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車만 타면 ‘짐승’…‘민폐’ 욕했지만 타고싶다, 기아도 내놓는 아빠차 끝판왕 [세상만車]

최기성 매경닷컴 기자(gistar@mk.co.kr) 2024. 4. 2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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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스멀티유즈’ 다목적 아빠차
픽업트럭, ‘1석3조 슈퍼카’ 진화
“픽미 픽미 픽미 업” 본격 경쟁
KGM O100(왼쪽)과 기아 타스만 [사진촬영=최기성 매경닷컴 기자/ 기아]
“Change=Chance”

세상 모든 것은 변합니다. 변화는 위기이자 기회가 됩니다. 위기는 기회라는 말도 같은 의미겠죠.

변화가 거창할 필요는 없습니다. 작은 변화에 불과하지만 크고 다양한 결과를 만들기도 합니다.

단지 체인지(Change)의 지(g)가 씨(c)로 바뀌었을 뿐인데 뜻이 완전히 달라진 찬스(Chance)가 되는 것처럼 또 다른 기회를 만들어주는 ‘작지만 큰 변화’입니다.

요즘처럼 경기가 좋지 않을 때는 작지만 큰 변화,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창출할 수 있는 마케팅 전략이 더 주목받습니다.

대표 전략은 ‘원 소스 멀티 유즈’(one-source multi-use, OSMU)입니다. OSMU는 하나의 소스·콘텐츠를 여러 상품 유형으로 전개·개발하는 것을 뜻합니다.

투자비용을 아끼면서 높은 부가가치를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내가 OSMU 마케팅의 아빠다” [사진출처=스타워즈 장면 캡처]
OSMU에 가장 먼저 주목한 곳은 문화 분야입니다.

영화를 비디오, TV 방송, 게임, 캐릭터 등으로 파생시켜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죠. 비슷한 포맷의 시리즈물이나 아류(亞流)물을 만드는 것도 OSMU에 해당합니다.

조지 루카스 감독의 스타워즈(Star Wars)가 선구자로 여겨집니다. 미국 과학수사 드라마 CSI 시리즈(라스베가스·마이애미·뉴욕), ‘포켓몬’도 성공사례로 꼽힙니다.

‘삼시세끼’, ‘꽃보다 시리즈’ 등을 잇달아 성공시킨 ‘스타 PD’ 나영석도 OSMU의 대가라고 볼 수 있죠.

OSMU는 영화, 드라마, 게임을 넘어 기업 제품으로도 영역을 넓혔습니다. 단순히 ‘재활용’하는 수준으로 넘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높은 마케팅 전략으로 대접받고 있습니다.

픽업=SUV+오픈카+캠핑카
OSMU를 확산시킨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 [사진출처=현대차]
OSMU는 자동차 분야에서도 ‘작지만 큰 효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하나의 플랫폼(뼈대)으로 다양한 차종을 생산하는 게 OSMU 대표 사례에 해당합니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현대차 아이오닉5·아이오닉6, 제네시스 GV60, 기아 EV6·EV9 등이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를 공유합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국산차 전설’ 현대차 포니도 OSMU 전략을 실천했습니다.

포니하면 차량 뒤쪽이 사선처럼 비스듬한 패스트백을 떠올리지만 국산차 최초로 해치백, 픽업트럭, 왜건에 이어 쿠페 등 가지치기 모델로 나왔기 때문이죠.

포니 픽업 [사진출처=매경DB]
태생 자체가 OSMU와 관련있는 차종도 있습니다. 100년 전에 등장해 OSMU의 정석을 보여준 차종이죠. 국내에서 ‘픽업’이라 부르는 픽업트럭(Pick-up truck)입니다.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컨버터블(오픈카), 캠핑카를 픽업 한 대(one-source)로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죠.

픽업트럭은 트럭이면서도 트럭이 아닙니다. 프레임 위에 캐빈과 적재함을 얹는 구조는 트럭과 같습니다.

하지만 트럭과 달리 캐빈과 적재함이 일체감 있게 디자인됐습니다. 적재함 게이트도 좌우 양쪽과 뒤쪽에 나 있는 트럭과 달리 뒤쪽에만 있습니다.

픽업은 가장 미국적인 차종으로 여겨집니다. 미국에서 태어날 운명을 지녔다고 볼 수 있죠.

강하고 큰 것을 좋아하는 미국인들은 강하고 투박하며 덩치 큰 마초(짐승남) 성향의 차를 ‘드림카’로 여깁니다.

미국 마초 문화의 뿌리는 19세기 금을 찾아 광활한 서부를 개척했던 미국인들의 프런티어 정신, 카우보이 문화에서 유래했습니다.

