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 국민연금 받기까지 너무 힘들어”…‘정년 연장’ 요구, 현실은 [방영덕의 디테일]

방영덕 매경닷컴 기자(byd@mk.co.kr) 2024. 4. 28.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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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인재창조원이 포스코 정년퇴직 예정자를 대상으로 GLD(Green Life Design)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모습. [사진출처 = 포스코]
“퇴직하고 연금 나오기까지 너무 힘들어, 보릿고개야.”

몇 년 전 정년퇴직을 한 선배 A씨를 최근 만났습니다. 퇴직 후 인생을 준비한다고 한 그였지만 씀씀이를 줄이기가 참 힘들고, 여전히 돈 들어갈 곳이 많다고 했습니다.

정년을 앞두고 자발적 은퇴를 결심한 B씨도 “직장 안이 정글이라면 직장 밖은 전쟁터다”란 말을 몇 번이고 했습니다.

직장 생활을 할 땐 별 부담없이 마셨던 커피 한잔마저 이젠 부담이 됐다는 그는 500원 할인을 받기 위해 텀블러를 직접 들고 다녔습니다.

‘정년 퇴직’. 이 말처럼 중장년층 직장인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말이 또 있을까요.

우리나라에서 법적 정년은 만 60세입니다. 하지만 국민연금을 수급하기까지 길게는 5년을 버텨야 하는 게 현실입니다. 이른바 ‘소득 크레바스(은퇴 후 소득 공백기간)’인데요.

이를 생각하면 가슴이 한번 더 ‘쿵’ 내려앉는다는 직장인들이 많습니다. 최근 노동계에서는 연금수급연령과 정년의 불일치 등을 이우로 정년 연장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키우고 있습니다.

사회적 변화에 맞춰 기업들이 정년 연장에 나서야한다는 주장부터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의견까지 분분합니다.

임단협서 뜨거운 감자 된 ‘정년 연장’
현대차 노사의 상견례 모습. [사진출처 = 연합뉴스]
특히 국내 주요 대기업에서 정년 연장은 베이비붐 세대(1955년~1974년생)의 은퇴와 숙련공을 구하기 힘든 제조업의 구인난 등과 맞물려 임단협(임금 및 단체협약)에서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습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회원사 124곳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 결과 정년 연장(28.6%)은 올해 예상되는 임단협의 주요 쟁점으로 가장 많이 꼽혔습니다.

지난 16일 HD현대 산하 3개 조선사(HD현대중공업·HD현대삼호·HD현대미포)는 정년을 만 60세에서 65세로 5년 연장하고 임금피크제를 폐지해 달라는 임단협 공동교섭안을 회사 측에 전달했습니다.

현대자동차 기아 노조의 경우 사측과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정년 연장을 올해 임단협 요구안으로 꺼내들 가능성이 큽니다.

지난 2월에는 삼성 11개 계열사가 참여한 삼성그룹노조연대에서 만 65세 정년 연장안을 꺼내 들었고요. LG유플러스 2노조도 올해 임단협에 만 65세 정년 연장을 요구한 바 있습니다.

창립 55년만에 첫 파업 직전까지 갔던 포스코 역시 당시 주요 쟁점이 바로 정년 연장이었습니다.

연금수급연령과 정년 불일치 문제 불거져
[사진출처 = 뉴스1]
2016년 법정 정년 60세가 시행된지 8년째인 올해 정년연장 목소리가 노조에서 커지는 배경은 무엇일까요.

우선 인구학적 변화상 우리나라는 1~2년 안에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지난해 국내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973만명으로 전체 인구 중 19.0%를 차지했습니다. 유엔(UN)에 따르면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20% 이상일 때 초고령사회로 구분을 합니다.

인구학적 변화에 따라 60대 이상 취업자가 전체 취업률을 견인하는 ‘고령 노동’ 현상이 심화되는 것 역시 정년 연장에 힘을 실어줍니다.

실제로 통계청이 발표한 ‘2024년 3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전년 동월 대비 60세 이상에서 23만3000명이 증가한 반면 20대는 9만7000명이 감소했습니다.

이같은 상황에서 국민연금수급연령과 정년의 불일치로 소득 공백 기간이 길어지는 문제가 불거지자 적극적인 해결책이 필요해졌고, 그게 바로 노조 측에서 내거는 정년 연장 요구입니다.

참고로 현 제도에서 국민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나이는 1953∼56년생 은퇴자가 61세, 1957∼60년생은 62세, 1961∼64년생 63세, 1965∼68년생 64세, 1969년생 이상은 65세입니다.

정년연장 해도 걱정...임금 부담과 청년고용은?
[사진출처 = 동국홀딩스]
이같은 노동계 분위기 속 한 기업의 결정이 최근 주목을 크게 받았습니다. 동국제강과 동국씨엠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업계에 따르면 동국제강그룹의 철강사업법인인 동국제강과 동국씨엠 노사는 각각 지난달 말 타결한 올해 임단협을 통해 정년 퇴직 나이를 기존 만 61세에서 62세로 1년 늘렸습니다.

이번 정년 연장은 생산직 뿐 아니라 사무직을 포함한 약 2500여명의 임직원에 해당합니다.

정년 연장 여부를 놓고 이견이 큰 기업들과 달리 노사 합의로 이같은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 많은 직장인들 사이 부러움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정작 해당 기업에서는 대놓고 홍보를 하긴 어려웠는데요.

정년을 일률적으로 높일 경우 기업에 임금 부담을 키우는 게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청년층의 신규 채용 감소 역시 불가피해서입니다.

한 재계 관계자는 “건강한 장년층이 많아진 만큼 60세 이후에도 일하는 장년층이 늘어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면서도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급증하고 청년 고용이 얼어붙을 수 있다는 점에서 정년 연장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고 말했습니다.

더 일하길 원하면...‘시니어 재고용’ 대안 떠올라
정년 연장을 두고 갈등을 빚는 노사는 당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시니어 재고용’을 확대하는 추세입니다.

정년은 60세 그대로 유지하면서, 더 일하기 원하는 근로자를 65세까지 재고용하는 것이죠.

대표적으로 시니어 재고용을 도입한 기업으로는 현대차, 포스코, HD현대중공업 등이 있는데요. 이들 기업은 현재 숙련 인력을 정년 도래 이후에도 계약직·촉탁직 형태로 6개월~1년 재고용하고 있습니다.

정부도 중소·중견기업 재고용 확대를 독려하고자 계속고용제도(재고용, 정년 연장·폐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숙련 인력을 고용한 사업주에 근로자 1명당 연간 1080만원 장려금을 지원하는 것입니다. 정부는 올해부터 이 장려금 지원 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기도 했습니다.

노조에서는 시니어 재고용 제도에 대해선 환영하면서도 궁극적으로 ‘정년 연장’을 도입해야한다고 주장합니다. 재고용의 경우 정규직과 처우나 복지측면에서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많은 기업들은 임금피크제가 없는 정년 연장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임금 유연성을 높이는 일이 우선돼야 한다는 겁니다.

마침 사회 곳곳에서 급격한 인구 고령화 등을 우려하며 국민연금 가입연령 연장에 관한 논의가 현안으로 떠올랐습니다.

이와 맞물려 계속 고용방안과 임금 시스템 개편에 관한 고민도 함께 이뤄져야 합니다. 중장년과 청년 근로자, 또 많은 기업들이 모두 동의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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