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250m 출점제한 어긴 가맹본부 경고 처분은 적법” [민경진의 판례 읽기]

2024. 4. 28. 06: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법원 “‘폐점 후 재출점’ 예외조항은 위법”
‘꼼수 출점’ 제동 걸릴 듯

[법알못 판례 읽기]

서울 시내 CU편의점 모습. 사진=연합뉴스



편의점 가맹본부와 점주가 신규 출점하지 않기로 합의한 반경 250m 지역 안에 ‘폐점 후 재출점’ 등의 방식으로 다른 점포의 출점을 예외적으로 허용한 가맹약관은 법에 어긋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같은 브랜드의 신규 출점 제한 약정을 무력화하는 예외 조항은 점주에게 부당하게 불리한 조항으로 무효이며 이 조항을 근거로 다른 점포의 출점을 허용한 것은 영업지역 침해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가맹약관의 예외 조항을 이용한 편의점 가맹본부의 ‘꼼수 출점’에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공정위, BGF리테일에 “영업지역 침해” 경고 처분

서울고법 행정3부는 2024년 4월 18일 BGF리테일이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경고 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패소로 판결했다. 소송 비용도 원고가 부담하도록 했다.

BGF리테일은 2020년 9월 A 씨와 경기 부천시에 CU편의점 출점에 대한 가맹계약을 맺었다. 가맹약관에는 ‘가맹본부는 A 씨 점포로부터 250m 내에 CU편의점(직영점 포함)을 신규로 개설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겼다.

다만 기존 가맹사업자가 거리 제한 기준 내에서 폐점 후 재출점하거나 이전하는 경우 등은 250m 내에서도 점포를 열 수 있도록 예외 조항을 달았다. 또 왕복 8차선 이상의 도로 등의 지형지물에 의해 상권이 확연히 구분되거나 대학 캠퍼스 등 특수상권 내에 입점하는 경우 등도 예외로 삼았다.

약관에는 가맹본부는 계약 기간에 또는 계약갱신 과정에서 재건축·재개발 등으로 인해 상권의 급격한 변화가 발생하는 경우 등 일부 상황을 제외하고 가맹점사업자의 영업지역을 축소할 수 없다는 내용도 담겼다.

BGF리테일은 2021년 5월 기존 가맹사업자인 B 씨가 A 씨의 점포로부터 약 278m 거리에 있는 편의점을 폐점하고 A 씨의 점포에서 약 230m 거리에 있는 곳에 재출점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 이후 A 씨에게 금전적 보상을 제시하며 영업지역 내 출점동의서에 서명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A 씨는 이를 거절했다.

A 씨는 2021년 5월 BGF리테일에 “(자신의) 점포 인근으로 점포이동 출점을 위해 공사 중인 (B 씨) 점포의 공사 중지 등을 요구하며 모범거래기준의 준수를 촉구한다”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모범거래기준이란 가맹본부와 가맹점주 사이에 발생하는 각종 불공정 거래 관행을 막기 위해 공정위가 마련한 규범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피자는 1500m, 치킨은 800m, 제빵·커피는 500m, 편의점은 250m 내 신규 출점을 제한받는다. 다만 법적 구속력은 없다.

BGF리테일은 “(B 씨) 점포의 개설은 모범거래기준이나 자율규약을 위반하지 않았으며 이 사건 가맹계약에 따라 기존 가맹사업자(B 씨)가 본인의 거리 제한 기준 내에서 폐점 후 재출점한 것”이라는 취지로 답변했다.

이후 BGF리테일은 B 씨의 점포 재출점 절차를 마무리했다. 이에 공정위는 2023년 5월 “BGF리테일이 정당한 사유 없이 가맹계약 기간에 가맹사업자의 영업지역 밖에 있던 기존 가맹사업자의 매장을 영업지역 안으로 이전해 재출점한 행위에 대해 경고한다”는 처분을 내렸다.

 

 법원 “영업권에 치명적인 위해”

처분에 불복한 BGF리테일은 공정위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공정위 처분에 대한 불복 소송은 2심 법원에서부터 시작한다. 서울고법 행정3부는 공정위 처분이 정당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기존 가맹점의 재출점 또는 이전이라는 행위로 인해 (A 씨) 점포의 영업지역을 침해하고 그 영업권 보호에도 치명적인 위해를 초래할 수 있다”며 “이 사건 예외 조항에 의해 기존 점포는 극단적으로 다른 점포와 가까운 거리에 재출점이나 이전을 할 수 있게 되는데 이는 가맹사업법 제12조의4 1항에서 영업지역을 설정하도록 한 입법 취지를 형해화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판의 쟁점은 가맹계약의 예외 조항이 가맹사업법에서 정한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는지 여부였다. 가맹사업법 제12조의4 제3항은 가맹본부가 가맹계약 기간에 가맹점사업자의 영업지역 안에서 가맹점사업자와 동일한 업종의 가맹점을 설치하는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면서도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 그 적용을 배제한다.

