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 해적’ 기승에…택배 찾으러 경찰서 가는 미국 [세계는 지금]
2022년 美서 택배 도난 1억1900만건
10명 중 4명 “1년간 2차례 이상 도난”
도난 물품 따른 손실액 60억弗 달해
아마존·워싱턴 경찰 “범죄 예방” 협력
수령지, 집 아닌 경찰서 보관함 지정
“불편 감수… 하루 평균 10여명은 이용”
‘안녕, 내 이름은 조아나야.’
미국 워싱턴 연방의회에서 동쪽으로 약 4㎞ 떨어진 메트로폴리탄 경찰청 6지구 지국 건물 앞. 성인 키보다 조금 큰 로커(보관함)에는 미국 유통기업 아마존 로고와 그 옆에 나란히 자기소개 문구가 적혀 있다. 그리고 ‘이 로커를 너의 아마존 주소록에 포함하라’는 메모와 함께 QR코드(정보무늬)가 붙어 있다. 한국 지하철역 물건 보관함처럼 생긴 ‘조아나’는 아마존이 운영하는 택배 보관함이다. 워싱턴 일대에 택배 도난이 급증하자 아마존과 워싱턴 경찰청이 협력해 경찰서 앞에 택배 보관함을 설치했다. 택배를 주문할 때 자택이 아닌 경찰서 앞 택배 보관함으로 주소를 지정하는 식이다.
경찰서 앞에 설치된 택배 보관함은 아이들이 그린 그림으로 알록달록하게 디자인돼 동네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6지구 지국에서 만난 마크 메이블 경관은 “이 보관함이 생긴 후로 꾸준히 잘 운영되고 있고, 도시 전체에 걸쳐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면서 “정확하지 않지만 하루 평균 10여명은 보관함을 이용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주택 앞 계단이나 아파트에 배달된 택배 도난 발생은 최근 들어 늘고 있다”면서 “하루에 최소 5∼6건씩은 택배 도난 신고가 들어오고 있다”고 고개를 저었다.
메트로폴리탄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워싱턴 내 절도사건은 1만3392건으로 2022년 1만814건 대비 23%나 증가했다. 차량 도난, 차량 내 절도 등은 제외한 숫자다. 워싱턴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대형마트 등에서 생필품 등 절도 사건이 늘어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최근 택배 도난 사건까지 늘어 골칫거리가 늘었다. 크리스마스나 여름 휴가 시즌에 빈번한 계절성 범죄였던 택배 도난은 코로나19를 계기로 매장 방문이 어려워지자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일상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아마존은 경찰과 협력해 택배 보관소를 설치했고, 미국 최대 물류회사 UPS는 인공지능(AI)을 활용, 택배 도난이 빈번한 지역을 분석하고 소비자에게 수령지를 바꾸거나 우회하는 것을 추천하고 있다. 물론 절도범 때문에 소비자가 자택이 아닌 택배 보관함으로 배송을 받거나 배송지를 바꾸는 불편을 감수해야 하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워싱턴 당국은 택배 도난 및 절도 문제 해결 방안을 두고 고심에 빠졌다.
반면 택배 도난을 방치할 경우 더 큰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여전하다. 택배 도난 사건의 경우 현재도 제대로 신고가 이뤄지지 않아 보고된 것보다 더 많이 발생하고 있고, 알려진 것보다 피해가 더 크다는 지적이다. 택배 도난이 지역 사회의 치안은 물론 범죄 행위 등에 적지 않은 악영향을 미치는 만큼 강경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워싱턴=글·사진 박영준 특파원 yj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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