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사로 보는 세상] 수술 통증 줄이는 마취제 250년 전부터 나왔다

예병일 연세대원주의대 의학교육학과 교수 2024. 4. 2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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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기원전 1600년 전부터 두개골 절제술을 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John W. Verano 제공

● 통증을 줄이기 위한 오랜 방법

수술은 신석기 시대 때부터 행해졌다. 유대인들은 오래 전부터 할례를 시도했고 인도에서는 기원전에 이미 코 재건을 위한 성형술을 시행하고 이에 대한 내용을 '상히타'와 같은 책에 기록해 두었다. 여러 책 중에서 수술과 관련하여 가장 유명한 것은 '수슈루타 상히타'로 2013년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수술은 사람의 몸에 칼을 대어 필요가 없거나 상한 부위를 잘라내는 방법이다. 몸 안쪽에 문제가 발생한 경우 거기까지 도달하기 위해 몸 안으로 통하는 구멍(입, 코 등)이나 몸 바깥쪽으로 노출된 피부를 절개하고 들어가야 한다. 통증을 느끼는 감각은 사람 몸 곳곳에 위치해 있으므로 수술을 하는 경우 보통은 환자가 통증을 느끼게 된다.

경험적으로 수술 이외에는 적절한 치료법이 없을 때 수술을 해야 했지만 ‘수술을 받느니 차라리 죽겠다’는 생각을 가진 환자가 선뜻 나서지 못한 것은 통증 때문인 경우가 많았다. 낫는 것이 분명치도 않는 상황에서 당장 참기 어려운 통증을 감수하고 수술을 받는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래 전부터 수술시 통증을 줄이기 위해 사용한 방법으로는 수술받을 부위를 차갑게 하기, 알코올, 아편이 포함된 약물 등이 있다. 체온이 떨어져 사람의 몸이 차가워지면 감각기능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는다. 그러면 통각이 감퇴하여 수술을 쉽게 받을 수 있지만 그 효과는 미미한 편이다.

인류와 역사를 함께 한 알코올도 수술을 쉽게 받기 위해 이용되었다. 술은 예로부터 분위기를 돋구기 위해 사용되었으며 알코올이 흡수되면 취하게 된다. 취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 몸에 상처가 생긴 걸 보면서 지난 밤에 생긴 상처를 발견하는 경우가 있지만 혈중 알코올 농도가 높은 상태에서 통증으로 고생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를 이용하여 수술시 환자들이 알코올을 섭취하곤 했다.

오늘날과 같이 효과적인 성분만 추출하여 얻은 약이 없던 시절에 약초는 널리 이용되던 약이었다. 그 중에서 통증 해결을 위해 사용한 것은 기원전 3세기 경부터 이용된 양귀비다. 양씨 성을 가진 당나라 현종의 귀한 부인이라는 뜻의 양귀비는 식물 양귀비를 '기쁨의 식물'이라 했다고 전해지는 등 중국에서 양귀비를 통증 해결을 위해 사용하곤 했다.

양귀비에는 아편 성분이 들어 있어서 한 번 사용하면 계속 사용하고 싶은 습관을 불러 일으키므로 오늘날 마약으로 분류되어 있다. 과거에는 통증 해결을 위해 약초가 사용되었고 그 중 양귀비가 대표적인 것이었다.

이산화질소(N2O)를 발견한 프리스틀리 초상화. 위키미디어 제공

● 최초의 전신마취제 아산화질소

1772년에 영국의 프리스틀리(Joseph Priestley)는 아산화질소(N2O)를 발견했다. 이 아산화질소가 인체에서 통증을 줄이는 데 이용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처음 가진 이는 영국의 데이비(Humphry Davy)였다. 그는 소화불량과 두통으로 컨디션이 나빴던 어느 날 아산화질소 기체를 코에 대고 들이마신 순간 기분이 좋아지고 통증을 잊게 되는 현상을 발견했다.

데이비는 이를 뽑을 때 아산화질소를 이용하여 통증을 줄일 수 있었으며 1799년에 아산화질소를 수술에 이용하면 도움이 될 거라는 글을 썼지만 이제 막 약관을 넘긴 그의 글은 타인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기분이 좋아져 웃음을 짓게 된다는 뜻으로 웃음기체(laughing gas, 笑氣)라고도 한 아산화질소를 들이마시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파티에서 흥을 돋구기 위해 이를 사용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데이비의 인연이 있었던 철학자이자 시인 콜러리지(Samuel Taylor Coleridge) 다른 시인 사우디(Robert Southey) 등도 아산화질소를 즐겁게 사용한 이들이었다.

