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배우 세우고 객석 열고…국립극단의 색다른 4월
국립극단이 연이은 실험적인 시도로 주목받는 행보를 펼치며 연극계에 새 지평을 열고 있다. 극단 역사에서도 길이 남을 4월이다.
이번 4월 국립극단이 올린 두 개의 작품은 나란히 공연계 화제의 중심에 섰다. 연극 ‘천 개의 파랑’은 국립극단 사상 최초의 로봇 배우를 세웠다는 점에서, 연극 ‘스카팽’은 관객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열린 객석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서울 종로구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에서 28일 막을 내리는 ‘천 개의 파랑’은 2019년 출판된 천선란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한국 과학문학상 장편소설 부문 대상을 차지하며 선풍적 인기를 끌었고 진보하는 기술 속에서 희미해지는 존재들을 올곧게 응시하는 이야기로 출간 직후부터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다.
‘천 개의 파랑’은 소설에 나오는 로봇 배우 콜리가 연극 무대에 등장한다는 점에서 일찌감치 화제가 됐다. 티켓 판매를 시작한 첫날 바로 매진을 달성할 정도로 인기가 남달랐다.
흔히 어색하게 연기하는 배우에 대해 ‘로봇 연기’라고 하지만 콜리는 자연스러운 연기로 배우들과 찰떡 호흡을 자랑하며 ‘로봇 연기’의 새로운 정의를 내렸다. 라이브 무대였지만 무대 뒤 오퍼레이터가 실시간으로 타이밍을 잘 맞춰준 덕에 만화 속 로봇처럼 흐름이 잘 이어졌다.
휴머노이드가 일상에 함께하는 시대상을 담은 이 작품은 인간의 일을 대체하는 디스토피아적 세계를 보여주면서도 인간과 로봇이 따뜻하게 공존하는 상황을 그렸다. 잘나가는 경주마였지만 다리를 다친 투데이, 투데이의 기수였지만 마찬가지로 하반신을 다친 콜리, 어렸을 적 걸린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해 휠체어를 타는 은혜까지 사람과 동물, 로봇이 하나의 공통점으로 묶이며 가슴 뭉클한 감동을 전한다.
145㎝의 아담한 체구의 콜리는 브로콜리에서 따온 이름에 맞는 초록색 외형, 로봇에 어울리는 기계 음성이 공연 내내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단역 조연이 아니라 이야기의 중심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콜리는 보는 내내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인 캐릭터다. 공연을 앞두고 고장 나 일부 회차가 취소되는 사태도 있었지만 본무대에서는 사고 없이 엄청난 존재감을 뽐냈다.
아직은 만화 속 로봇처럼 스스로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단계까진 아니었지만 로봇 같지 않게 작품에 이질감 없이 녹아들었다. 콜리의 활약은 앞으로 연극 무대에서 더 많은 로봇 배우의 등장을 기대하게 했다.
국립극단 대표 희극 ‘스카팽’은 원래도 웃음을 참기 어려운 시끌벅적한 연극이지만 이번에는 관객들이 아예 더 편하게 볼 수 있도록 전 회차 열린 객석으로 준비했다. 중간에 입장하고 퇴장하는 것도 가능하고 좌석 내에서 소리를 내거나 몸을 뒤척여 움직일 경우에도 제지를 최소화한다. 공연 중에도 부담 없이 오갈 수 있도록 객석 조명도 환하게 밝혔다. 갈수록 마니아층이 두터워져 관람 문화가 엄격해지는 공연계에서 관람 문턱을 낮추는 시도라는 점에서 돋보였다.
‘스카팽’은 프랑스어를 ‘몰리에르의 언어’라고 부를 정도로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가인 몰리에르가 말년에 집필한 ‘스카팽의 간계’를 원작으로 한다. 2019·2020·2022년에 이어 네 번째 시즌으로 돌아왔다.
‘스카팽’은 배우가 모자란다며 솔직하게 고백하고 무대가 조금 난잡하다 싶으면 작가가 대뜸 개입해 극을 멈추고는 “연결해”라는 말을 능청스럽게 하는 등 곳곳에 웃음 폭탄을 숨겨뒀다. 대사로만 웃기려 들지 않고 행동까지 웃음을 유발하는데 마냥 허무맹랑한 웃음 유발을 넘어 번뜩이는 사회 풍자도 잊지 않는다. 연극을 잘 모르는 사람이 봐도 연극의 매력에 푹 빠지게 하는 힘이 잔뜩 숨은 작품이다.
“동시대의 언어를 입히지 않는다면 그것은 살아 있지 않은 박제된 연극”이라고 말한 임도완 연출이 현재 상황에 맞는 풍자를 더했다. 축구대표팀에서 벌어졌던 일을 풍자해 “공연 전날에 탁구 치지 마”라고 하고 입틀막 퇴장 장면과 윤석열 대통령의 행동을 따라 하는가 하면 이종섭 전 호주 대사를 빗대 “재판 안 받고 호주로 도주하고 싶다”고 말하는 등 동시대성을 극대화했다. 반전을 선사하는 출생의 비밀까지 얽혀 있어 막장 드라마를 뺨치지만 보통의 막장 드라마에는 없는 유쾌한 풍자가 작품의 격을 한층 높인다.
열린 객석으로 운영하지만 막상 그렇게 관람에 방해될 정도의 행동을 보이는 관객도 없다. 서로 편하게 웃으며 볼 수 있으니 관객들도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는다. ‘스카팽’의 열린 객석 시도는 배려심이 점점 더 부족해져가는 사회에서 서로 조금 더 너그럽게 이해해줄 수 있는 마음의 소중함을 새삼 일깨운다.
쉬는 시간 없이도 2시간이 훌쩍 지나는 ‘스카팽’은 5월 6일까지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류재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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