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지옥]①'1시간에 49건' 역대 최다…"신고해도 반밖에 못 잡아"
불법리딩방·로맨스스캠 사기의 진화…계좌지급정지조차 안돼
[편집자주] 인터넷 너머 일면식도 없는 인물에게 사기당한 피해자들은 곧바로 지옥으로 빠져든다. 경찰에 신고해도 온라인에서 철저하게 정체를 숨긴 사기 사범들은 계속해서 피해자를 농락할 뿐이다. 올해 1분기에만 사기 범죄는 10만 건을 넘어섰지만, 이중 절반 정도만 경찰의 검거망으로 들어온다. 뉴스1은 최근 폭증하는 비대면 사기 범죄의 실태와 원인을 살펴보고 피해자들의 고통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 봤다.
(서울=뉴스1) 송상현 기자 = #A 씨는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부업 재테크를 권하는 메시지를 받고 투자를 시작했다. 비트코인 마진거래라는 명목으로 홈페이지에서 거래했는데 10만 원으로 시작한 투자금이 20만 원으로 불어나자 출금도 했다.
하지만 해당 업체는 더 큰 금액을 투자하도록 유도했고 4000만 원까지 투자금을 늘렸다. 수익을 두배 넘게 낸 A 씨는 바로 출금하려 했지만 업체는 이를 막더니 수수료로 1억 원 가까이 내야 한다고 요구했다.
A 씨는 사기임을 직감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수사에 나섰지만 4개월 후 피의자 특정이 안 된다며 '수사 중지' 통보했다. A 씨가 입금한 계좌주인은 외국인으로 "통장을 돈 받고 팔았는데 누구 사 갔는지는 모른다"고 주장하면서 수사가 더이상 진척되지 못하고 있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보이스피싱과 불법 투자리딩방, 로맨스스캠(연애빙자사기) 등이 폭증하면서 사기 범죄가 걷잡을 수 없이 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이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비대면 사기인 데다가 사기꾼들이 해외에 근거지를 둔 경우가 많아 검거율이 절반 수준으로 떨어지는 등 피해자들의 고통은 커지고 있다.
◇사기 1분기만 10만건 역대 최다…온라인·외국서 벌어져 검거 난항
28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사기 범죄 발생 건수는 10만 7222건으로 전년 동기(8만 1344건)에 비해 31.8% 급증했다. 분기에 사기 범죄가 10만건을 넘어선 것은 처음으로 역대 최다 기록이다. 하루에 1178건, 시간당 49건의 사기범죄가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전체 범죄에서 차지하는 비중 역시 28.3%로 지난해(23.7%)에 비해서 4.6%p 증가했다.
연간으로 봐도 2017년에는 23만 1489건에 불과하던 사기 범죄는 2019년 30만 건(30만 4472건)을 처음 돌파한 후 지난해엔 34만 7579건으로 무섭게 늘어나고 있다. 전체 범죄 중 사기가 차지하는 비중 역시 2017년엔 13.9%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30%를 넘어설 전망이다.
사기 범죄가 이처럼 폭증하는 이유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보이스피싱, 메신저 피싱에다가 불법 투자리딩방 사기, 로맨스스캠 등 신종 사기 범죄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폐쇄회로(CC)TV와 차량 블랙박스 등이 보편화되면서 범죄자들은 강절도 같은 대면형 형사 범죄보다 비대면 범죄로 활동무대를 옮겨가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중고폰·중고차 판매, 유흥업소 갈취를 주요 수입원으로 하던 조직 폭력배가 이젠 투자리딩방 등 각종 사기 범죄에 뛰어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사기 범죄들은 비대면으로 온라인상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피의자를 특정해 추적하기 어렵다. 특히 사기 사범들은 외국에 근거지를 두거나 실제 외국인 경우도 상당수여서 해외 수사당국과 공조가 필수적인데 원활한 협조를 끌어내긴 쉽지 않다. 보이스피싱의 경우 중국이나 동남아에서, 로맨스스캠은 아프리카가 사기 범죄자들의 주 활동무대다.
더군다나 이들은 대포통장, 대포폰 등을 사용하기 때문에 경찰이 명의자를 추적해 봐야 실제 범인들에게 다가가는 것도 쉽지 않은 현실이다.
또한 최근 사기 범죄는 수법과 시나리오를 계속 바꾸면서 다른 범죄와 혼종되는 등 진화하고 있어 경찰도 애를 먹고 있다. 로맨스스캠의 경우 연애 감정을 이용해 돈을 요구하는 아프리카 조직의 기존 형태를 넘어서 친밀감을 쌓은 후 악성 애플리케이션을 깔게 하거나 가짜 홈페이지로 유도해 투자 사기를 벌이는 중국 조직의 수법도 발견되고 있다.
◇사기 범죄 검거율 50%도 위협…계좌지급정지조차 안돼 피해자 고통
지난 1분기 기준 사기 범죄의 검거율은 50.2%에 그치고 있다. 사기로 신고해 봐야 절반 정도만 검거되는 셈이다. 이는 전체 범죄 검거율 73.5%와 큰 차이를 보인다. 2017년만 해도 사기 범죄 검거율은 79.5%에 달했지만 2022년 50%대(58.9%)로 무너진 후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특히 지난달 경찰은 보이스피싱으로 1444명, 투자리딩방 사기로 138명을 검거했다. 하지만 최근 급증하고 있는 로맨스스캠 사기꾼은 단 1명을 붙잡는 데 그쳤다.
피해자들은 고소 이후 수개월씩 기다리지만 결국 피의자를 특정하지 못했다며 '수사 중지' 통보를 받는 게 현실이다. 또한 보이스피싱의 경우 피해자들이 사기꾼의 계좌를 동결하는 '계좌 지급 정지 제도'를 활용할 수 있지만 다른 사기의 경우 대상이 되지 않는다. 경찰이 은행에 요청하는 방법도 있지만 은행 측이 거절하면 이마저도 어렵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경찰청 산하에 사기통합신고대응원을 신설해 피해 의심 계좌 등을 신속히 차단하도록 하는 '사기방지기본법'이 국회에 발의돼 있지만 법무부 등의 이견으로 국회 통과 여부가 불투명하다. 21대 국회 임기가 만료되는 다음 달 29일까지 처리되지 않으면 자동 폐기된다.
한 투자리딩방 피해자는 "투자 사기로는 계좌 지급 정지가 안 된다고 하니 울며 겨자 먹기로 보이스피싱으로 허위 신고하고 처벌받을까 두려움에 떠는 경우도 있다"며 "왜 피해자가 이런 고통을 또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songs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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