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상 가족’도 행복할 수 있나요···토니상 수상 뮤지컬이 말하는 가족의 의미

백승찬 기자 2024. 4. 28.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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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장애 있는 아들 ‘디어 에반 핸슨’
양극성장애 엄마 ‘넥스트 투 노멀’
고통 받는 이들 통해 가족의 의미 일깨워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에서 에반 핸슨이 엄마 하이디와 대화하고 있다. 에스앤코 제공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중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박형규 옮김·문학동네)는 문장은 ‘문학사상 가장 유명한 첫 문장’ 중 하나다. 공연 중인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과 <넥스트 투 노멀>은 각기 다른 이유로 ‘불행한 가정’의 이야기를 통해 가족의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연극·뮤지컬계 최고 권위인 토니상 수상작인 두 작품은 미국을 배경으로 하지만, 한국 관객에게도 이질감이 없다.

아시아 초연 중인 <디어 에반 핸슨>의 주인공은 남고생 에반 핸슨이다. 엄마 하이디와 단 둘이 사는 에반은 불안장애를 갖고 있으며 학교 친구도 없다. 에반은 상담 교사로부터 ‘자신에게 격려 편지 쓰기’ 숙제를 받아 ‘에반 핸슨에게’(디어 에반 핸슨)로 시작하는 편지를 학교에서 출력한다. 약물 문제가 있는 반항아 코너가 우연히 이 편지를 손에 넣고, 그날 자살한다. 코너의 가족은 코너가 에반에게 편지를 썼다고 생각해 에반을 코너의 친구로 여긴다. 학교에서 코너 추모 움직임이 일자, 에반은 졸지에 코너의 유일한 친구로 오해받아 코너 추모 프로젝트의 핵심 인물로 거듭난다. 지금까지 받아본 적 없는 관심에 우쭐해진 에반은 코너와의 추억과 우정을 지어내기 시작한다.

작은 거짓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며 일어나는 소동을 그리지만 분위기가 코믹하진 않다. 불안장애, 약물, 따돌림, 가정불화, 자살 등 현대 청소년이 겪을 수 있는 문제들을 흡입력 있는 전개 속에 자연스럽게 다룬다.

<디어 에반 핸슨> 속 가족 관계는 굴절돼 있다. 에반이 엄마 하이디, 코너 가족과 맺는 각기 다른 관계가 대비된다. 하이디는 이혼 후 간호사로 모자의 생계를 유지하는 동시 야간 로스쿨에 다니느라 에반에게 많은 신경을 쓰지 못한다. 부유하지만 서로 간에 냉랭했던 코너 가족은 코너를 잃은 뒤 에반을 마치 또 다른 아들처럼 여긴다. 에반은 코너 가족에게서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상실을 보상받으려 한다. 집보다 코너 가족의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고, 코너 아버지로부터 야구 글러브 길들이는 방법도 배운다. 가져보지 못한 ‘정상 가족’에 대한 갈망은 에반을 점점 큰 거짓의 길로 이끈다. 코너 생전 코너 가족도 큰 고통을 겪었음을 에반은 알지 못한다. 코너 가족 역시 에반을 통해 코너 생전 겪었던 고통을 보상받으려는 듯하다.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에서 에반 핸슨이 코너 부모와 대화하고 있다. 에스앤코 제공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은 소셜미디어, 채팅 등 온라인 문화를 적극적으로 다룬다. 에스앤코 제공

아들 에반이 좋은 대학 가길 바라면서 전전긍긍하는 하이디의 모습은 한국 어머니로 바꿔도 어색하지 않다. 불어나는 거짓을 감당하지 못해 ‘진실의 순간’을 맞이하고 몰락하는 에반을 위로하는 하이디의 모습은 종반부 하이라이트다. 하이디는 남편이 떠나고 에반과 단둘이 남겨진 밤을 회상하며 공허와 슬픔을 느끼면서도 에반에게는 “어떤 일이 있어도 엄마는 여기 있을게”라고 위로한다. 순식간에 세상에서 버림받은 에반을 위로하는 유일한 한 사람은 엄마 뿐이다. 넉넉한 살림이나 아빠·엄마·동생으로 이뤄진 ‘정상 가족’ 구성이 아니라, 힘들 때도 끝까지 지지하고 함께 있어 주는 사람이 가족이라는 단순한 진실을 <디어 에반 핸슨>은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넥스트 투 노멀>에는 부모와 아들, 딸로 구성된 4인 가족이 등장한다. 다이애나는 16년째 양극성장애를 앓고 있다. 남편 댄은 그런 아내를 헌신적으로 보살핀다. 혼란스러운 가족 상황에 딸 나탈리는 대학에 가 집을 벗어날 날만 기다린다. 다이애나의 오랜 투병은 모든 가족을 조금씩 지치게 한다. 급기야 다이애나는 의사와 댄의 권유로 전기충격 요법까지 받는다. 이후 다이애나는 기억 일부를 잃어버린다.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에서 다이애나는 양극성장애를 갖고 있으며, 남편 댄은 아내를 헌신적으로 돕는다. 엠피앤컴퍼니 제공

대단한 행복이 아닌, ‘평범함의 언저리’(넥스트 투 노멀)에라도 머물고 싶은 소망이 누군가에겐 쉽지 않음이 드러난다. 가족에게 닥친 한계 상황은 그동안 묵은 상처를 보이게 한다. 숨겨왔던 진실이 밝혀진 뒤에야 가족은 다음 단계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 다이애나의 최종 선택은 <디어 에반 핸슨>과는 사뭇 다르다. 최선의 선택인지는 알 수 없으나, 가족 모두는 이를 받아들이고 거기서부터 새로운 삶을 시작하자고 서로 위로한다.

<디어 에반 핸슨>은 6월 23일까지 서울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한다. 김성규·박강현·임규형이 에반, 김선영·신영숙이 하이디 역을 맡았다. <넥스트 투 노멀>은 5월 19일까지 서울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공연한다. 이건명·마이클 리가 댄, 최정원·배해선이 다이애나 역을 맡았다.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은 3층 철제 구조물로 무대를 장식했다. 엠피앤컴퍼니 제공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에서 다이애나는 꾸준히 정신과 치료를 받지만, 좀처럼 낫지 않는다. 엠피앤컴퍼니 제공

백승찬 선임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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