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12년" 런던 세계 톱5→파리 1976년 이후 최소 선수단...메달 없어도 된다던 韓스포츠의 붕괴

전영지 2024. 4. 28.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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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축구, 올림픽 본선 10회 연속 진출 실패<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홍명보호 2012년 런던올림픽 동메달 사진=스포츠조선 DB
런던올림픽 여자배구 4강 사진=스포츠조선 DB

[스포츠조선 전영지 기자]12년 전 유럽에서 마지막으로 열린 2012년 런던올림픽, 한국은 22개 종목에 248명(남자 135명, 여자 113명)의 선수단을 파견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이후 20년 만에 최소 선수단이라고 했지만 '팀 코리아'는 강했다. 금메달 13개, 은메달 9개, 동메달 8개, 총 30개의 메달을 휩쓸며 '세계 5위'에 우뚝 섰다. 양궁, 사격에서 금메달 각 3개, 펜싱, 유도에서 금메달 각 2개, 태권도, 체조. 레슬링에서 금메달이 나왔다. 수영, 탁구 은메달 등 13개 종목에서 골고루 메달을 목에 걸었다. 단체 종목도 강했다. 홍명보 감독이 이끌던 남자축구가 사상 첫 동메달 역사를 썼고, 여자배구는 36년 만에 4강에 진출했다. '코리아'라고 하면 저마다 엄지를 번쩍 치켜들었다. 스포츠 강국의 자부심으로 가슴이 웅장해지던 시절이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지만 12년 만에 다시 유럽에서 열리는 2024년 파리올림픽은 말 그대로 격세지감이다.

26일 황선홍 감독이 이끄는 23세 이하(U-23) 남자축구대표팀이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아시안컵 8강에서 신태용 감독의 인도네시아(세계 134위)에 승부차기 끝에 패하며 파리행 티켓을 놓쳤다. 대한체육회는 파리올림픽을 앞두고 당초 170~180명의 출전권 획득을 예상했다. 23명의 남자축구 쿼터가 사라지며 큰 차질이 생겼다. '150명대' 미니 선수단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 '50명' 이후 역대 최소 규모 선수단이 예상된다. 2021년 도쿄올림픽 29종목 232명에 비해 80명 가까이 적다.

가장 큰 요인은 단체 종목의 부진이다. 도쿄 때는 남자축구, 야구, 여자핸드볼, 여자농구, 여자배구, 남자럭비가 출전했다. 파리에선 남녀축구, 남녀농구, 남녀배구, 남녀하키, 남녀 럭비, 남자핸드볼, 수구 등 단체종목이 모조리 티켓을 놓쳤다. 11회 연속 출전하는 여자핸드볼이 파리올림픽 유일의 단체종목이다. 남자축구는 1988년 서울 대회 이후 9회 연속 출전, 남자체조는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 이후 8회 연속 출전에서 올림픽 역사가 멈춰섰다. 황영조, 이봉주 등 '국민영웅'의 종목, 마라톤도 10회 연속 출전에서 멈춰설 전망이다. 유도, 레슬링, 복싱 등 투기 종목, 전통의 효자 종목들도 하향세다. 양궁, 펜싱, 수영, 배드민턴에 기대를 걸지만 양궁 외엔 메달색을 장담하기 어렵다.

100일 앞으로 다가온 파리 올림픽, 선전 다짐하는 선수단<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1년 도쿄올림픽에서 한국은 종합 16위(금 6, 은 4, 동10), 1984년 LA올림픽 이후 37년 만에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2004년 아테네부터 2016년 리우까지 유지한 톱10 역사도 끊겼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지난 17일 진천선수촌에서 열린 D-100일 선수단 격려 행사에서 "파리올림픽에선 금메달 5~6개, 종합 15위, 경우에 따라선 20위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12년 전 이 회장이 선수단장으로 나섰던 런던올림픽에서 세계 5위에 오른 스포츠 강국이 12년 만에 '참가'를 걱정할 처지가 됐다. 대한민국 엘리트 스포츠의 붕괴이자 대위기다. "메달지상주의" "메달 안 따도 된다"는 말은 이제 사치다. '안따는 것'이 아니라 '못따는 것'이다.

'엘리트 체육 때문에 생활체육이 발전하지 않는다' '메달보다 인권'식의 '편가르기' 이분법과 정치 논리. 현장과 동떨어진 정책, 경기력 향상, 세대교체를 등한시한 채, 잘 나갈 때 내일을 준비하지 않은 안이함이 참극을 빚었다. 스포츠 선진국에선 전문체육과 생활체육은 상생하고 선수들은 인권을 존중받는 가운데 '자기주도적' 메달에 도전한다. 그나마 양궁, 펜싱이 '금메달 후보'를 유지하는 건 현대, SK 등 대기업들의 지속적 후원 덕이다. 국정농단 사태에 시달린 대기업들은 지갑을 닫았고, 학교 운동부는 줄줄이 해체됐다. 예산과 상대가 수반되야 하는 팀 스포츠가 직격탄을 맞았다. 팀 구성이 안돼 소년체전 출전이 무산되는 학교가 즐비하다. 출산율 0.6명 시대에 학부모들은 축구, 야구, 골프 등 돈 되는 종목이 아니면 미래가 없는 힘든 종목을 시키려 하지 않는다.'최저학력' 부담에 짓눌린 학생선수들은 운동에 전념하고자 학교를 그만둔다. 그렇다고 일반학생들의 학교체육이 발전한 것도 아니다. 10대 아이들이 70대 노인보다 운동하지 않는 나라다.

준비에 실패하는 건 실패를 준비하는 것이다. 올림픽 금메달은 당연한 게 아니다. 1976년 '레슬링 영웅' 양정모의 몬트리올 금메달은 1948년 런던올림픽 이후 무려 8번째 도전 만에 일군 쾌거였다. 2021년 도쿄올림픽, 205개 출전국 중 112개국이 '노메달'이다.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잃어버린 12년'을 냉철하게 성찰하고, 다음 12년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할 시점이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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