특히 콜러리지는 아산화질소가 형용할 수 없을 만큼 행복을 전해주는 물질이고 전문 강사로 나서서 아산화질소에 대해 일반인들에게 적극적으로 소개를 하기도 했다. 그는 강연중에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한 후 청중들을 불러내어 냄새를 맡게 함으로써 꽤 오랜 동안 인기강사로 활동할 수 있었다.

미국에 아산화질소의 효과가 전해지자 치과의사 웰즈(Horace Wells)가 관심을 가졌다. 1844년에 우연히 참석한 모임에서 아산화질소를 들이마시는 것을 본 그는 사람들이 너무 기분이 좋아져 그냥 서 있는 것조차 어려워할 정도로 흐느적거리며 좋아하는 것을 목격했다. 어떤 이들은 부딪혀서 넘어지면서도 통증을 느끼기는커녕 즐거워하기만 했다.

웰즈는 조수와 함께 아산화질소를 흡입한 후 이를 뽑는 실험을 한 후 효과에 아주 만족했다. 그리하여 자신의 치과를 방문한 환자들을 대상으로 통증을 줄이기 위해 아산화질소를 사용하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는 한 때 자신의 조수였다가 (우리나라에 하버드대 협력병원으로 잘 알려져 있는) 메사추세츠 종합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모톤(William Thomas Green Morton)에게 공개실험을 제안했다. 모턴은 외과의사인 워렌(John Collins Waren)의 허락을 받아 의대생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공개 발치를 계획했다. 그러나 1845년 1월에 행해진 발치 도중에 환자는 비명을 질었고 모턴은 도망가 버렸다. 웰즈의 공개시연이 실패한 것은 아산화질소의 양이 너무 적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외과의사로 활동하던 롱(Crawford Willamson Long)은 수술시 환자들이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는 일이 힘들었다. 그러던 중 아산화질소의 효과를 전해 듣게 되어 웰즈보다 앞선 1842년에 목에 생긴 종양제거수술을 하면서 아산화질소를 사용했다.

환자는 통증을 느끼지 않아서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쳤으나 더 이상 아산화질소 사용을 발전시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으므로 웰즈를 비롯한 미국 의료인들이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수술 결과도 마취법이 어느 정도 유행하기 시작한 1849년이 되어서야 발표함으로써 마취법 발전에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

에테르를 이용하여 최초의 무통수술을 진행한 Robert Liston. 위키미디어 제공

● 냄새는 독하지만 널리 이용된 최초의 마취제 에테르

자신의 상관이었던 웰즈는 믿었지만 공개시연이 실패하면서 칩거하다시피 한 모턴은 다시 웰즈를 찾아가서 왜 실패했는지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웰즈는 아산화질소에 대한 경험이 많이 있었으므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고 사용량이 문제였을 거라 이야기했다.

모턴은 이 때부터 더 효과적인 마취제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중 선배 의사 잭슨(Charles Thomas Jackson)으로부터 에테르도 마취 효과를 지니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에테르는 일부 사람들이 냄새를 아주 혐오할 정도로 특유의 냄새가 있으므로 잭슨은 이를 사용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모턴은 에테르를 이용하여 이를 뺀 결과 아산화질소보다 진통 효과가 훨씬 좋음을 알 수 있었다. 몇 번의 실험을 거쳐 신문기사로 이 사실을 알렸다. 학술지가 아닌 신문에 게재한 것은 이미 한 번 실패를 한 모턴이 학자들의 반론을 줄이고 자신의 발견을 빨리 세상에 알리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모턴은 외과의사 비글로(Henry Jacob Bigelow)에게 자산의 무통발치를 설명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비글로는 외과의사 워렌을 설득하여 다시 한 번 공개시연 기회를 잡았다. 장소는 전과 같은 메사추세츠 종합병원이었고 아산화질소 대신 에테르가 마취제로 사용되었다.

에테르 마취 후 워렌이 직접 목 주위 종양을 수술하는 공개 시연은 성공적이었다. 이 날짜가 1846년 10월 16일었으며 이 날을 에테르의 날(Ether Day)이라 한다. 비글로는 11월 3일에 넙다리뼈(대퇴골)를 절단하는 수술에서 에테르의 효과를 재검증할 수 있었다.

영국에 이 소식이 전해지자 인류역사상 가장 수술을 잘 한 의사중 한 명으로 여겨지는 은퇴를 앞둔 리스턴(Robert Liston)이 에테르 마취 후 다리 절단 수술을 시행한 것이 유럽 최초의 무통수술이다. 리스턴은 '앞으로 마취제가 수술을 쉽게 해 줄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은퇴를 했다.

