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 저산~ 꽃이 피니~” 대둔산 산골마을에 울려퍼지는 장단소리[전승훈의 아트로드]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아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하더라….”(단가 ‘사철가’ 중)
‘호남의 금강산’이라고 불리는 대둔산(大芚山)에는 지금 진달래가 한창이다. 해발고도 878m 정상에는 봄이 늦게 찾아오기 때문이다. 1000여 개 봉우리 6km 능선이 물결치듯 이어지는 산그리메(산그림자)를 헤치고 떠오르는 붉은 해는 가슴을 웅장하게 한다. 대둔산 수락계곡으로 내려와 논산 산골마을에서 들리는 국악 장단은 가는 봄을 아쉬워하며 쉬었다 가라고 손짓한다.
●낙조대 일출과 산그리메
대둔산은 충남 논산과 금산, 전북 완주에 걸쳐 있다. 충남 쪽은 숲과 계곡이 부드러운 ‘육산(肉山)’이고, 전북 쪽은 기암괴석과 절벽이 장관을 이루는 골산(骨山)으로 두 개의 매력을 동시에 보여준다. 가장 대중적인 코스가 완주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는 것이다. 걸어서 대둔산을 오르는 코스 중 가장 짧은 곳은 금산 태고사 주차장에서 올라가는 길이다.
진달래가 피어 있는 능선을 지나니 드디어 낙조대 정상이다. 첩첩이 싸여 있는 산들이 어깨동무를 하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떠다닌다. 그 안에 불그스름한 해의 기운과 푸른 산의 기운이 이리저리 흘러다닌다.
낙조대 밑에 있는 천년 고찰 태고사는 신라 신문왕 때 원효대사가 12승지의 하나로 꼽은 명당에 자리 잡고 있다. 원효대사가 이 절터를 찾고 기뻐서 사흘 동안 춤을 추었다고 할 정도다. 만해 한용운도 태고사의 전망을 극찬했다고 한다.
태고사 올라가는 길에는 일주문 역할을 하는 바위 틈 사이에 난 문을 통과해야 한다. 조선 후기 노론의 영수였던 우암 송시열이 태고사에서 공부를 할 적에 썼다는 ‘석문(石門)’이라는 글자가 이 바위에 새겨져 있다. 대둔산 봉우리 밑에 자리 잡은 태고사의 극락보전, 삼불전 등은 수려함을 보여준다. 태고사를 둘러보는 동안 하얀 털이 보송보송한 강아지가 따라온다. 오랜만에 사람을 본 때문일까. 백구는 내 다리에 몸을 비비고, 신발을 가볍게 물어도 보고, 앞에서 깡충깡충 뛰어다니기도 한다. 문득 이런 의문이 든다. 절에는 왜 누렁이나 검은 강아지보다 늘 백구가 많이 살고 있을까.
●얼쑤! 국악이 흐르는 산골마을
대둔산에서 수락계곡 방향으로 내려오면 논산시 벌곡면 덕곡2리가 나온다. 대둔산 월성봉 아래 있는 조용한 산골 마을에서는 흥겨운 북장단에 맞춘 판소리와 국악 연주가 바람결에 들려온다. 이 마을 공연장에서는 1999년부터 매년 말에 산골마을음악회(올해 24회째)가 열리고 있다. 전국 판소리, 가야금 병창, 거문고 대금 아쟁 산조, 한국무용가를 비롯한 국악 명인과 관객들이 600~700명 몰려든다. 또 정월대보름 달집 태우기 축제에도 주민 300여 명이 모여 사물놀이 같은 농악 공연을 성대하게 펼친다.
“2020년에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김 선생을 찾아온 제자 중에 사철가를 잘하는 분이 계셨어요. 제가 옆에서 외워서 따라 불렀더니 김 선생께서 ‘입 모양 보고 따라 하는 건 알겠는데 너무 엉터리로 부르더라. 내일부터 와서 장단부터 배워라’라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마을의 1호 제자가 됐어요. 원래는 국악을 전혀 몰랐는데 장단을 먼저 배워 박자를 맞추니 소리의 흥겨움과 재미를 느끼게 됐습니다.”(안영옥·59)
덕곡리에서 김 명인에게 고법을 배우는 주민들은 교사, 공무원, 회사원으로 일하다 은퇴해 귀촌한 사람들이다. 우리 음악과 한국화, 정원에서 즐기는 국궁과 파크골프(공원에서 하는 골프의 일종)까지 문화예술이 흐르는 덕곡리는 인구 소멸의 위기를 딛고 대전 등지에서 유입되는 인구가 늘어나 덕곡2리라는 마을이 하나 더 생겼을 정도다.
전직 교사 출신 김남식 씨(72)는 “전국에서 김 선생의 고법에 맞춰 한 번이라도 노래하며 춤추고 싶어 하는 프로 예술인이 많은데 우리는 아마추어인데도 무형문화재에게 배우니 모두가 부러워한다”고 말했다.
●대둔산이 비치는 수락저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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