거친 황무지에서 생존하기 위해 요구됐던 강한 남성상과 큰 덩치를 숭상하는 분위기, 청교도가 가져온 가족 중심 문화, 넓은 땅과 싼 기름 값, 안전을 위한 욕구 등이 맞물린 결과죠.

가장 미국적인 차로 여겨지는 픽업. 쉐보레 콜로라도 [사진출처=쉐보레]
짐칸 덮개가 없는 트럭인 픽업은 미국의 환경과 생활에 최적화된 차종입니다. 미국에서는 ‘마초의 로망’이죠.

현재도 차고를 갖춘 교외 주택이나 시골에 사는 미국인들 생활방식에 가장 잘 어울리는 다목적 차로 여겨지죠.

편의시설이 부족하고 배달 문화가 발전하지 않은 교외나 시골에 거주하는 미국인들은 픽업을 화물용은 물론 출퇴근용이나 가족 나들이용으로 다양하게 사용합니다.

미국에서 열린 모터쇼에서도 관람객에게 가장 사랑받은 모델은 친환경차도, 멋진 고성능차도, 편한 세단도 아닌 픽업입니다. 픽업 공개 현장에는 언제나 미국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죠.

시골 아재車에서 아빠용 슈퍼카로
무쏘 스포츠 [사진출처=매경DB]
미국에서 대접받던 픽업은 한국에서는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천대받았습니다. ‘이왕이면 큰 차’를 찾는 한국인들도 덩치 큰 픽업을 부담스럽게 여겼습니다.

SUV보다 크고 넓지만 외모는 투박하고 승차감은 나쁘고 연비도 좋지 않은 ‘짐차’로 평가절하 했습니다. 주차공간이 미국보다 좁은 한국에서는 ‘민폐’라는 욕도 먹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카우보이 옷차림의 ‘짐승남’이 타는 차로 여겨졌지만 한국에서는 ‘시골 아재’가 타는 ‘소형 트럭’으로 간주됐습니다.

렉스턴 스포츠 칸 [사진출처=KGM]
인생역전 뺨치는 차생역전이 일어났습니다. 자동차 기술 발전 덕분이죠. 디자인, 주행성, 안전성, 편의성, 승차감 등을 모두 향상한 다재다능한 ‘만능 SUV’로 신분 상승했습니다.

패밀리카로 사용하면 아빠를 못하는 게 없는 ‘슈퍼맨’으로 만들어줍니다.

온·오프로드를 가리지 않는 주행성능을 갖춰 출퇴근용도는 물론 레저용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죠.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으로 자동차시장 화두가 된 차박(차에서 숙박)에도 최적화됐습니다.

적재함이 길고 넓어 SUV보다 편리하게 차박할 수 있습니다. 적재함이 개방돼 오픈카처럼 ‘별밤지기’ 낭만을 즐길 수 있습니다.

적재함에 커버를 설치하면 외모도 SUV처럼 변하고, 화물도 안전하게 실을 수 있습니다. 캠핑카로 컨버전(개조)할 수도 있습니다.

포드 레인저 [사진촬영=최기성 매경닷컴 기자]
세금도 쌉니다. 국내에서는 국산 픽업은 물론 수입 픽업도 화물차로 분류돼 세제혜택을 받죠. 개별소비세는 면제입니다. 취득세도 5%로 승용차보다 2% 포인트 낮습니다.

연간 자동차세는 2만8500원에 불과합니다. 같은 배기량의 승용차를 구입할 때보다 연간 70만원까지 아낄 수 있습니다.

활용도 측면으로 살펴보면 포람페(포르쉐, 람보르기니, 페라리)보다 더 다재다능한 패밀리 슈퍼카입니다.

국산차 브랜드들도 픽업 개발에 눈뜨기 시작했습니다. SUV가 2% 부족하다고 여기는 소비자들을 끌어들여 새로운 틈새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고 판단해서죠.

기아 타스만·KGM O100 출격 태세
무쏘 스포츠 [사진출처=매경 DB]
국내 픽업 역사는 47년에 달합니다. 국산 최초 픽업은 현대차가 만들었죠. 국산 최초 고유 모델 승용차인 포니의 가지치기 모델인 포니 픽업이 1977년 출시됐습니다.

포니 픽업 이후 국산 픽업 대표주자 자리는 KG모빌리티(옛 쌍용차) ‘스포츠’ 시리즈로 넘어갔습니다.

2002년 무쏘 스포츠를 내놓은 이래 코란도 스포츠, 렉스턴 스포츠, 렉스턴 스포츠 칸을 잇달아 내놓으며 ‘픽업 대명사’가 됐습니다.