재판부는 “이 사건 가맹계약의 예외 조항이 없을 경우 모든 가맹사업자가 가맹사업법의 취지에 따라 현재 자신의 영업지역을 보호받을 수 있다”며 “반면 이 사건 예외 조항에 따라 기존 가맹점의 재출점이나 이전을 허용하게 되면 모든 가맹점사업자는 기존 가맹점의 재출점·이전에 의해 언제든지 현 상태의 영업지역을 침해당할 수 있게 된다”고 판단했다. 이에 “이 사건 예외 조항은 ‘정당한 사유’에 일반적으로 해당하는 것이라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한 편의점에 진열된 아이스크림. 사진=연합뉴스



예외 조항 자체도 무효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가맹계약에 따르면 제3의 가맹점사업자가 B 씨 점포의 영업지역 내에서 재출점하거나 이전하는 것이 허용됨에 따라 B 씨의 영업지역도 침해받을 수 있다”며 “이 사건 예외 조항은 가맹계약의 고객인 B 씨에게도 부당하게 불리한 조항으로 새기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결국 이 사건 예외 조항은 가맹계약을 체결하는 모든 가맹점사업자에게 부당하게 불리한 조항으로 무효”라고 했다.

BGF리테일 측은 재판 과정에서 “공정위는 ‘편의점 업종 모범거래기준’을 제정·공표한 이래 지속해서 이를 준수하도록 권고하는 등 공적인 견해를 표명했다”고 주장했다. 편의점 업종 모범거래기준은 가맹점사업자의 매장으로부터 250m 이내 신규 가맹점 출점을 금지하면서도 기존 가맹점이 자신의 영업지역 내에서 폐점 후 재출점하는 경우에는 예외를 인정한다.

BGF리테일 측은 “이 모범거래기준을 신뢰해 그에 따라 가맹계약을 체결했는데 공정위 측이 가맹사업법 제12조의4 제3항에 위반된다는 이유로 경고 처분을 내린 것은 신뢰 보호의 원칙에 위반된다”고 맞섰다.

하지만 재판부는 “가맹점사업자의 영업지역을 보장하는 가맹사업법 제12조의4가 신설된 2013년 8월 이후에는 현재의 가맹사업법에 따라야 한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편의점 업종 모범거래기준이 시행된 것은 2012년이다.

[돋보기]
 

 무인 아이스크림 매장도 영업 규제 대상

법원은 최근 무인 아이스크림 할인매장에 대한 ‘거리 제한’ 취지의 영업 규제도 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판결을 확정했다. 무인 아이스크림 할인매장은 편의점과 비슷한 업종인 만큼 영업 지역 침해를 방지하기 위한 규제는 정당하다는 얘기다.

대법원 3부는 2023년 12월 14일 편의점 운영자 C 씨가 무인 아이스크림 할인매장을 운영하는 D 씨를 상대로 제기한 영업금지 등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한 원심판결을 깨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이들은 김포시 한 아파트 단지 상가의 1층에서 각자 매장을 운영해왔다. C 씨는 “상가 분양 당시 특정 호실에서만 편의점을 운영할 수 있도록 제한됐는데 D 씨는 지정 호실이 아닌 곳에서 유사한 매장을 운영해 업종 제한 약정을 위반했다”며 2021년 소송을 냈다.

1심 법원은 “D 씨가 운영하는 아이스크림 할인점은 편의점과 동종업종에 해당해 업종 제한 약정을 위반했고 영업상 이익을 침해당할 처지에 있는 C 씨는 영업 금지를 청구할 권리가 있다”며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하지만 항소심에서 판결이 뒤집혔다. 항소심 재판부는 “편의점은 음식료품뿐 아니라 주류와 생활잡화 등 다양한 물품을 파는 반면 D 씨 점포에선 아이스크림, 과자, 음료수 등 한정된 품목을 판매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동일한 업종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항소심 판단에 업종 제한 약정 해석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일반적으로 편의점 매출의 40% 상당을 차지하는 담배를 제외하면 과자나 아이스크림 등은 편의점의 주요 판매 품목”이라며 “D 씨의 매장은 이와 같은 단순가공식품류를 판매하는 곳으로, 고객이 편의점의 일종으로 인식할 가능성이 클 정도로 실질적 차이가 없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아이스크림 할인점 매출액만큼 편의점 내 동종품목 매출이 줄어 C 씨의 영업상 이익이 침해됐을 것이 경험칙상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민경진 한국경제 기자 min@hankyung.com

Copyright © 한경비즈니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