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중품 사라졌는데 혹시”...집주인 무리한 요구에 40년 내공 ‘이 남자’의 대응은 [Books]

김슬기 기자(sblake@mk.co.kr) 2024. 4. 28. 06:0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마크 엘리슨. [매경DB]
완벽함을 향한 갈망의 표본이라 할 남자가 있다. 뉴욕에서 가장 유명한 목수, 마크 엘리슨이다. 어떤 까다로운 작업도 거절한 적 없는 그는 뉴욕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을 도맡아 지어왔다. 프리츠커상 수상 건축가인 산티아고 칼라트라바가 걸작이라 칭한 계단을 만들고, 뉴욕의 상징인 스카이하우스를 지었다. 데이비드 보위, 로빈 윌리엄스의 집도 그의 작품이다.

엘리슨은 처음부터 목수가 되려던건 아니었다. 철강도시 피츠버그 출생으로 고교를 중퇴하고 친구 부모님의 타운하우스 수리일을 돕다가 목수로 일할 기회를 얻었다. 손이 지저분해지는 걸 꺼리지 않고 그 일이 뿌듯했던 그는 40년째 외길을 걷고 있다. 푹푹 찌는 날씨, 소리치는 고객, 부상 등이 상존하는 일터에서.

무엇보다 목수 40년은 ‘암흑의 철갑’을 뚫는 일이었다. 여전히 장인(Master)라는 호칭에 손사레를 치지만 그는 이제 금속, 플라스틱, 유리, 기계에 능숙해져 고급 주택의 웬만한 물건은 다 만들 수 있게 됐다.

현장에는 개입하고 조율하고 타협해야할 수백만 가지 이유가 있다. 그는 말한다. “내 일은 복잡한 퍼즐을 맞추는 것이다. 그래서 부조리한 면을 봐도 좌절하지 않는다. 그러니 이 일이 지루할 수 있겠나. 죽을 때까지 해도 좋을 것 같다. 언제 링을 떠나야 할지 모르는 노장의 투혼이랄까.”

자신의 삶을 정리하기 위해 쓴 책을 통해 그는 ‘완벽함’에 대한 철학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한 자질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러기 위해선 성실함, 결단력, 대담함, 때로는 고집스러움이 필요하다. 신념, 재능, 연습, 수학과 언어, 부조리, 집중과 의도, 역량, 관용, 두려움과 실패, 우정과 죽음, 건축과 예술이라는 11개의 장으로 구성된 각 챕터는 ‘완벽함’을 위해 필요한 덕목이다.

마크 엘리슨이 만든 뉴욕의 아르누보 타운하우스
인상적인 에피소드가 ‘신념’ 편에 나온다. 20년 전 이름난 건축가와 함께 파크 애비뉴 고급 아파트 개축 공사를 했다. 설계자는 미니멀리스트 디자인을 주장했는데 컴퓨터로는 무채색 몬드리안 스타일의 설계도면을 그리는 것이 쉽지만 현장에선 최악의 난제다. 실제로 공사해보기 전까진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의심을 떨칠 수 없다.

수납장, 옷장, 가전제품의 문이 아파트 벽면 절반을 차지했고 모두 같은 느릅나무를 15㎝ 길이로 잘라 만든 베니어판으로 덮어야 했다. 석판이나 마루판 접합부는 느릅나무의 이음새와 정확하게 맞췄다. 신데렐라보다 덩치 큰 의붓언니가 유리 구두에 발을 끼워 넣는 식의 공사였다.

활력 넘치는 건축가 마야를 못된 목수들은 짓궂은 농담을 하며 맞았지만 꿋꿋하게 건축은 설계대로 진행됐다. 그로부터 5년동안 개축 작업은 5번이나 반복됐고 그는 이 공사를 늘 책임져야 했다.

불교 신자인 고객은 작업자들이 덴마크제 은식기를 훔쳤다고 의심했다. 소리를 지르며 싸우는 와중에 마야가 나타났다. 신뢰와 믿음을 보여주며 목수에 칭찬을 퍼붓는 건축가가 떠나자 집주인 부부는 더이상 심한 말을 하지 않았다. 마야는 큰 변화를 일으켰다. 물론 며칠 뒤, 은식기도 발견됐다.

최고급 집, 랜드마크 빌딩, 건축가의 역작 등은 매끄러운 도면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먼지를 뒤집어쓰는 목수의 손끝에서 만들어진다. 전적으로 믿어주는 누군가의 신념을 통해서 말이다.

그는 현장에서 숱한 선생님들에게 모든 일을 가능한 한 완벽하게 해내라는 교훈을 배웠다. 더 어렵고 중요한 교훈도 있다. 실패, 무너짐, 약점, 오류를 조롱해선 안된다는 것. 부러지고 망가진 것이 세상엔 셀 수 없이 많다.

그는“내가 만든 것의 4분의 3은 쓰레기장에 버려져 있다”고 말한다. 설계대로 지었으면 치명적이었을 계단, 펜트하우스 연못을 청소하기 위해 동원한 수백마리 달팽이 등의 경험담을 통해 저자는 알려준다. 완벽은 성취가 아닌 노력을 통해 무언가를 하는 데서 얻는 만족감임을 말이다.

완벽에 관하여 / 마크 엘리슨 지음 / 정윤미 옮김 / 북스톤 펴냄 / 2만원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