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코틴으로 아내 죽인 사이코패스 남편의 살인일기 [정락인의 사건 속으로]

정락인 객원기자 2024. 4. 28.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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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친구가 성년 되자마자 비밀 혼인신고 후 일본 가서 독살
집에서 범행 자세히 기록한 일기장 발견되면서 덜미 잡혀

(시사저널=정락인 객원기자)

세종시에 살던 우아무개씨(22)와 김아무개씨(여·19)는 어린 나이에 부부가 됐다. 결혼식도 생략하고 혼인신고를 먼저 했다. 2017년 4월24일 우씨 부부는 일본 오사카로 신혼여행을 떠나기 위해 집을 나선다. 공항에 도착한 남편은 비행기를 타기 전에 1억5000만원짜리 여행자 보험에 아내를 가입시키고 수익자를 자신으로 지정했다.

부부는 현지에 도착해 오사카 시내에 있는 한 호텔을 숙소로 잡았다. 가장 즐겁고 행복해야 할 이들의 신혼여행은 일순간에 비극이 되고 만다. 신혼여행 첫날밤인 25일 새벽 2시50분쯤, 현지 경찰에 "화장실에서 아내가 죽었다"는 신고가 접수된다. 신고자는 남편 우씨였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화장실에 숨져있는 김씨를 발견한다. 그 옆에는 작은 녹색병과 주사기가 있었다. 우씨는 경찰에서 "아내가 화장실에 들어간 후 쿵 소리가 나서 가보니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며 "평소 우울증을 앓고 있었는데 약물이 든 주사로 자살한 것 같다"고 진술했다. 사망 직전 김씨는 엄마에게 음성 메시지를 보내 "나가서 죽는 게 나을 것 같아. 엄마도 이런 딸 없는 셈치고 잘살아"라는 말을 남겼다. 이런 정황에 따라 일본 경찰은 김씨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판단하고 수사를 종결했다. 우씨는 아내의 시신을 현지에서 화장한 후 한국으로 이송한다.

ⓒ시사저널 최준필·freepik

1억5000만원 보험금 노린 치밀한 범행

그런데 남편 우씨의 행동이 수상했다. 그는 아내가 사망했는데도 전혀 슬퍼하지 않았고 오히려 태연했다. 더욱 의아한 점은 아내가 죽은 날 아침에 현지 경찰서를 나온 그는 관광하듯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지나가는 여성 두 명에게 접근했다는 것이다. 길을 묻는 척 연락처를 교환하더니 다음 날 이 여성들에게 만나자고 연락했다. 우씨는 이들과 노래방으로 향했다. 그는 여성들과 어울려 신나게 노래 부르고 춤추며 놀았고, 이걸 휴대전화에 자랑삼아 남겼다.

귀국해서도 이상한 행동은 계속됐다. 아내 사망 열흘 만인 5월4일 우씨는 보험사에 전화를 걸어 사망보험금 수령을 문의한다. 담당자가 "보험약관에 따라 자살은 보험금 지급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자 한숨을 내쉬며 아쉬운 반응을 보였다. 아내를 잃고 열흘 만에 보험금을 청구한 것도 이상했지만, 전혀 슬픔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보험사 직원은 직감적으로 '위장 자살'을 의심하고 경찰에 통보한다. 관할 세종경찰서는 수사팀을 꾸려 조사하기 시작했다. 우선 현지 경찰에 요청해 사망 현장 사진, 사체 부검소견서 등을 받았다. 사인은 '뇌종창(뇌부종)'이었고, 니코틴 농도가 '치사 농도에 달했다'고 적혀있었다. 팔에는 세 군데의 주삿바늘 자국이 있었는데 왼쪽에 두 군데, 오른쪽에 한 군데였다. 모두 정확히 정맥을 찔렀다.

자료를 검토하던 경찰은 곳곳에서 미심쩍은 부분을 발견한다. 남편 우씨는 현지 경찰에 "아내가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했는데, 정작 숨진 김씨의 혈액에서는 알코올이 검출되지 않았다. 위에 있는 알코올이 혈액에 흡수되기 전에 사망했다는 뜻이다. 급히 한꺼번에 많은 양의 술을 마셨다는 뜻이다.

