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급 보물 신라금관도 위작 논란, 어떻게 구별하나
(시사저널=조명계 미술시장 분석 전문가(전 소더비 아시아 부사장))
"어디서 이런 귀한 금관을 얻으셨습니까? 이런 유물은 국가에 귀속돼야 하는 것 아닙니까?"
2005년 어느 날 지인이 신라금관 자료를 들고 필자를 찾아왔다. 접하기 어려운 신라금관의 출처를 집요하게 질문하니 지인은 곤란해했지만, 솔직하게 입수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사실 북한으로부터 온 것이다. 중국을 통해 매입했다"고 말했다. 1990년대 초에는 많은 재중동포와 중국 상인들이 북한과 중국을 오가면서 북한 고미술품을 중국으로 반출해 국내로 반입하는 일이 많았다.
수상한 북한 고미술품의 세계
세월이 흘러 2015년 즈음의 일이다. 서울 서초동에 있는 한 변호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장관급 기관장까지 역임한 이력을 지닌 변호사였다. 그와 약속 날짜를 잡고 그의 사무실을 방문했는데, 내 눈이 커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10년 전, 지인이 가져와 자료로만 봤던 번쩍번쩍한 신라금관이 앞에 놓여있었다. 변호사가 구입한 것이다. 그는 "내가 이 금관을 구입했는데 이 금관에 대해 누구는 '가짜'라고 하고, 누구는 '진짜'라고 말하고 있다. 대체 누구 말을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으니 교수님께서 의견을 달라"는 것이었다.
요청을 수락하고 머리가 복잡해졌다. 어디서부터 접근할 것인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미술 감정의 기본으로 돌아갔다. 고미술품 감정에서 경험 많은 전문가들은 육안 감식을 우선시한다. 육안 감식이란 '긍정 판독'을 말한다. 긍정 판독이란 감정하는 사람이 갖고 있는 지식과 경험을 기초로 자신의 안목과 부합되는지를 판독하는 것이다. 반대로 필자 같은 경우는 '부정 판독'을 한다. 위작의 근거를 찾아 역으로 판독하는 방법이다.
의뢰받은 신라금관의 검증을 위해 목숨을 걸고 북한에 갈 수는 없다. 필자는 진짜와 가짜는 반드시 어딘가에 작은 차이가 존재한다고 생각해 금관과 함께 첨부된 서류들을 꼼꼼히 살펴봤다. 분명 어딘가에 작은 하자가 분명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서류 가운데 1968년도 북한 관공서에서 발행된 서류와 북한의 정기간행물인 '조선예술'에 실린 기사에 의심이 들었다.
서울에도 이런 잡지를 볼 수 있는 곳이 있지 않을까 싶어 당시 통일부에 전화를 걸었다. 필자는 "'조선예술'이란 북한 잡지를 통일원에 가면 볼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고, 통일부 측으로부터 "웬만한 북한 자료들은 전부 가지고 있다"는 답을 받았다. 서울 서초동 국립중앙도서관으로 갔다. 1968년 8월호가 어디 있는지 훑어 내려갔다.
'조선예술' 8월호가 포함된 장서 묶음을 꺼내 한 장 한 장 보물 다루듯 확인하면서 넘겼다. 그러던 중 변호사가 갖고 있던 신라금관 서류가 위조된 것임을 확인했다. 누군가 진짜 금으로 가짜 금관을 만들고, 가짜 발굴조사보고서와 인장을 찍고, 가짜 '조선예술' 잡지 기사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옛 종이를 구해 흐릿하게 복사하고는 금관과 함께 팔았던 것이다.
변호사 사무실을 다시 찾아가 위작임을 말하고, 신라금관과 관련된 서류들을 보여줬다. 변호사는 말이 없었다. 변호사가 아직도 신라금관을 그대로 보유하고 있는지, 폐기했는지는 알 수 없다. 변호사의 소식은 몇 해 전, 어느 한 신문기사에서 본인의 부음을 본 게 끝이었다.
박수근 등 위작도 북한에서 유입
지금도 이쾌대, 김관호, 박수근 등의 회화작품을 비롯해 정교한 금속 유물들이 북한으로부터 유입되고 있다. 2000년대 들어서만 박수근 작품의 위품 수십 점을 목도했다. 모두 북한으로부터 유입된 것들이다. 이들 위품은 국내에서 검증하기 쉽지 않다는 점을 노리고, 한국 시장으로 밀려들어오고 있다.
광주시가 '2002 광주비엔날레 북한 미술전'에 전시할 북한 미술품 32점을 구입해 국내로 반입했는데, 모작 및 위작 시비가 있었다. 끝은 결국 흐지부지됐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에는 민족화해협력범국민위원회(민화협)와 북한의 문화보존지도국이 북한의 고구려 유물 227점을 전시하는 '2004 남북 공동기획 고구려문화전'을 개최했는데, 전시품 중 북한이 보낸 불상 한 점 뒷면에 새겨진 명문(銘文)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국보 119호인 '금동연가7년명여래입상'에 있는 명문과 동일해 위작 문제가 제기된 사건도 있었다. 이 또한 흐지부지됐다. 북한 정부가 공식적으로 보낸 유물도 이러한데, 민간 차원에서는 오죽하겠는가.
요즘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에서는 한국 미술품들을 공식 전시하고 있다. 김관호의 작품, 이쾌대의 풍경화 그리고 박수근의 1960년 작 《와이키키》 및 《세 명의 여성과 어린이》, 중섭의 《황소를 타는 소년》 등 기증품들을 전시 중이다.
'체스터 장'이라는 재미교포가 약 1000점을 기증했다고 한다. 그는 명성황후의 15촌 조카인 외증조부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았다고 한다. 15촌이라니 단순 계산이 안 된다. 직접 작품들을 보지 않았으므로 단언할 수는 없지만, 상당수가 북한 유입 작품으로 그 진위가 매우 의심스럽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미술시장은 수많은 출처 불명의 북한 미술품을 접했고 지금도 유입되는 중이다. 주의가 요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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