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난에 급증하는 ‘전업자녀’…부모도 문제라는데 [한중일 톺아보기]

신윤재 기자(shishis111@mk.co.kr) 2024. 4. 28.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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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톺아보기-129]
지난달 19일 베이징 시내에서 횡단보도에 차량이 돌진한 사건으로 최소 1명이상이 숨진것으로 알려졌다. [사진=X 캡처]
최근 중국에서 소위 ‘묻지마 폭력 범죄’가 끊이지 않아 당국을 긴장시키고 있습니다. 지난달에는 하루 동안 단 몇시간 사이 베이징과 랴오닝, 저장성 등에서 차량으로 행인들에 돌진하는 3건의 사건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해 시민들에게 큰 불안감을 안겼습니다.

2021년 다롄시에서도 횡단보도를 건너는 행인들을 향해 돌진한 차량으로 4명이 죽고 3명이 중상을 입는 등 2020년 이후 유사한 사건이 잇따르고 있죠.

지난해 7월 광둥성에서는 한 남성이 유치원에 난입해 흉기를 휘둘러 무고한 어린 생명을 3명이나 앗아가 중국 전역을 충격에 빠뜨리기도 했습니다.

중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이들 ‘묻지마’ 사건에 공통점이 한가지 있다면 범죄자들이 전부 2030 청년들이었다는 겁니다.

기준까지 바꿨지만 ‘요지부동’ 中청년 실업률...부모들 체면치레도 한몫
최근 월별 중국 청년층 도시 실업률 추이 [그래픽=스태티스타]
청년층 분노의 직접적 원인은 역시 경제적인 것과 연관이 깊습니다. 무엇보다 실업률이 문제입니다. 지난 18일 중국 국가통계국이 내놓은 3월 청년(만 16~24세) 실업률은 15.3%였습니다. 중국 전체 실업률(5.2%)의 3배에 달한 수치 입니다.

지난해 6월 중국의 청년 실업률은 역대 최고치인 21.3%까지 상승했습니다. 그러자 당국은 돌연 월간 수치 발표를 중단한 뒤 올해부터 학생, 취업준비생을 제외한 ‘실제 구직자’만을 대상으로 한 반쪽짜리 수치를 내놓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는 겁니다.

베이징대 경제학과 장단단 교수 등 전문가들은 중국의 실제 청년 실업률이 40%를 훌쩍 넘을 것이라고 추산하기도 합니다. 실업률이 40%를 넘는다는 건 만16∼24세 중국 청년 2.5명 중 최소 1명 이상이 실업 상태라는 뜻입니다.

중국에서 전업 자녀의 주요 업무로 꼽히는 애완견 산보, 청소, 식사준비, 부모님과의 산책 등의 예시. [바이두]
취업난에 전업주부처럼 가사일을 하고 부모에게 생활비를 받는 ‘전업자녀(全職兒女)’ 가 늘고 있는데 대해, 일각에서는 일자리가 부족한 탓도 있지만 중국인들의 눈높이를 지적하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도 일부 기성세대가 청년층의 눈높이를 시비거리로 삼곤 하지만, 한국과 조금 다른 건 중국은 당사자 보다도 부모들의 눈높이, 즉 그들의 체면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점 입니다.

현재 중국의 대도시에서 대졸 청년이 한화로 월급 200만원 수준의 일자리를 찾는건 그리 어렵진 않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부모들이 적지 않다는 겁니다.

현재 중국의 부모들은 과거 산아제한 정책으로 단 하나뿐인 자식에게 어릴때부터 교육비 등 모든 역량을 쏟아 부어 키웠습니다. 그렇게 고생해서 자식을 국내외 명문대학에 입학시켰더니, 겨우 월급 200만원 받는데를 다녀서는 부모로서 체면이 깎인다는 겁니다.

구독자 10만명을 보유하고 있는 한 왕훙(網紅·중국의 인플루언서)은 “취업이 어렵다고 하지만 부모들의 체면이 문제” 라며 “비싼 돈 들여 영미권에 유학보냈는데 유명 외국계 기업에 들어가 500만원 이상은 받아야 면이 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중국내 손꼽히는 명문대를 나왔는데도 집에서 노는 청년들이 늘고 있는 이유입니다. 실제로 상하이 명문 푸단대학교의 지난해 학부 졸업생 가운데 취업자는 18.1%에 그쳐, 최근 5년래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씀씀이 줄이고 복권 긁는 中청년들...90년대 거품붕괴후 日 닮아가
즉석식 복권을 구매해 당첨 여부를 확인하고 있는 중국 청년들. [연합뉴스]
최근 들어 전기차 등 제조업 경기가 살아나고 있다곤 하나, 부동산 침체 지속과 함께 중국은 내수 부진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중국이 고도성장을 거듭하던 시대 태어나 자란 Z세대(만15세~만29세)는 14억 인구중 약 20%에 달합니다. 때문에 이들의 소비동향은 내수에 매우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죠.