김씨의 팔에 있는 주삿바늘 자국 또한 정상적이지 않았다. 경찰은 전문가로부터 '니코틴 원액은 한 번 주사를 놔도 바로 독성이 퍼지기 때문에 혼자 힘으로 세 군데나 주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자문을 받았다. 더욱이 술을 마신 상태에서 정확히 정맥을 찾아 꽂을 확률은 거의 없었다.

평소 담배를 피우지 않던 김씨가 니코틴으로 자살했다는 것도 미심쩍었다. 경찰은 김씨가 타살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유력 용의자로 남편 우씨를 특정했다. 게다가 경찰은 숨진 김씨의 가족들을 통해 새로운 사실들을 알아냈다. 우씨는 부모가 운영하는 곰탕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미성년자인 김씨를 처음 만났다. 얼마 후 그는 김씨 부모를 찾아가는데 '결혼 계획서'까지 내밀며 결혼을 허락해 달라고 우겼다.

이걸 읽어본 김씨 부모는 황당했다. 앞뒤가 맞지 않는 조악한 내용에 못난 딸을 잘난 내가 데려가서 살 테니 허락해 달라는 강요서나 다름없었다. 더욱이 어디에도 사랑해서 결혼하겠다는 말은 단 한마디도 없었다. 김씨 부모는 "절대 안 된다"며 반대했다.

얼마 후 우씨는 김씨에게 임신 테스트기 사진을 부모에게 보내도록 강요했다. 물론 가짜였다. 결국 결혼 허락을 받지 못한 우씨는 다른 방법을 강구한다. 1998년생인 김씨는 2017년 4월14일자로 성년이 된다. 우씨는 이틀 후인 16일 김씨를 데리고 행정관서에 가서 혼인신고를 하고 법적 부부가 된다. 양가 부모에게는 알리지 않은 '비밀 신고'였다.

우씨는 왜 이렇게 김씨와의 혼인에 집착했을까. 그 속내는 10일 후 떠나는 신혼여행에서 드러난다. 우씨는 공항에서 여행자 보험에 가입해 여행 중에 아내가 사망하면 자신이 보험금을 수령하도록 했다. 그리고 일본에 간 다음 날 김씨가 사망한 것이다. 우씨는 또 김씨 부모에게 딸의 사망 사실을 곧바로 알리지 않고 8시간이 지난 시점에야 알렸다. 딸의 결혼 사실조차 몰랐던 부모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우씨는 김씨가 숨진 후 SNS에 '아내를 잃고 슬픔에 젖어 힘들게 보낸다'는 글을 올렸다. 그와 동시에 다른 인터넷 사이트에는 여중생과 성관계를 하고, 자신에게 여자친구가 3명 있다고 자랑하는 내용의 글을 올리는 두 얼굴의 모습을 보였다.

생전 피해자와 우씨가 신혼여행을 떠나기 전 찍은 사진 ⓒSBS 궁금한이야기Y 캡처·KBS 뉴스 캡처
생전 피해자와 우씨가 신혼여행을 떠나기 전 찍은 사진 ⓒSBS 궁금한이야기Y 캡처·KBS 뉴스 캡처
생전 피해자와 우씨가 신혼여행을 떠나기 전 찍은 사진 ⓒSBS 궁금한이야기Y 캡처·KBS 뉴스 캡처

여자 동창생 살해 미수 새롭게 드러나

경찰은 우씨의 이런 성향으로 볼 때 범행 관련 일기를 남겼을 것으로 봤다. 사건 발생 7개월 만인 11월24일 경찰은 정식 살인 사건으로 전환하고 압수수색영장을 받아 우씨 주거지를 수색한다. 예상대로 한글과 일본어로 뒤섞인 형태의 '살인일기'가 나왔다. 여기에는 '절벽에 데려가 흉기로 찌른 후 떨어뜨린다' 등의 내용이 자세히 적혀있었다. 니코틴과 관련해선 '햄스터에다가 니코틴 실험해 봤다'고 했는데, 니코틴 살인을 계획하고 실험까지 한 것을 알 수 있었다. 또 억대 보험금을 받아 '40살 전까지 10억원을 모은다'는 구체적인 계획도 세워놓았다. 휴대전화에서는 '남양주 니코틴 살인 사건'을 검색한 기록이 있었다. 우씨는 또 수시로 생각날 때마다 혼잣말로 녹음하는 버릇이 있었는데, 여기에도 범행 관련 내용이 있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우씨가 김씨 이전에 고등학교 여자 동창생을 같은 수법으로 살해하려다 실패했다는 정황이 나왔다는 것이다. 2016년 12월20일 우씨는 우연히 만난 동창과 연락을 하고 지내다 "내가 경비를 댈 테니 일본 여행을 가자"며 "대신 내 전자담배에 사용할 니코틴 원액을 구해 달라"고 제안했다

