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투표를 44일간 하는 ‘이 나라’...선거 결과는 투표장 나오는 여자들에 달렸다는데 [지식人 지식in]

이진명 기자(lee.jinmyung@mk.co.kr) 2024. 4. 27. 14:1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4월19일부터 인도에서 총선이 시작됐습니다. 유권자 수 9억7000만명. 명실공히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선거입니다. 땅덩어리도 크고, 민족도 다양하고, 유권자도 많은 만큼 선거는 오는 6월1일까지 44일간 진행됩니다. 선거 결과는 사흘 후인 6월4일에 발표됩니다. 전국 투표소는 105만 곳, 투입되는 인력은 1500만명, 선거비용은 19조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총선에서는 연방하원의원 543명을 뽑게 되는데요, 인도는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어서 과반의석인 272석 이상을 확보하면 총리직과 내각을 차지하게 됩니다. 이번 총선에서는 현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이끌고 있는 인도국민당(BJP)이 압승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합니다. 전망대로 인도국민당이 승리하게 되면 모디 총리는 2014년 처음 총리가 된 후로 2019년에 이어 3연임을 하게 됩니다.

개천에서 난 용
모디 총리 이전 인도의 역대 정치 지도자들은 뼈대있는 부유층 정치인 집안 출신이 대다수를 차지했습니다. 현재 인도의 제1야당인 인도국민회의(INC)만 하더라도 초대 총리를 비롯해 3명의 총리를 배출한 네루-간디 가문이 대를 이어 지도부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디 총리는 이른바 ‘흙수저’ 출신입니다. 모디 총리는 인도 북서부 구자라트에서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바드나가르 기차역에서 차를 팔았다고 하는데요, 어린 시절의 모디는 아버지를 도우며 자랐다고 합니다. 흙수저 출신이 총리 지위까지 올라갔으니 ‘개천에서 난 용’이라고 해도 무방하겠네요. 그리고 형제는 모디 총리를 포함해 총 5남매인데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부인은 18살에 중매로 결혼한 자쇼다벤 모디인데 현재 구자라트에서 모디 총리와 따로 살고 있고, 자녀는 없습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운데)가 선거 유세를 하고 있다. <모디 총리 X 계정>
이런 모디 총리를 바라보는 인도 국민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기존의 정치 엘리트 집단에서는 모디 총리를 ‘아웃사이더’라고 깎아내리려 하지만, 대다수 빈곤한 국민들은 자신들과 비슷한 출신이라는 점에서 심정적으로 큰 지지를 하고 있구요, 젊은이들은 밑바닥에서 총리까지 올라간 모디 총리의 성공 스토리에 환호하고 감격하며, 자신의 롤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모디 총리의 강력한 정치 기반입니다.

예전에만 하더라도 정치는 소위 엘리트 집단, 그리고 상위 계급, 그들만의 리그였습니다. 그러니 부유층 정치 가문에서 요직을 독차지하는 것이 가능했던 구조였지요. 하지만 지금은 정보화 시대를 맞아 인도의 대다수 국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그 결과 모디 같은 개천에서 난 용이 압도적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여건이 된 것이지요.

그 외에도 모디 총리는 탁월한 말솜씨와 대중 앞에서 스스럼없이 눈물을 흘리는 등 감정을 전달하는 데 익숙해 많은 국민들이 그를 인간적인 지도자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또 현대적 의상부터 인도 전통 의상, 그것도 특정 지역 의상에 이르기까지 행사마다 모디 총리가 선택하는 의상은 다양한 사회 계층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시각적 장치로 작용하고 있답니다.

인도 총선의 최대 변수 ‘여성’
인도에서 5년 전 총선과 극명하게 달라진 점은 바로 ‘여성’입니다. 솔직히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그래도 근래에 인도에서 여성 권익이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한 것은 사실입니다.

2019년에만 하더라도 투표율에서 남성과 여성의 격차는 엄청났었습니다. 여성들의 투표 참여율이 매우 저조했지요. 하지만 최근에는 남녀 투표율 격차가 엇비슷해진 것은 물론 일부 지역에서는 여성 투표자 수가 남성 투표자 수를 앞지르고 있습니다.

인도의 여성 유권자들이 투표를 하기 위해 순서를 기다리는고 있다. <연합뉴스>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과거 인도 여성들은 그나마도 투표장에 가면 남편의 뜻에 따라 투표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지금은 남편과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정치적 의사결정을 한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유튜브 왓츠앱 페이스북 등 SNS가 발달하면서 여성들이 남편과 다른 채널을 통해 뉴스와 정치정보를 습득하게 되면서 정치적 판단 기준도 달라졌습니다.

모디 총리는 바로 이 점을 파고 들었습니다. 인도 남성보다 인도 여성이 선호하는 정책을 어필하는 것이죠.

특이하게도 인도는 남성들은 변화와 진보, 세계화 등을 추구하고, 여성들은 민족주의, 힌두 중심주의를 선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도의 여성들은 모디 총리가 올해 초 이슬람 모스크 대신에 거대한 힌두교 사원을 세운 일, 영어보다는 힌두어 사용을 권장하는 것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여성 유권자들의 이같은 지지에 힘입어 모디 총리는 강간과 가정폭력에 더욱 엄정대처하겠다는 정책을 표방하고 나섰고, 여성 기업가를 위한 대출을 확대했습니다. 무엇보다 턱수염 가득한 자신의 얼굴이 새겨진 곡물을 공급하는 등 이미지 메이킹에도 적극적이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이미 주요 정치 컨설팅업체들은 모디 총리가 인도 여성 유권자들의 압도적 지지를 확보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인도인의 자긍심을 키우다
인도인들이 자존심이 매우 강한 민족이라는 것은 알고 계시나요.

여타 국가에서 선거지형은 경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성장률이 높고, 실업률과 물가가 낮아서 살기 좋은 여건이 갖춰졌다면 해당 지도자에게 지지를 보내기 마련이지요. 하지만 인도는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경제도 중요하지만 인도인의 자존심을 추켜올려 준 지도자에게 열광한다는 점입니다.

모디 총리가 바로 그렇습니다. 모디 총리는 청년 실업률 45%라는 저조한 일자리 창출 성적표와 빈부격차 심화 등의 정책 실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청년들과 빈곤층으로부터 더 강한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지난 해 6월 모디 총리는 미국을 국빈방문하여 백악관에서 환영 만찬을 했습니다. 백악관 집무실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포옹하고 악수했으며, 미국 상·하원 합동의회 연설에서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이 장면을 지켜 본 인도 국민들은 뜨거운 감정을 느꼈더랬습니다. 오랜 영국 식민지 시절이 떠올라서였을까요? 인도 국민들은 인도가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글로벌 리더 국가가 된 것처럼 환호하고 감격했습니다.

또 지난 해 9월에는 인도 델리에서 G20 정상회의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인도가 의장국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의장국은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맡는 게 관례입니다. 재작년에는 인도네시아가 의장국이었고, 올해는 브라질이 의장국입니다. 그런데 모디 총리는 마치 인도가 세계에서 주요 국가로 인정을 받은 것처럼 포장해 홍보했고, 국민들의 자긍심을 자극했습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G20 정상회의 계기에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모디 총리는 이번 선거에서 독립 100주년인 2047년까지 인도를 선진국 반열에 올려놓겠다고 공약했습니다. 2047년이라면 아직 20년이 넘게 남았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경제 성적표는 그다지 좋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인도 국민들은 독립 100주년에 선진국이 된다는 상상만으로도 설레어 하는 것 같습니다.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