클로로포름. 위키미디어제공

● 클로로포름의 등장

리스턴의 에테를 사용 소식을 들은 영국 산부인과 의사 심슨(James Young Simpson)은 ‘수술시 통증을 줄여줄 수 있으면 분만시 통증도 줄여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하여 분만중인 산모의 코에 에테르를 갖다 대는 방법으로 분만을 더 쉽게 진행할 수 있었다.

아산화질소와 에테르의 효과를 알고 있던 그는 다른 마취제도 존재할 거라는 생각으로 수십년 전에 유행했던 것처럼 기체를 코에 대고 들이켜보곤 했다. 1847년 11월 4일 심슨은 친구, 조수와 함께 기체의 냄새를 맡던 중 16년 전에 발견된 클로로포름 냄새를 맡는 순간 기분이 몽롱해지는 경험을 했다.

참여한 사람들 모두가 기분이 좋아져 말과 행동이 많아지면서 밤이 깊어가도록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 때부터 수차례에 걸쳐 반복하면서 효과를 검증한 결과 에테르만큼 냄새가 강하지 않으면서도 효과는 아주 좋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심슨은 무통분만을 위해 클로로포름을 사용하여 좋은 효과를 얻었다. 또 어린이에게 클로로포름을 적신 손수건을 코 위에 덮어두고 팔을 절단한 결과 어린이가 통증을 거의 느끼지 않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 후로 클로로포름은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1854년 런던에서 콜레라가 유행할 때 콜레라로 죽은 사람을 집을 지도에 표시해 본 결과 펌프물이 콜레라를 전파하는 원인임을 알아채고 펌프를 폐쇄하는 조치를 취함으로써 환자 발생을 줄이는데 공헌한 스노(John Snow)는 의과대학 졸업 후 주로 산부인과 의사로 일을 해 왔다.

스노는 질병에 개인의 문제일 뿐 아니라 사회환경의 문제일 수 있음을 보여 줌으로써 ‘공중보건학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지만 이보다 앞선 1853년에 여덟 번째 자녀인 레오폴드 왕자를 춘산할 때 클로로포름을 사용한 바 있다. 그는 일정한 간격으로 여왕이 클로로포름 냄새를 맡게 함으로써 무통분만에 성공했다. 

클로로포롬의 효과에 만족한 빅토리아 여왕은 아홉 번째 자녀인 베아트리스 공주를 낳을 때에도 이를 사용함으로써 마취법을 이용한 무통분만이 유행하게 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1840년대에 효과가 부족한 아산화질소, 효과는 좋으나 독한 냄새로 일부 사람들이 사용을 꺼려한 에테르에 이어 냄새와 효과가 모두 좋은 클로로포름이 발견됨으로써 수술시 환자들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통증을 해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860년대에는 리스터(Joseph Lister)에 의한 수술실과 수술기구의 무균처리법이 발견됨으로써 서 수술법은 크게 발전하게 되었다.(https://www.dongascience.com/news.php?idx=64017 참조)

※참고문헌
J.M. Fenster. Ether Day: The Strange Tale of America's Greatest Medical Discovery and the Haunted Men Who Made It. Harper Perennial. 2002 
쿤트 헤거. 삽화로 보는 수술의 역사. 김정미 옮김. 이룸. 2005
예병일. 의학사 노트. 한울엠플러스. 2017

예병일 연세대원주의대 교수

※필자소개

예병일 연세대학교 의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C형 간염바이러스를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텍사스 대학교 사우스웨스턴 메디컬센터에서 전기생리학적 연구 방법을,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의학의 역사를 공부했다.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에서 16년간 생화학교수로 일한 후 2014년부터 의학교육학으로 전공을 바꾸어 경쟁력 있는 학생을 양성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평소 강연과 집필을 통해 의학과 과학이 결코 어려운 학문이 아니라 우리 곁에 있는 가까운 학문이자 융합적 사고가 필요한 학문임을 소개하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주요 저서로 『감염병과 백신』,  『의학을 이끈 결정적 질문』, 『처음 만나는 소화의 세계』, 『의학사 노트』, 『전염병 치료제를 내가 만든다면』, 『내가 유전자를 고를 수 있다면』, 『의학, 인문으로 치유하다』, 『내 몸을 찾아 떠나는 의학사 여행』, 『이어령의 교과서 넘나들기: 의학편』, 『줄기세포로 나를 다시 만든다고?』, 『지못미 의예과』 등이 있다.

[예병일 연세대원주의대 의학교육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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