동창이 수락하자 두 사람은 일본 여행을 가게 된다. 우씨는 김씨처럼 국내 공항에서 여행자 보험을 들게 하고 오사카로 갔다. 두 사람은 술을 마신 후 숙소에 들어갔는데 우씨가 숙취 해소에 좋다며 음료수를 건넨다. 여성은 별생각 없이 받아서 한 모금 마셨는데 맛이 이상하고 목이 타들어가는 느낌이 들자 더는 먹지 않고 버렸다. 이렇게 해서 우씨의 1차 니코틴 살해 시도는 실패로 돌아간다. 그의 두 번째 범행 대상이 아내 김씨였던 것이다.

우씨는 김씨가 죽은 후에도 또 다른 범행 대상을 물색하고 있었다. 부모가 운영하는 식당에 새로 들어온 10대 후반의 아르바이트생들에게 '죽은 아내와 닮았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등 또 다른 희생자가 나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경찰은 우씨에 대해 강도 높은 조사를 벌였다. 그는 치밀하게 준비한 스토리를 반복하며 흔들리지 않았다. 경찰은 당시 상황을 여러 각도에서 디테일하게 반복 질문하는 방식으로 허점을 파고들었다.

우씨의 주거지에서 발견된 니코틴 액상과 원액 ⓒSBS 궁금한이야기Y 캡처
우씨의 주거지에서 발견된 니코틴 액상과 원액 ⓒSBS 궁금한이야기Y 캡처

니코틴 원액 수입 규제 강화로 이어져

그랬더니 호텔방 상황 등에서 엇갈린 증언이 나오는 등 우씨 답변이 꼬이기 시작했다. 그의 답변 중에는 "아내가 죽기 전에 화장실 변기에 앉아있었다"는 내용도 있었다. 화장실 밖에 있던 우씨가 알 수 없는 내용으로 순간적으로 스토리를 만들다가 오류를 드러낸 것이다. 처음에는 자살이라고 했던 말도 바뀌어 "아내가 자살하고 싶어 해서 니코틴 주사기를 팔에 꽂아주기만 했다. 피스톤을 누른 것은 아내"라고 번복했다. 동창생에 대해서는 "니코틴 원액을 탄 것은 맞다. 하지만 장난친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조사 과정에서 우씨는 다중적인 모습을 보였다. 여유롭게 조사를 받다가 불리한 내용이 나오면 갑자기 욕설을 하며 화를 내는 등 공격적이다가 손을 만지작거리고 물어뜯는 불안 증세까지 보였다. 사이코패스 검사 결과 40점 만점에 26점이 나왔는데, 어금니 아빠로 불린 여중생 살해범 이영학(25점)보다 높았다. 우리나라는 25점 이상을 사이코패스로 분류한다.

경찰은 약 1년간의 수사 끝에 2018년 3월 우씨를 구속한다. 살인, 살인미수, 보험사기방지특별법 위반, 상해, 강요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우씨는 끝까지 범행을 인정하지 않았다. 경찰 수사에서 어떤 증거를 들이대도 극구 부인하더니 법원에 가서도 태도가 바뀌지 않은 것이다. 죄책감을 느끼거나 반성하는 모습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1심은 검찰의 공소 내용이 인정된다며 우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수개월 전부터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 사망보험금을 타기 위해 이제 막 성인이 된 어린 부인을 낯선 이국땅에서 비참하게 살해했다"며 "진정한 반성의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항소심에서 우씨는 심신미약을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고 원심을 유지했다. 우씨는 상고했으나 대법원도 원심 판결에 문제가 없다며 무기징역을 확정했다. 이 사건 이후 니코틴 원액에 대한 수입 규제가 강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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