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460만원+α'인데 지원자 0명... 대사관 '경계인'의 설움[문지방]

김형준 2024. 4. 28.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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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해외 물가·월세 못 따라가는 처우
②내외부 갑질 표적 우려에 지원 머뭇
편집자주
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
재외공관 행정직원 출신 곽튜브(오른쪽)가 지난달 29일 인천공항 1터미널 밀레니엄홀에서 열린 ‘인천공항 개항 23주년 기념 디지털 전환 선포식에서 빠니보틀과 인사를 하고 있다. 뉴스1

기본급 1,950달러(약 270만 원)에 수당 1,400달러(약 190만 원). 달러당 1,370원으로 환산하면 우리 돈으로 약 460만 원입니다. 월급 외에 ‘주거보조비’ 항목으로 한 달에 최소 1,000달러를 더 얹어줍니다. 합격하면 부임하러 오는 항공권도 지원합니다. 무기계약직이라 고용안정성도 높은 편입니다. 1년 이상 일할 경우 귀국 편 항공료는 물론 상여금(월 기본급의 100%)도 지급합니다.

외교부가 최근 아프리카 A국가 대사관 행정직원(일반직)을 채용하면서 내건 조건입니다. 지원자격 요건도 그리 까다롭지 않다고 합니다. 직장인 초봉치고는 꽤 높은 편입니다. 하지만 두 차례나 지원자가 없어 지난달부터 공고에 재공고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외교관이나 부처 파견 주재관과 달리 행정직원들은 대사관에서 각종 실무업무를 도맡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세계 다른 지역 대사관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올해 주오만대사관과 주호놀룰루총영사관 등에서는 요리사를 뽑지 못해 공고를 다시 냈습니다. 주페루, 주체코, 주사우디대사관의 전문직 행정직원 채용은 지원 기한을 연장했습니다. 대한민국 외교의 최전선인 세계 곳곳의 재외공관에선 행정직원 구인난이 심각합니다.

왜 이렇게 인기가 없는 것일까요. 재외공관 행정직원들과 지망생 약 250명이 모여 정보를 공유하는 오픈채팅방을 들여다봤습니다. 이들 사회 초년생이 재외공관 지원을 주저하는 이유는 꽤 복잡합니다. 현실성 떨어지는 주거보조비와 장래성, 그리고 행정직원을 유독 홀대하는 조직문화 등이 꼽힙니다. 고환율 등으로 임금이 높아 보이지만, 정작 주거보조비가 현실에 맞지 않아 월급의 상당 부분을 주거에 활용해야 하는 점이 가장 큰 현실적 제약이라고 합니다. 특히 아프리카의 경우 불안한 치안 탓에 안전한 구역에 머물러야 하는데, 그런 지역의 월세는 ‘부르는 게 값’이라 월급을 보태더라도 감당하기 어렵다는 토로가 적지 않습니다.


노동권 사각지대 설움 속 2018년 한국노총 가입

외교부 전경. 연합뉴스

경제적 어려움뿐만 아닙니다. 재외공관의 수장인 대사나 공무원의 크고 작은 내부 갑질은 물론, 영사 업무 최전선에서 겪는 무리한 민원과 위협도 적잖은 고충이라고 합니다. 특히 하소연할 곳이 마땅찮은 험지나 소인수공관(적은 인원이 상주하는 공관)에서는 어려움이 두드러집니다.

지난 2월엔 “특정 공무원 부임 후 지속적인 언어적, 정신적, 신체적 폭행을 가했다“며 “정식 민원 절차를 알려달라”는 소인수공관 직원의 게시글이 공유됐고, 동아시아 지역 총영사관 직원은 새벽 2시에 본인 안경 분실했다는 전화를 받았다"면서 “새벽 4시에 주점에서 돈 없다고 영사관에서 술값을 대신 내달라는 요청도 있었다고 토로했습니다.

