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중의 NBA다이브] 슈퍼팀 뛰어넘은 마인드셋, “0승 0패 마인드”에 대한 모든 것
#그들이 가치를 창출한 방법
“0-0”
리그 최연소 팀 중 하나인 오클라호마시티 썬더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정말 자주 등장하는 말이다. 매 경기 후 최소 한 명의 선수는 언급하는 말이다. 경기 전 인터뷰, 훈련 인터뷰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말이다. 20대 초중반인 주축 선수들은 저마다 세뇌라도 된 듯 “0-0”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0-0이라고 생각하려고 한다” “언제나 0-0이다” 등.
0-0마인드셋이란, 시즌 전적 0승 0패. 스코어 0-0이라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임하는 마인드셋이다.
시즌 첫 경기에서는 누구나 최선을 다한다. 최종 순위가 꼴찌가 될 팀도 첫 경기에서는 미래를 모른채 모든 것을 쏟는다. 경기 시작할 때 점수는 언제나 0:0이다. 꼴등팀이 1등팀과 붙을 때 초반 점수 벌어지기 전까지는 모든 것을 쏟는다. 오클라호마시티의 0-0은 대충 이런 컨셉이다. 늘 0-0이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자.
자세히 보면 굉장히 재밌는 개념이다.
사령탑 마크 데그널트 감독은 오클라호마시티 사령탑 부임 전 G리그 팀부터 이 개념을 강조했다고 한다. 1군 감독이 된 뒤 선수단에 이를 전면적으로 도입했고 현재는 팀의 핵심 모토가 되었다. 선수들이 가장 지지하고 사랑하는 컨셉이 되었다.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날줄 아는가? 인터뷰가 진행중인 지금, 선수들이 1:1 농구 대결을 펼치고 있다. 백만번은 1:1 대결을 펼쳤을 그들은 왜 하필 지금 1:1 농구를 하고 있는가?”라는 다소 철학적인 의문을 제시하며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그들이 1:1 농구 대결을 펼치고 있는 이유는,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어제 경기, 내일 경기는 지금 상황(1:1대결중)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지금 상황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은, 눈앞에 놓인 현 상황 그 자체다. 그들은 눈앞에 놓인 상황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언뜻 들으면 당연한 얘기인 것 같지만, 조금만 깊게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NBA 감독들과 아예 다른 접근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NBA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감독들의 코칭에는 선후관계 개념이 필수였다. “5연승 중이니 더 자신감을 갖자”, “연패중이니 경계심을 갖고 노력하자”, “선수단 분위기가 우울하니 끌어올리자” 언뜻 들으면 너무 당연한 이런 얘기들을 부정하는 접근이기도 하다. 데그널트가 선수단에 가장 강조한 마인드에 의하면 5연승중이든 10연패 중이든 미래 일 모르고 과거 일에 대해서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그냥 앞에 놓인 것 열심히 하자는 것이다.
2022년 12월 20일. 데그널트 감독은 NBA에서 화제가 된 바 있다. 길저스 알렉산더가 경기 종료 버저와 함께 극적인 버저비터를 터뜨리며 마이애미 히트를 잡아냈다. 그런데 데그널트 감독은 무덤덤하게 이를 바라보다가 상대팀 감독과 악수를 하는 것이 전부였다. 일부 팬들은 감정이 없는 사람이냐며 놀라워했지만, 그의 마인드셋을 보면 십분 이해가는 부분이다. 그는 동점이 되어서 작전판에 작전을 짰고, 성공되었으니 할 일을 다 한 것 뿐이다. 그는 어쩌면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봐야할 필름 세션을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의미부여를 극도로 경계하는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오클라호마시티는 사령탑의 영향을 받아서 독특한 방식으로 훈련한다. 그들이 설정한 본질(명확하고 날카로운 사고, 강력함)에만 집중하고, 당장 앞에 놓인 과제를 보고 이를 완수하는데 집중한다. 선수들도 이제 어느 정도 이같은 접근법이 이식되었다. 보통은 승리의 경험을 통해 자신감을 갖는 것을 강조한다. 패배에서는 각성을 요구받기는 한다. 하지만 오클라호마시티는 그런 것이 없다. 챗 홈그렌은 “대승은 대승이고, 우리는 다음 경기에만 집중할 뿐이다”라며 팀의 마인드를 소개한 바 있다.
#도입 계기
앞서 말한 것처럼 올 시즌 오클라호마시티가 가장 강조한 것은 0-0 마인드셋. 0승 0패, 스코어 0-0 마인드로 모든 것을 임하는 것이다. 1월 12일 포틀랜드를 상대로 역대 최다 점수차 5위인 62점차 승리(139-77)를 거두든, 이따금 대패를 하든 0-0이라 생각하자고 열심히 하자고 외쳤다.
