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발 ‘ESG 규제’ 본격화···한국 기업에 리스크?[뉴스분석]

박상영 기자 2024. 4. 28.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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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현지시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유럽의회 본회의가 열리고 있다. AFP연합뉴스

유럽연합(EU)이 최근 환경은 물론 노동 인권 분야까지 기업에 광범위한 의무를 부과하는 통상 규제를 발표하면서 우리 수출기업들의 발등에도 불이 떨어졌다. 제품을 효율적으로 생산하는 것을 넘어, 환경·인권 등 다양한 요소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부 대기업은 관련 규제에 대비해왔지만, 대다수 중소기업은 준비가 미흡해 피해가 우려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4일(현지시간) 유럽의회를 통과한 ‘공급망 실사지침’에 따라 EU 매출액이 4억5000만유로(약 6611억원)를 초과하는 한국 기업은 이르면 2027년부터 매출 규모에 따라 실사 의무를 져야 한다.

구체적으로 원청기업은 협력업체를 포함한 공급망 전체에서 이뤄지는 기업 활동 중 인권과 환경 등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평가・관리해야 한다. 실사 항목은 강제노동, 임금착취 등 국제인권협약 사항뿐만 아니라 화학물질, 유해 폐기물 등에 관한 국제 환경협약, 기후변화 등 광범위하다. 이 같은 실사 의무를 지키지 않으면 원청기업에 과징금이 부과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EU에 수출하는 국내 기업은 1만8000여개에 달한다. EU 규제는 매출액 문턱이 높아 일부 대기업에만 우선 적용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공급망 전체에서 이뤄지는 기업 활동이 대상인 만큼 결국 협력업체인 중소기업도 영향권에 놓일 수밖에 없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성과가 낮은 중소기업은 공급망에서 배제될 위험도 있다. 실제로 이미 공급망 실사 관련 규제를 도입 중인 영국, 프랑스 등 일부 국가의 영향으로 BMW는 3년 평균 150여개사, 제너럴일렉트릭(GE)은 2020년 기준 71개사가 공급망에서 배제되기도 했다.

일부 대기업은 관련 규제에 대비해 발빠르게 준비 중이다. 롯데칠성음료 등은 ‘인권영향평가 결과보고서’를 통해 공급망 인권 실사 관행에 대해 평가하고 이를 공시하고 있다. 롯데칠성음료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공급망 노동자의 노동환경을 저해할 수 있는 계약 내용, 이행절차를 개선할 수 있는 장치가 부족하다”며 “계약 내용에 인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내용을 사전에 파악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중소기업은 실사 대응 준비가 미흡하다. 이동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산업부로부터 제출받은 ‘글로벌 공급망 ESG 실사현황연구’를 보면 지난해 2~3월 종사자 수 10~300인 미만 제조기업 500개사 중 59.0%는 공급망 실사를 준비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지난달 대한상공회의소가 내놓은 국내 수출기업 205개사 대상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공급망 실사지침 대응 수준은 대기업은 47점인 데 비해 중소기업은 30점에 그쳤다.

일부 형편이 나은 중소기업은 주로 외부기관을 통한 진단・컨설팅으로 대응 중이지만, 전반적으로 실사 대응을 위한 전담조직 등 담당 인력은 부족한 실정이다.

최근 EU가 기후 분야 등에서 잇달아 규제를 도입함에 따라 기업들의 대응도 중요해졌다.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는 지난해 10월부터 본격적인 준비 기간인 전환기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철강, 알루미늄 등 제품을 EU에 수출하는 한국 기업들은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 배출량을 산출해 EU에 분기별로 보고해야 한다. 그러나 일부 기업은 탄소 배출량 의무 보고에 대비하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기후·인권 환경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중국보다 경쟁력이 생길 것이라는 기대 섞인 전망도 내놓는다. 지난해 독일 자동차업체 폭스바겐은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 공장에서 강제노동에 연루됐다는 의혹에 대해 외부 감사를 받기도 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이번 공급망 실사지침으로 관련 규제가 미비한 일부 국가보다 산업 경쟁력이 더 생길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박상영 기자 s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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