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지키려는 아빠, 몸무게 절반으로 줄어…눈물겨운 사랑도 사라질 위기라는데 [생색(生色)]

강영운 기자(penkang@mk.co.kr) 2024. 4. 28.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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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색-26] 붉은 꽃이 피어났을 때, 아비와 새끼는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기쁨과 환희가 아니었다. 그들의 몸에 타고 흐른 건 절멸과 죽음의 공포였다. 꽃은 삶의 터전이 모두 무너진다는 징후였다. 사멸의 상징이었다.

그들이 사는 곳은 바로 영원한 동토(凍土)였어야 할 남극이었다. 공포를 느낀 이들은 황제펭귄 부자. 푸르른 남극에서 부자는 삶의 위협을 느꼈다. 꽃은 얼음이 모두 녹았다는 최후의 메시지이자, 종(種)에 내려진 ‘시한부’ 선고였다.

얼음은 누대가 일궈온 삶의 터전이었다. 이곳에서 사랑을 나누고, 먹이를 구했으며, 새끼를 키웠다. 얼음 없이는 그들도 존재할 수 없다. 피부에 따스한 바람이 부자를 스쳤다. 온화한 바람결이 칼날처럼 아팠다.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남극에서 사는 황제펭귄도 서식지를 점점 잃어가고 있다. [사진출처=Hannes Grobe]
꽃이 피기 전, 여러 징후가 있었다. 햇살이 뜨겁게 느껴진 날이 잦아졌다. 보이지 않던 맹금류가 나타났다. 새로운 포식자의 등장으로, 펭귄들은 더 많이 죽임을 당했다. 날씨가 추웠더라면, 얼음이 풍부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었다.

천적의 부리를 피하더라도, 자기 부리를 간수 못해 죽는 일이 허다했다. 몇몇 황제펭귄은 바다에 떠내려온 형형색색의 무언가를 먹고 죽어 나갔다. 플라스틱이었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 삶. 전대미문의 죽음이었다.

저주의 기원을 이들은 알지 못했다. 왜 이 땅에 꽃이 피는지, 따스한 바람이 부는지, 이상한 부유물들이 바다에 떠다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지구를 지배하는 어떤 종의 무심함 속에 벌어지는 끔찍한 사실을 알지 못한 채 그들은 그저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붉은꽃이 불러온 조용한 대학살이었다.

어딘지 모르게 외로워 보이는 황제펭귄. [사진출처=Diego Tirira]
황제펭귄의 눈물겨운 부성애
4월 25일은 펭귄의 생물학적 중요성을 기념하는 세계펭귄의 날입니다. 기후변화로 그들의 삶은 위협받고 있습니다. 2100년에는 그들의 서식지 98%가 사라질 것이란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남극이 따뜻해지면서 벌어질 일입니다. 조만간 황제펭귄에게 닥칠 일을 상상하면서 몇 문장을 적었습니다. 일종의 경고문이자, 일종의 반성문입니다.

황제펭귄은 남극에 서식하는 몇 안 되는 종 중 하나입니다. 영하 수십도로 떨어지는 극한의 환경에서 살아남도록 진화한 동물이지요. 강력한 생존본능을 지닌 덕분에 그들에게 ‘황제’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내 새끼를 위해서 추위와 배고픔은 견딜 수 있지” [사진출처= Hannes Grobe]
그들은 정말이지 치열하게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수컷 황제팽귄이 엄동설한의 날씨에서 새끼를 지키는 모습은 경이를 자아냅니다. 삭바람이 쉼 없이 불어도 미동도 하지 않습니다. 궂은 날씨, 화창한 날씨를 가리지 않고 제 자리를 지킵니다.

먹이도 당연히 입에 대지 않습니다. 사냥을 나섰다가 알이 위험에 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 달에서 석 달 동안 알을 품고 있는 수컷의 몸은 야위어만 갑니다. 38kg에 달하는 몸무게는 어느덧 20kg으로 줄어 있었지요.

“아들아, 너를 정말 사랑으로 키웠단다.” [사진출처=Ian Dufy]
남극에서 분투해 살아가는 황제펭귄
어미는 어디 갔냐고요. 차디찬 바다에서 사냥으로 분투 중입니다. 새끼와 수컷황제펭귄을 먹이기 위해서지요. 그녀 역시 차가운 물 속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어느덧 알이 꿈틀대기 시작합니다. 마침내 앙증맞은 얼굴을 아비에게 보여줍니다. 아비 황제펭귄은 위 속에서 우유와 같은 음식을 게워내 새끼를 먹입니다. 아직 어미가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냥에 나서는 황제펭귄.
열흘이 지났을 무렵. 어미 펭귄이 귀환합니다. 많은 수컷 황제펭귄이 제 짝을 마중 나갑니다. 우리 눈에 똑같아 보이는 황제펭귄들이지만 파트너만큼은 기가 막히게 찾아냅니다.

황제펭귄 개체마다 고유의 음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미는 가정으로 돌아와 남극 크릴새우, 빙하 오징어와 같은 양질의 음식을 먹이지요. 가족 잔치가 시작됩니다.

새끼를 돌보는 황제펭귄. [사진출처=Christopher Michel ]
“여보 애 보느라 고생했어요”
부화 후 50일이 지나면, 새끼 황제펭귄도 제 역할을 제법 해나갑니다. 다른 새끼들 수백 수천마리가 모여 겨울바람에 맞서 서로의 체온을 나눕니다. 회색빛을 띠는 새끼 황제펭귄들 여러마리가 옹기종기 모여 겨울을 나는 모습은 귀여움 그 자체지요.
“자 이제 서로 체온을 나눌 시간이야” [사진출처=TESSIER EWAN]
부모들은 아이들을 돌볼 몇 마리만 제외하고 모두 사냥을 나갑니다. 최소 80km에서 최대 1400km까지 떨어진 곳까지 떠나는 대여정입니다. 고단하지만, 새끼를 위해서라면 못 할 일도 없습니다.
“여보 어디야, 엄마 어딨어요” 황제펭귄과 그 새끼들.
“얘들아, 엄마 곧 올거야” [사진출처= Giuseppe Zibordi]
70년 후에 황제펭귄은 지상에서 사라질지도
황제펭귄은 얼음 위에서 3400만년을 살아온 것으로 추정됩니다. 억척스럽지만, 보람으로 가득한 삶이었을 것입니다.
“작년보다 얼음이 준 거 같아” 새끼 황제펭귄들.
그런 그들의 서식지가 점점 파괴되고 있습니다. 얼음이 점점 사라지면서 생긴 일입니다. 얼음이 없이는 그들은 새끼를 먹일 수도, 사랑을 나눌 수도 없게 됩니다.

70년이 지나면 황제펭귄은 백과사전 속에서만 존재할지도 모릅니다. 지구의 지배자로 불리는 어떤 종의 윤택함 때문에, 수 많은 생명체가 절멸의 절벽에 서게 된 셈입니다. 남극에 꽃이 피기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황제펭귄은 계속 지구에 서식할 수 있을까. [사진출처=Hannes Grobe]
<세줄요약>

ㅇ남극에 사는 황제펭귄은 귀여운 모습과 더불어 넘치는 부성애로 주목받은 동물이다.

ㅇ두 달 동안을 먹지도 않고 알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ㅇ그런 그들이 멸종위기에 처했다. 우리 탓이다.

<참고문헌>

ㅇ피터 T. 프렛웰, 남극 해빙 감소로 번식에 실패한 황제펭귄, 네이처, 202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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