이 마인드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주장한 것은 구단 영구결번자이자 현재 특별고문으로 활약하고 있는 닉 콜리슨이다. 콜리슨은 2010 NBA 레이오프서 큰 교훈을 얻었다고 한다. 서부 컨퍼런스 플레이오프 1라운드서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를 상대로 원정에서 2연패를 당한 뒤 홈 2연전을 싹쓸이하면서 분위기를 완전 갖고오는데 성공했다.
선수단 모두가 최고조의 분위기를 달릴 시점, 팀은 대패하면서 2연전을 모두 내줬다고 한다. 그가 그때 얻은 교훈.
“Happy teams get their xxx kicked” (행복한 팀은 얻어맞는다)
콜리슨은 이 시리즈 이후, Happy teams get their xxx kicked, 행복한 팀은 얻어맞는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한다. 오클라호마시티는 2연승의 기쁨에 도취되어서 과한 자신감을 가졌다. 반면 벼랑 끝에 선 레이커스는 절박했고, 오클라호마시티를 압도하며 결국 챔피언에 올랐다.
데그널트 감독은 이를 약간 순화해서, “Happy teams lose” (행복한 팀은 반드시 패배한다)는 메시지를 선수단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당연히 그 역도 성립한다. 패배 시 슬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저 목표를 향해 나아갈 뿐.
콜리슨 특별 고문은 “패배 후 분노하는 것은 괜찮지만 슬퍼하지 말 것을 강조한다. 결국 명확한 시야와 힘, 날카로움이 승부를 가른다. 그 외의 것들은 의미가 없다”
#0-0 마인드셋의 실체: 역전의 명수
“이겼으니 자신감 가져!” “졌으니 더 열심히하자!”
이같은 접근을 완전히 부정하는 오클라호마시티의 0-0 마인드셋. 그들은 이기든 지든 똑같은 마인드를 갖고 있을 것이다. 날카로운 마인드를 갖고 앞만 보고 나아가는 것.
이같은 마인드는 다소 추상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실체는 너무나도 구체적이다. 오클라호마시티는 올 시즌 리그 30개 팀중에서 가장 많은 '10점차 이상 역전승'을 만든 팀이다. 82경기 체제에서 무려 17경기에서 10점차 이상 역전승을 거뒀다. 그들이 거둔 승리 중 무려 48승이 역전승이었고, 그중 14번은 4쿼터 역전극이었다.
리그에서 손꼽히는 역전의 명수, 모든 지도자가 꿈꾸는 끈기있는 팀이자 물어지는 팀이다. 이렇게 잘 따라붙고 패배하면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라며 과정에 대한 박수를 받고는 한다. 그러면 이렇게 훌륭하게 따라붙는 팀은 어떻게 만드는 것인가. 엄청난 감독의 동기부여 연설? 주장의 혹독한 질책? 실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아이재아 조는 대역전극 이후 “점수를 조작할 수 있는 노릇이 아니다. 결국 0-0이다. 0–0이라고 생각하고 매 공격권 임했다”고 밝혔다.
지고 있다고 각성하는 것도 없다. 감정적으로 흥분하는 것도 없다. 경기 처음처럼 힘차게 침착하게 매 공격권만 신경쓸 뿐이다. 그 결과 압도적인 역전승률이 만들어졌다.
오클라호마시티는 평균 연령이 두 번째로 어린 팀이었다. 그런데 시즌이 끝날 때까지 기록한 최대연패는 고작 3연패다. 리그 동서부 최강자인 덴버, 보스턴(2연패)와 동일한 수준의 놀라운 수치다.
지도자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긴 연패에 빠지는 것이다. 한 번 수렁에 빠지면 헤어나오기 어렵다. 하지만 오클라호마시티는 패배해도 다음 경기를 0-0 마인드셋으로 임했다. 오히려 직전 경기의 패배를 의식하면서 각성하는 것보다 0-0이라고 생각할 때 훨씬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을 보여줬다.
정말 어린 팀인데, 마인드는 백전노장을 넘어서 통달한 자들같다. 동양철학의 개념들도 더러 보인다. 맑은 정신, 본질(날카로운 생각, 강력함)에만 집중하는 것. 농구에 해탈(?)한 이들이 내린 마인드셋이다. 결국 모든 것은 0-0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미래는 모르고, 할 수 있는 것들만 집중한다.
그들은 2024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뉴올리언스 펠리컨스를 만났다. 1차전서는 고전 끝에 접전승을 거뒀다. 경기 후 데그널트 감독은 승리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하기보다는 “선수단에게 가장 강조한 것은 시리즈가 길고, 우리는 또 여기서 무엇인가를 배워야한다”고 했다. 그리고 2차전 대승을 거뒀다.
#사진_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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