그런데 경기 선행이 불투명하다보니 기업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채용 확대에 신중해질 수 밖에 없는데, 이로 인한 피해를 가장 직접적으로 떠안고 있는 세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경제적 불안정은 최근 ‘검소한 결혼식’ 등 씀씀이를 줄이는 추세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중국사회는 사회적 체면을 한국 이상으로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보니 결혼식을 하면 많은 사람들을 불러 가급적 화려하게 치르는게 일반적 입니다. 평균 결혼식 비용이 33만 위안(약 6200만원)으로 지난해 기준 중국 1인당 국민 가처분소득의 8배가 넘는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죠. 그런데 최근 Z세대 일각에서 결혼식에 돈을 가급적 적게 쓰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는 겁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장래에 대한 불안으로 수중에 얼마 되지도 않는 돈을 결혼 또는 노후연금에 쓰는걸 고민하는 청년이 늘고 있다”며 “예전 중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이라고 전했습니다.

씀씀이를 줄이는 한편으로 한탕으로 일확천금을 꿈꾸는 청년들은 늘면서 지난 한해 중국의누적 복권 판매액이 사상최대에 달하기도 했습니다.

청년층에게서 발견되기 시작한 이 같은 검소한 결혼식과 복권 판매량 증가등은 과거 1990년대 버블 붕괴후 일본에서 나타났던 현상과도 묘하게 겹치는 대목 입니다.

떡진 머리에 파자마·슬리퍼...낮은 처우 불만에 ‘거지꼴 출근룩’ 유행
중국 SNS에 ‘출근 룩’으로 올라온 인증 사진들. 잠옷바지와 슬리퍼, 수면 양말을 신은 모습. [바이두]
일부 청년들은 취직은 했지만 만족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좌절감을 독특한 방식으로 표출하고 있습니다. 회사에 마치 자다 일어나 바로 튀어나온 듯한 몰골(잠옷이나 파자마에 수면양말, 슬리퍼, 감지 않은 머리(원래 안감는 이들이 많다고 하지만)로 출근해 무언의 시위를 하는 겁니다.

최근 샤오훙슈(小红书)등 중국 SNS에는 청년들이 누가 더 형편없고 해괴한 모습으로 출근하는지 경쟁하듯 올리는 게시물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NYT는 이들 중국 청년들이 부적절한 복장으로 회사에 나가는 배경에는 낮은 처우와 줄어든 기회에 대한 상실감과 허탈함이 기저에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고의적 ‘자기 비하’로 눈높이에 맞지 않는 급여 등 열심히 일한 대가가 주어지지 않는 상황에 대한 불만을 반영한 행동으로, ‘탕핑주의’(身尙平·자포자기 심정으로 가만히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가 회사에까지 침투했다는 분석입니다.

상하이의 IT회사에 다니는 한 청년은 이 같은 행동을 하는 이유를 묻자 “아무도 이런 적은 돈과 복지에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대신할 수 없을 것” 이라며 “그걸 알기때문에 옷차림이나 상사의 말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시진핑 어록’ 등으로 정신무장과 애국주의 강조하나...효과 의문
중국의 대학 수학 교과서(좌)와 영어 교과서(우). 모두 시진핑 어록집 내용이 수록돼 있다. [웨이보 캡처]
중국 당국은 청년층에서 고조되는 사회적 불만에 대응해 정신무장과 애국주의를 활용한 교육강화로 대응하는 모습입니다.

지난 2021년 부터 공교육 분야에서 관련 교육이 공식 시작됐습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원까지 모든 교육과정 교과서에 ‘시진핑 정치사상’을 포함하도록 했는데, 최근 초등교과 수학시험문제에 대거 등장해 화제가 된 ‘시진핑 어록’도 하나의 예 입니다.

하지만 이 같은 접근이 해결책이 될지 의문입니다.

고용 없는 성장, 내수 부진, 투자 감소 등 복잡한 경제 사안으로 발생하는 사회현상이 애국심과 사상 교육으로 풀릴것 같지 않고 되레 청년들의 불만을 자극할 위험이 있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청년 실업의 근본 해결책을 찾기보다 정치적 선전에 의존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는 일입니다.

지난달 10일 시진핑 주석의 집무실이 위치한 베이징 중난하이(中南海)출입문을 향해 한 청년이 차량에 탑승해 돌진했다 끌려나가는 사건이 발생했다. [X 캡처]
이에 대해 중국의 최대 흑역사로 꼽히는 ‘문화대혁명’ 시절의 분위기가 짙게 뭍어난다는 지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홍콩 시사평론가 류루이사오(劉銳紹)는 이에 대해 “마오 시대때와 상당히 비슷한 조치로 이로 인한 효과는 개혁개방 이전 시대에 크게 미치지 못할 것”이라며 회의적 시선을 던졌습니다.

중국 당국은 과연 청년층의 불만을 적절하게 관리할 수 있을까요. 좀 더 현실적이고 실질적 접근방식을 찾지 않는 한 그들의 좌절감이 지도부에 대한 분노로 확산되는 일도 시간문제일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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