현재 국내에서는 렉스턴 스포츠(칸)이 픽업 시장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수입차로는 픽업 본고장 미국 출신인 쉐보레 콜로라도, GMC 시에라, 포드 레인저, 지프 글래디에이터 등이 있습니다.

시장 규모는 축소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렉스턴 스포츠(칸)는 출시된 지 오래돼 식상해졌고, 수입 픽업은 가격 경쟁력이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지프 글래디에이터 [사진출처=지프]
국토교통부 통계를 사용하는 카이즈유 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판매된 픽업은 1만8199대였습니다. 전년도의 2만9685대보다 38.7% 감소했습니다.

지난해 국내 판매된 픽업 10대 중 8대는 렉스턴 스포츠였습니다. 판매대수는 1만4667대로 집계됐죠. 수입 픽업 중에서는 콜로라도가 가장 많이 팔렸습니다. 판매대수는 1736대였습니다.

올해 1분기(1~3월) 픽업 판매대수는 3978대로 전년동기보다 14.6% 줄었습니다.

자동차업계는 가성비 높은 국산 픽업이 나오면 시장 규모가 다시 커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시장 규모를 키울 대표 모델로는 기아 타스만과 KG모빌리티 O100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타스만 위장막 모델 [사진출처=기아]
기아는 내년에 국내 출시할 브랜드 첫 픽업트럭 차명을 ‘타스만’으로 확정하고 최근 실루엣을 공개했습니다. 차명은 호주 최남단의 ‘타스마니아’(Tasmania)와 타스만 해협에서 가져왔죠.

KGM도 올해 안에 렉스턴 스포츠보다 작은 ‘O100’을 생산할 계획입니다. KGM 효자 SUV인 토레스를 기반으로 만든 전기 픽업입니다.

테슬라 전기 픽업 ‘사이버트럭’도 국내 출시될 예정입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고르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게 됩니다. 픽업들이 자신을 선택해달라며 ‘픽미 픽미 픽미 업’(Pick me, Pick me, Pick me up)을 외칠테니까요.

업계 관계자는 “OSMU 성향의 픽업의 가장 큰 장점은 1석3조 효과를 창출하는 다재다능함”이라며 “기존에 없었던 국산 픽업이 나오면 SUV는 레저용으로 2% 부족하다고 여기는 아빠차 구매자들에게 인기를 끌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습니다.

전기 픽업인 O100 [사진출처=KGM]
*사족(蛇足) OSMU는 한국인 성향과 관련있습니다. OSMU라고 정의를 내리지 않았을 뿐이죠. 한국 음식문화를 대표하는 김치도 OSMU 성공사례로 봐야 합니다. 무쳐 먹고 묵혀 먹고 지져 먹고 볶아 먹고 끓여 먹고 씻어 먹고 넣어 먹습니다. 배추만 사용하는 게 아니라 무, 파, 갓, 깻잎, 오이는 물론 양배추와 비트로도 만들 수 있습니다. 다른 재료, 다른 음식과 궁합도 우수합니다 김밥과 라면도 OSMU 성향을 지녔죠. 베이컨, 마요네즈, 버터, 돈가스 등 우리 것이 아닌 재료와도 잘 어울립니다. 온돌방과 이불 문화에도 OSMU 정신이 깃들어있습니다. 침대와 달리 이불을 포개면 공간을 넓게 활용할 수 있습니다. 사용 목적에 따라 방을 다채롭게 구성할 수도 있습니다. 온돌은 추운 날씨에도 방바닥 전체를 사용할 수 있게 해줍니다. 한국에서 OSMU 문화가 발전한 원천은 지루하고 고루한 것은 못 참는 한국인들의 프로불편러 성향 때문이 아닐까요. 불편은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와 시너지 효과를 창출했습니다. 프로불편러들이 많은 한국이 세계인들이 감탄하는 ‘편한 나라’가 된 게 이를 증명합니다. 자동차도 마찬가지입니다. 프로불편러들의 활약(?) 덕분에 한국차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편의성의 제왕’이 됐을 겁니다. 한국의 프로불편러는 미국 출신 픽업도 가만 놔두지 않았습니다. 적재함에 커버를 씌워 SUV처럼 활용한 게 이를 증명합니다. 픽업이 트럭에서 벗어나 가성비 높은 패밀리 슈퍼카로 거듭나고 있는 것도 따져보면 프로불편러 덕분일 수 있습니다. 프로불편러들의 활약으로 글로벌 자동차시장에서도 ‘K-픽업’ 시대가 열리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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