무엇보다 이들을 짓누르는 건 공관에서 일하지만 공무원은 아닌 ‘경계인’ 신분이라는 점, 그렇다고 불만을 드러내면 "나가라"고 배척하는 폐쇄적 문화입니다. 그나마 2018년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에 100명의 재외공관 행정직원이 가입해 노조 활동이 시작된 이후에는 여건이 나아졌지만 구조적 문제는 여전합니다. 700명 넘는 조합원이 가입한 노조는 올해 ①기본급 2.9% 인상 ②주거보조비 실비 상한 인상(해당 공관) ③한국국적 신규채용자 초임상한표 일부 상향 검토(50달러 이내) ④당직전화 인센티브 지급 등의 처우 개선을 이끌어냈습니다.

그리 파격적인 조건은 아닌 듯하지만, 노조원들의 찬성률은 70%를 웃돌았습니다. 그간 처우 개선이 얼마나 더뎠는지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노조 결성 이전까지는 사실상 공관장이 수당을 결정해 주는 구조였을 정도로 행정직원 노동권은 고려되지 않았다”며 “대사관 내에선 공무원도 아니고 외부인도 아닌 ‘경계인’ 또는 ‘유령노동자’라는 표현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을 정도”라고 말했습니다.


곽튜브의 추억 이어 가길

재외공관 행정직원 복리후생 실태

한국노총에 따르면 노조 결성 이전까지는 재직증명서도 정부가 아닌 공관장 명의로만 발행돼 행정직원들은 은행 대출받기도 어려운 실정이었습니다. 지금은 외교부 장관과 공관장 명의로 발행돼 사정이 나아졌다고 합니다. 4대 보험도 강경화 전 장관 재임 중이던 2017년 12월 처음으로 단체협약이 체결돼 2018년 1월부터 적용됐다는 게 한국노총 설명입니다. 스스로를 유령노동자라고 표현했다던 행정직원들의 자조 섞인 표현이 왜 나오게 됐는지 비로소 이해됩니다.

재외공관 행정직원은 최근 수년 사이 아제르바이잔 대사관에서 일하며 유튜브 채널 운영을 시작했던 ‘곽튜브(본명 곽준빈)’의 영향으로 청년들의 반짝 관심을 받았던 직군으로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2018년 재외공관 행정직원 부임 후 외교부가 가족에게 '길러주셔서 감사하다'는 편지와 꽃을 보내 가족 모두가 펑펑 울었다는 일화는 잔잔한 감동을 줬습니다. 곽튜브가 재외공관에서 일하며 꿈을 키워 구독자 약 200만 명 유튜버로 거듭났듯 다른 청년들도 해외 생활의 발판으로도 삼고 실무 경험도 쌓을 수 있는 기회의 공간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장점을 지닌 직군임에도 구직 청년들의 눈높이와 정보력에 여건이 미치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특히 외교부는 행정직원 공백이 클수록 영사업무 등에 차질이 만만찮은 만큼, 재외공관 행정직원들의 처우나 복지, 요구사항 등을 보다 적극적으로 파악하고 개선해가야 합니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이들이 정착해 결혼하고 출산할 수 있는 여건까지 갖춰야 한다”면서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지적합니다. 외교부도 이를 모르는 건 아닙니다. 외교부 관계자도 최근 수년 사이 다양한 처우가 개선되고 급여나 주거보조비도 올랐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앞으로 추가적인 (지원)방법들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종섭 전 주호주대사 사퇴와 정재호 주중대사의 갑질 논란 등으로 어수선한 가운데 열린 올해 재외공관장회의가 26일 끝났습니다. 각자의 부임지로 복귀한 공관장들이 ‘경계인’으로 살아가는 행정직원들의 고충에 틈틈이 귀 기울이고 수고에 고마움을 전한다면 행정 공백도 조금은 더 줄어들고, 훗날 이들이 재외공관을 떠나더라도 곽튜브처럼 외교부에 대한 멋진 추억을 안고 한 뼘 더 성장해 새 꿈을 펼칠 계기가 되지 않을까요.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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