는 상호접속료를 정산하는데, 이때 적용하는 분당 접속 요율은 원가를 바탕으로 산정된다. 스테이지엑스가 이통 3사의 접속 요율에 이의를 제기하며 산정 근거를 공개하라고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스테이지엑스가 정부에 비대칭 규제(이통 3사와 차등 규제)를 요구할 때 원가 공개를 앞세울 가능성도 있다.

유선전화 사업자 케이티(KT)와 무선통신 사업자 케이티에프(KTF)가 분리돼 있고, 선·후발 사업자에 대한 비대칭 규제가 살아있을 때까지만 해도, 사업자별 통신서비스 원가에 대한 관심이 컸다. 협상 결과에 따라 연간 수천억원이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사업자들이 상대방 원가를 꼼꼼히 살펴볼 수밖에 없었고, 상호접속료 협상이나 국정감사 과정에서 원가가 공개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두 회사 합병과 비대칭 규제 소멸 뒤에는 경쟁사 원가를 세세히 따질 이유가 사라졌고, 공개된 원가 자료가 통신요금 인하를 요구하는 근거로 삼아진다는 사업자 간 암묵적 합의 등에 따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참여연대 등 시민·소비자단체들이 이동통신 요금 인하를 통해 가계통신비 부담을 덜어달라고 할 때마다 원가공개를 요구하고 있지만, 이통사들은 들은 척도 안 하고, 과기정통부도 이통사 편을 들어왔다. 공개 시 엘티이·파이브지 요금제 재설계 요구가 거세질 수 있어서다. 이통사 회계기준에 따르면, 이동통신 설비 감가상각 기간은 장비 종류에 따라 3~8년이다. 회계기준대로라면, 엘티이 망 장비의 감가상각 기간이 끝나 회계상 원가는 제로(0원)이고, 파이브지 망 장비의 감가상각 기간도 상당 부분 지나갔다. 망 운용비와 유지보수비 정도만 원가로 남은 꼴이다.

이동통신 3사는 새 서비스를 내놓을 때마다 “이통 사업의 특성상 투자비가 서비스 초기에 집중돼 요금을 높게 설계할 수밖에 없다”며 요금을 2~3배 높게 책정해왔다. 이통사 주장대로라면, 감가상각으로 원가가 낮아지는 추세라면 반대로 요금을 낮춰야 하는 게 맞다. 더욱이 이통 3사는 각자 전국 망 구축·운용을 전제로 파이브지 요금제를 높게 설계해놓고, 실제로는 85개 행정 시·도와 일부 읍·면을 제외한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공동망을 운용하고 있다.

이통 3사는 그동안 시장 독과점을 둔덕 삼아 정부가 내놓는 가계통신비 부담 완화 정책들을 무력화 시키며 이동통신 사업을 ‘황금알을 낳는 거위’ 상태로 유지하는 데 나름 성공해왔다. 에스케이(SK)텔레콤은 2022년 매출 17조3050억원 영업이익 1조6121억원, 2023년 매출 17조6085억원 영업이익 1조7532억원의 실적을 올렸다. 케이티(KT)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2022년에 각각 25조6500억원, 1조6901억원이었고, 2023년에는 26조3763억원, 1조6498억원이었다. 엘지(LG)유플러스는 2022년에 매출 13조9060억원, 영업이익 1조813억원의 실적을 기록했고, 2023년에는 14조3726억원, 9980억원이었다.

올해 들어서도 정부가 단말기 유통법 폐지 방침을 발표해 단말기 공시지원금을 아무런 제한 없이 줄 수 있게 하고, 전환지원금을 최대 50만원까지 줄 수 있도록 하는 등 갖가지 경쟁 활성화 방안을 내놨지만, 이통 3사의 비협조로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통사들과 과기정통부 쪽은 이게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보고, 새 과방위에 어느 의원이 지원하고 배정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 이통사 임원은 몇몇 당선자 이름을 거론하며 “이들이 과방위에서 활동하면서 이동통신 원가공개 정책을 주문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그동안 ‘민생’을 이유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원회가 이동통신 3사와 단말기 제조사 대표를 불러 가계통신비 부담 완화 방안을 대놓고 주문하고, 윤석열 대통령이 ‘카르텔’이란 표현까지 사용하며 이통사들을 압박해왔던 터라, 정부 쪽도 거부할 명분이 없다.

최근 한국방송 보도로 알려진 공정위의 ‘이통 3사 담합’ 의혹 조사도 이통사들의 고민을 키우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이통 3사가 번호이동 실적을 실시간 공유하며 마케팅 활동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경쟁을 피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번호이동 가입자 실적이 높아진 곳은 개통을 미루거나 유통점 수수료를 줄이고, 실적이 낮아진 곳은 판매장려금을 더 쓰는 방식으로 점유율 등을 유지했다는 것이다. 정부의 전환지원금 허용 정책 등이 얼마나 허망한 것이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공정위는 이미 조사를 끝내고, 조사 결과와 제재 수위에 대한 이통사들의 의견수렴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통사들은 공정위에 “단말기 유통법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으로는 공정위 조사와 제재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경쟁을 자제하고 있다. 한 이통사 관계자는 “예상 과징금 액수도 크지만, 이미 대통령까지 나서서 카르텔로 지목한 상황에서 공정위 담합조사 결과까지 나올 경우, 어떤 후속 비난과 규제 정책이 나올지 몰라서다”며 “지금은 공시지원금이나 전환지원금 등에 신경 쓸 때가 아니다”고 말했다.

이동통신 서비스는 경기를 타지 않는다. 경기가 나빠졌다고 통신 이용량을 줄이거나 요금제를 낮은 것으로 바꾸는 경향이 없는 것이다. 이통사 쪽은 경쟁을 덜 할수록 이익이 더 쌓이는 구조다.

이동통신사들은 이제 와선 “요금은 통신망 원가를 바탕으로 설계되는 게 아니라, 가입자가 해당 통신서비스를 통해 얻는 혜택을 따져 산정한다”는 논리를 편다. 하지만 이게 얼마나 허술한 주장인지는 스스로 더 잘 안다. 그래서 고민이 깊다. 한 이통사 관계자는 “건설사들이 아파트 건설 원가 공개 요구를 무서워하는 것 이상으로 이동통신사들은 통신망 구축·운용 원가 공개에 민감해한다”며 ”솔직히 호랑이보다 무서운 게 원가공개 요구”라고 말했다. <끝>

김재섭 선임기자 jskim@hani.co.kr

※ 30일 김재섭 선임기자의 정년퇴임으로 ‘김재섭의 뒤집어보기’는 이번을 마지막으로 종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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