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스타 서수민, 고요 속 커피로 세상과 소통하다 [인터뷰]

조혜정 기자 2024. 4. 27. 13:31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유아교육을 전공한 서수민씨는 유치원 교사가 꿈이었다. 교사가 되기 위해선 졸업 전 현장 실습이 필수였는데 서씨는 청각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실습할 유치원을 찾지 못했고 그렇게 졸업했다. 유치원 교사는 되지 못했지만 커피에 꿈을 담아 바리스타가 된 서씨. 청각장애인 바리스타 서수민씨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서수민씨는 한미약품 사내 카페 ‘The H’에서 바리스타로 근무 중이다. 홍기웅기자

커피 잔에 담긴 이야기

지난해 9월 2일 서울 강남구청에서 열린 2023년 제5회 청각장애인 바리스타 전국대회에서 서수민씨(29)가 1위를 차지했다.

서씨는 청음복지관의 ‘직업적응훈련 커피전문가 양성과정’ 프로그램에 참여해 교육 수료 후 바리스타 2급 자격을 취득했다.

서씨는 커피를 업으로 삼아 일한 지 5년 차에 자신의 실력을 점검해 보고자 대회에 참여했다. 라떼아트를 두고 경연했는데 예선에 40여명이 참가했고 본선에 최종 12명이 선정됐다. 1, 2차는 토너먼트 형식으로 진행됐으며 3차전에 진출한 최종 3인에 대해선 점수를 매겨 순위를 가렸다.

“라떼아트 대회여서 더욱 참가를 결심했어요. 제가 워낙 라떼아트 하는 것을 좋아하고 자신이 있는 편이거든요. 대회 참가만으로도 얼마나 성장했는지 확인하는 의미가 있었는데 우승까지 해 무척 기뻤습니다.”

2018년부터 바리스타 교육을 받고 자격을 취득한 서씨는 한미약품 사내 카페 ‘The H’에서 3년째 바리스타로 근무 중이다. 자격 취득 후 다른 카페에서 일한 경험이 있긴 하지만 장애를 이해하지 못하는 동료 때문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우선 The H 카페는 같은 청각장애인 바리스타들과 일하고 있어 서로 잘 이해하고 어려운 점은 소통하며 해결해 나가고 있습니다. 과거 일하던 카페에선 동료나 매니저가 장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나머지 모진 말을 해 상처를 받기도 했어요. 그렇지만 지금은 그저 지나간 일로 여기고 좋은 동료들과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현재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카페에서 일하던 초기엔 손님의 주문 내용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일이 잦았다. 그러나 바리스타들을 배려해 펜과 메모지를 구비해 뒀고 요즘은 키오스크로 주문을 받다 보니 한결 수월해졌다.

“어린 시절부터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냉대를 겪다 보니 사실 일하기 전부터 불안함이 적지 않았습니다. 잘할 수 있을지, 주문받는 데 실수하지는 않을지,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싫어하진 않을지…. 하지만 다행히 많은 분들이 청각장애인이라는 점을 이해해 주셔서 종이 주문서도 꼼꼼히 작성해 주시고, 크고 작은 배려를 해주세요. 그 덕에 바리스타의 꿈을 차곡차곡 쌓아갈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의 가장 큰 힘

어려서부터 아이들을 좋아했던 서씨는 유치원 교사가 되고자 유아교육을 전공했다. 유치원 교사가 되기 위해선 졸업 전 현장 실습이 필수인데 서씨를 받아주는 유치원은 없었다. 청각장애인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아이들에게 삶의 지혜를 나누는 나침반이 되고 싶단 생각에 유치원 교사를 꿈꿨습니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실습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아 당시엔 참 많이 힘들고 속상했던 기억입니다. 다른 꿈을 가질 수 있을까 고민도 많았어요.”

그 무렵 막막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찾은 카페에서 서씨는 우연히 새로운 꿈을 발견했다.

“머리도 식힐 겸 예쁜 카페에 다니는 것이 취미였는데 어느 날 ‘이거다’ 싶었어요. 몸과 마음이 지친 분들이 맛있는 음료 한 잔에 행복해하는 모습에 나도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인을 통해 청음복지관에서 바리스타 교육과 취업 연계, 바리스타 대회 등 다양한 지원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서씨는 그 길로 청음복지관의 문을 두드렸고 지금껏 도움을 받으며 바리스타로 성장했다.

청음복지관은 고(故) 운보 김기창 화백이 1985년 설립한 국내 최초 청각장애 복지관으로 청각장애인이 좀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과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바리스타 대회 이후 청음복지관은 우승자 서씨에게 세계 라떼아트 경연대회 WLAB(World Latte Art Battle) 출전을 지원했다. 비장애인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해 당당히 겨룰 수 있도록 강사 섭외, 제반 비용, 대회 접수 등을 도왔으나 결과는 아쉽게도 예선전에서 탈락했다.

“카페에서 일하고, 대회에 참가하면서 커피를 더 잘 알고 싶고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어요. 올해 3월부터 청음복지관에서 진행하는 ‘청각장애인 바리스타 역량강화 지원사업’에 참여해 바리스타 1급 자격증 취득을 목표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세계대회에서도 성과를 거두고 더 큰 세상에서 인정받는 바리스타가 되고 싶습니다. 제 이름을 건 저만의 카페를 운영하는 것도 먼 미래의 꿈이에요”

냉혹한 현실 속에서 새로운 꿈을 찾아 씩씩하게 삶을 살아내고 있는 서씨는 힘든 순간을 겪을 때마다 위로가 되는 존재들을 떠올리며 힘을 얻는다.

“힘들 때마다 응원해주는 사랑하는 가족, 주변 사람들이 저의 원동력이 되고 디딤돌이 돼요. 어렵게 품은 꿈을 포기하지 말길, 꿋꿋이 나아가길 제 자신과 모두에게 응원을 보냅니다.”

조혜정 기자 hjcho@kyeonggi.com

Copyright © 경기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