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할아버지 '이야기 보따리'… 행복한 동심, 시니어 자원활동가 ‘여우구슬’

이나경 기자 2024. 4. 28.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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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문화 교육·전래동화·그림 연극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 진행
세대 간 소통하며… 자아실현까지
내달 14일 슬기샘어린이도서관서
어르신들 그동안 활동 결과물 전시
수원시 장안구 슬기샘어린이도서관에서 시니어 자원활동가들의 작품 전시회가 한창인 가운데 ‘여우구슬’ 회원들이 ‘여우구슬’ 로고를 활용한 공동작업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나경기자

 

“어디서 고소한 냄새가 나지? 어흥!”

지난 16일 오후 2시께, 수원시 장안구 슬기샘어린이도서관 2층 전시실에는 동그란 탁자에 둘러앉은 어르신 7명의 목소리로 가득 찼다. 대본에 빨려갈 듯 집중하고 있는 이들은 개구진 소년부터 강아지, 호랑이 목소리까지 흉내내며 베테랑 성우와 같은 실력을 뽐냈다. 하얀 대본에 색색의 형광펜으로 칠한 흔적은 이들이 얼마나 열심히 연습했는지를 나타냈다. 누군가의 대사 실수에 웃음꽃을 피우며 할머니,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 옛날 이야기를 듣는 듯한 ‘줄줄이 꿴 호랑이’ 연습은 한동안 계속됐다.

이들은 시니어 자원활동가 ‘여우구슬’ 멤버들로 약 일주일 후 어린이 관람객에게 낱장의 그림을 뒤로 넘기면서 한 편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림연극 연습에 한창이었다. ‘여우구슬’은 지난 2017년 수원문화재단이 슬기샘어린이도서관 인근의 SK청솔노인복지관과 업무협약으로 수원시 거주 어르신을 모집하며 시작됐다. 현재는 총 11명의 회원이 활동 중인 ‘여우구슬’은 도서관을 기반으로 어린이 대상 전통문화 교육, 옛이야기 구연, 그림연극 공연 등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여우구슬' 활동가들이 어린이 관람객을 대상으로 한 그림연극 연습에 한창이다. 이나경기자

지난 2017년 ‘여우구슬’이 처음 만들어졌던 때부터 활동을 이어온 전관순 어르신(78)은 “아이들에게 연극을 들려주는 전날부터 마음이 설렌다”고 말했다. 전씨는 “과연 할머니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생각했는데, 방 안에 도란도란 둘러앉아 아이들과 소통할 때면 동심으로 돌아간 듯 활력이 생긴다”고 웃어 보였다.

현재 슬기샘어린이도서관에서는 다음 달 14일까지 ‘여우구슬’ 회원들이 활동한 내용과 작업 결과물을 선보이는 전시가 진행 중이다. 코로나 시기에 아이들과 직접 만날 수 없던 때 실내에서 하나 둘 작업해오던 예술작품들이 쌓여 이를 선보이는 전시로 이어진 것이다.

‘여우구슬’ 자원활동가들이 직접 만든 다양한 공예품과 작업물들이 전시된 모습. 이나경기자

전시실 한쪽에는 11명의 활동가들이 자신을 소개하는 자화상과 직접 작성한 프로필이, 다른 한편에는 손수건에 나비, 포도 모양으로 아름답게 새겨진 자수와 캘리그라피, ‘여우구슬’ 로고를 활용해 그림과 시 등으로 꾸며낸 공동작업물이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또 다른 한편에는 도서관 등 다양한 공간에서 어린 학생들과 무릎을 맞추고 둘러앉아 이야기를 들려주는 행복한 추억의 사진들도 가득했다.

수원문화재단 책문화부 관계자는 “이번 전시는 성취감 고취와 지역사회 재능 나눔을 위해 시작한 ‘여우구슬’ 홍보와 함께 지역주민들에게 이들의 기록을 공유할 수 있는 계기가 돼 뜻 깊다”라고 밝혔다.

여우구슬 활동의 가장 큰 목적은 ‘세대 간 소통’과 시니어들의 ‘자아실현’이다. 여우구슬을 지도 중인 황미숙 선생은 “우리가 어떻게 시니어로서 잘 나이를 먹어갈 것인가가 중요하다”며 “시니어들이 지역사회에서 아동에게 교양교육을 하며 스스로의 역할을 찾아간다는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도내 한 어린이집에서 여우구슬 활동가가 동화구연을 펼치던 모습. 수원문화재단 제공

이들은 수원뿐만 아니라 남양주, 충북 제천, 서울 등 전국 곳곳의 다양한 어린이도서관을 찾아다니며 구연동화를 펼치고, 종이접기와 팔찌만들기 등 자원봉사 및 다양한 문화교육 속에서 성취감을 맛보고 있다.

과거 유치원 원장이었던 윤명희 어르신(78)은 “아이들이 불러주면 어디든 가고 싶다”고 말했다. 윤씨는 어린 학생들과의 일정이 있는 때면 집에서 직접 꽃씨를 가져와 이름을 맞추는 등 프로그램 외에도 여러 활동을 준비할 만큼 적극적이다. 그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가 아이들 마음 한 편에 작게라도 남아 삶에 자양분이 되고, 어려울 때 힘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나경 기자 greennforest21@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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