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못 받을 거라는 ‘공포 마케팅’
국민연금 위기론의 진실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된다고 한다. 이전 세대가 돈을 조금 내고 많이 가져가는 것은 ‘세대 착취’라고까지 표현하기도 한다. 국민연금 평균 수익비는 2.2배라고 한다. 100원을 내고 220원을 가져간다는 의미다. 낸 돈의 2배 이상을 가져가는 이전 세대는 폭리를 취한다고 한다. 이전 세대의 폭리만큼 후세대는 손해를 본다고 한다. ‘폰지 사기’(다단계 금융사기)라는 말도 나온다. 국민연금에 먼저 가입한 사람이 이익을 보고 나중에 가입한 사람이 그만큼 손해를 본다는 인식이다.
모든 돈에는 이자가 붙는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은행을 예로 들어보자. 내가 정기예금에 돈을 맡기면 은행은 나에게 맡긴 돈뿐만 아니라 이자까지 쳐서 준다. 내가 낸 돈보다 더 많은 돈을 준다고 이를 ‘폰지 사기’라고 하지 않는다. 내가 가져간 이자만큼 이후에 돈을 예금하는 사람이 손해를 보는 것은 물론 아니다. 만약 5% 이자가 붙는 상품에 예금했다고 하자. 100원을 넣으면 1년 뒤에는 105원이 된다. 17년 뒤에는 229원이 된다. 수익비는 2.2배가 훌쩍 넘는다. 내가 17년 동안 돈을 예금하고 2.2배 이익을 얻는 것은 ‘폰지 사기’도 아니고 미래 세대 착취도 아니다. 내가 쓸 수 있는 권리를 수년간 포기하는 기회비용의 대가다. 이는 ‘복리의 마법’이다.
국민연금도 마찬가지다. 세대 간 형평성을 추구한다고 100원을 낸 기존 세대에게 40년 뒤에도 100원만 가져가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최소한 이자는 쳐 줘야 한다. 만약 발생한 이자보다 더 적은 돈을 돌려주면 기존 세대가 희생하는 만큼 후세대에 돈을 준다는 의미다. 이것이 ‘수익비’라는 개념의 맹점이다. 수익비라는 개념은 사적연금 가입자의 이익을 산정하는 개념이다. 공적연금의 세대 간 형평성을 고려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일부 언론의 ‘공포마케팅’도 있다. 1990년생부터 국민연금을 받지 못한다는 뉘앙스의 기사다. 그런데 기사를 잘 읽어보면 “국민연금을 받지 못한다”고 단정하는 기사는 의외로 없다. “국민연금 받지 못할 수도?” 또는 “국민연금 받지 못할까?”라고 물음표를 던지는 식이다.
그래서 원종현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상근전문위원은 2022년 9월에 낸 논문에서 1992년생을 기준으로 국민연금에 낸 돈에 얼마나 많은 이자가 붙는지 계산을 해봤다. 딱 평균소득만큼 버는 1992년생 ㄱ씨가 30살부터 60살까지 국민연금을 내면 2억6천만원을 납부하게 된다. 이 돈엔 이자가 붙는다. 그리고 65살부터 88살(평균 사망연령)까지 받은 연금의 총액은 4억8천만원이다. 2억6천만원을 낸 ㄱ씨가 4억8천만원을 받기 위해 필요한 운용수익률(내부 수익률)은 5.8%다. 즉, 국민연금 기금이 연평균 5.8%의 운용수익률을 달성한다면 ㄱ씨는 2억6천만원을 내고 운용수익률만큼의 이자를 얹은 4억8천만원을 받는다. 만약 국민연금 수익률이 5.8%보다 높다면 ㄱ씨가 낸 2억6천만원은 4억8천만원 이상으로 불어난다. 그 이상의 차액은 후세대에 기부하고 사망하게 된다는 의미다. 실제로 국민연금 연평균 수익률은 얼마일까? 1988년 국민연금 시작부터 2023년 말까지 연평균 수익률은 5.9%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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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적립금 1050조원
그런데 왜 국민연금 기금은 2055년 에 소진된다고 할까? 이런 예측은 현실에서는 발생하지 않는 일종의 ‘스트레스 테스트’ 다. 대출 부도율 10%, 진도 9의 지진 등 현실에서 발생하는지 않을 특정한 상황을 가정하고 파악하는 것을 스트레스 테스트라고 한다. 2055년도에 국민연금 적립금이 소진 된다는 건 국가가 그때까지 단 한푼의 재정지원을 하지 않고, 연금기금 수익률이 4.5%이며, 그때까지 연금개혁이 한번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가정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다시 반복하지만 1988년 국민연금이 만들어진 이후 지난해 말까지 연평균 수익률은 5.9%다. 투자수익률 4.5%는 실제 현실에 부합되지 않는 일종의 스트레스 테스트 가정일 뿐이다. 국민연금의 과거 운용수익률만큼만 유지했을 때 기금의 소진 시점은 2070년 이상으로 훌쩍 늘어나게 된다. 만약 운용수익률을 조금이라도 더 높일 수 있다면 2080년 가까이 국민연금은 소진되지 않을 수 있다.
현재 국민연금에 쌓인 적립금은 1050조원이다. 이 중, 가입자가 낸 돈은 460조원밖에 안 된다. 590조원은 운용수익금이다. 이 운용수익금은 이전 세대가 자신의 기회비용을 포기하고 만든 수익금이다. 가입자가 낸 돈으로 연평균 5.9% 수익이 발생했다.
적어도 1990년대생 이후부터는 내부 수익률보다 과거 수익률이 높은데 왜 기금은 2070년이든 2080년이든 소진이 될까? 인구구조 변화 때문이다. 받을 인구는 증가하는데 내는 인구는 줄어드니 기금은 소진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아무리 기금이 소진된다 하더라도 최소한 자신이 낸 돈에서 붙는 이자는 낸 사람에게 주는 것이 원칙이다.
더욱이 국민연금이 소진된다는 스트레스 테스트는 국가가 단 한푼도 국민연금에 기여하지 않는다는 가정에 따른 결과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자살률은 전세계 최악이다. 당연한 결과다. 우리나라가 노인에게 지출하는 금액은 국민총생산(GDP) 대비 4% 미만이다. 그러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평균 지디피 대비 9%가량을 지출하고 있다.
우리에게 선택지는 세가지다. 현재의 노인 빈곤율과 자살률을 그대로 방치하는 방안, 기초연금을 늘리는 방안, 국민연금을 늘리는 방안이다. 혹자는 퇴직연금 등 사적연금을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재 퇴직연금 수급자는 1만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기초연금을 통해 노인복지를 달성하는 방안은 미래 세대에 부담이 지나치게 늘어나게 된다. 기초연금은 기여금도 없고 적립금도 없기 때문이다. 반면, 국민연금은 기여금도 있고 적립금도 있어 그만큼 미래 세대 부담을 줄여준다는 장점이 있다. 셋 중에 무엇을 선택하는 것이 좋을까.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예산서, 결산서 집행 내역을 매일 업데이트하고 분석하는 타이핑 노동자. ‘경제 뉴스가 그렇게 어렵습니까?’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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