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인터뷰] ‘대한민국 캡틴’ 손흥민 부친 손웅정 감독이 말하는 인생 이야기

김경수 기자 2024. 4. 27.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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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밑에는 축구공이 있고, 손끝에는 책이 있다”

(시사저널=김경수 기자)

"대한민국이 더 이상 널 찾지 않을 때, 그때가 국가대표팀을 은퇴하는 순간이야." 

대한민국 캡틴 손흥민. 손흥민이 월드클래스로 우뚝 서기까지 그 뒤에는 든든한 버팀목이 있었다. 손웅정 SON축구아카데미 감독은 한국 축구의 '대들보' 손흥민 선수의 아버지다. 한편으로 아들의 개인 코치부터 매니저 역할까지 자처하며 온갖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손흥민의 해외 진출 초반 '손부삼천지교'라는 이야기가 나올 만큼 손웅정 감독의 헌신은 축구계를 넘어 우리나라에서 유명하다.

손웅정 감독이 늘 강조하는 게 있다. '인성'이다. 도덕성이 바로 서지 않으면 기량이 좋은 선수는 될 수 있어도 훌륭한 선수는 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축구에 임하는 태도와 자세, 재능을 뒷받침해줄 성실함과 겸손함이 갖춰져야 큰 선수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런 그가 신간 《나는 읽고 쓰고 버린다》을 펴냈다. 2010년부터 작성해온 독서노트 가운데 여섯 권을 바탕으로 했다. 2023년 3월부터 2024년 3월까지 1년간 김민정 시인과 여러 차례 진행한 인터뷰를 책으로 묶었다. 4월25일 오전 서울의 한 호텔에서 "책은 인생의 참 스승"이라고 말하는 손웅정 감독을 만났다.

ⓒ시사저널 임준선

독서노트는 언제부터 쓰기 시작했나.

"적자! 생존! 적는 놈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축구선수 은퇴 후 30대 때부터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때 참 힘든 시기였다. 책을 읽으면서 많은 지혜를 얻었다. 그래서일까. 힘들 때마다 책을 들었다. 그리고 적었다. 그래서 아직까지 습관이 들었나 보다. 틈나는 대로 책을 읽는다. 그리고 적는다. 책은 인생의 친구이자 스승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책을 읽는 목적이 달라졌다. 세월이 그만큼 흘렀다. 이제는 '젊은이에게 불편함을 주는 노인'이 되지 않기 위해 책을 읽으며 공부를 한다. 품격 있는 노인이 되고자 한다. 지식과 경험을 젊은 친구들에게 줄 수 있는 노인이 되고자 한다."

손 감독님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잔잔한 울림을 준다. 특히 인성 부분이 그렇다. 왜 그토록 인성을 강조하는가.

"혼자 사는 사회가 아니다. 다 같이 사는 공동체다. 그러나 사람들은 모두 자신만 소중하게 여긴다. 이기적인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내 돈이 소중하면, 남의 돈도 소중해야 한다. 내 물건이 소중하면, 남의 물건도 소중해야 한다. 근데 그렇게 못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 이기적인 사람이 많다. 인성 문제다. 상대방과 나의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남을 이해할 수 있다. 아무리 축구 재능이 뛰어나도 그 재능이 인성을 덮어줄 수는 없다. 상대방과 나의 다름을 인정하고, 남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유년 시절 손흥민(왼쪽)과 부친 손웅정 SON축구아카데미 감독 ⓒtvN 유퀴즈 온 더 블록 화면 캡처

감독님의 부모님이 궁금해진다. 어떤 인물들이었나.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분이다. 효도하려니 안 계신다. 부모님께 못해 드린 것만 생각난다. 불효자 중 불효자가 아닌가 생각한다. 부모님께 좋은 장점들만 물려받았다. 특히 책을 좋아하는 건 아버지를 쏙 빼닮았다. 아버지께서 평생 농사일을 하셨는데, 그 바쁘신 와중에도 책을 꼭 읽으셨다. 농촌사회에서 보기 쉽지 않은 일이다. 아버지께서 글 읽는 것을 상당히 좋아하셨다. 그 영향으로 나도 책과 가까워진 것 같다. 지금도 가끔 혼자서 부모님이 그리우면 생각나 불러본다. 내게 부모님은 사랑스럽고, 그런 분들이다."

감독님 인생에서 은사는 누구인가.

"책! 책이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은사다. 누가 10번, 100번, 1000번 물어도 책밖에 대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우리가 읽는 책 안에는 수많은 명사(名士)가 존재한다. 그들의 성공 전략과 참된 지혜가 담겨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은퇴하고, 먹고살기 위해 막노동을 전전하며 이곳저곳을 막 돌아다닐 때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새벽에 일어나 운동하고 책을 읽었다. 기적을 만드는 시간은 새벽이라는 것을 배웠다. 단 5분, 10분일지라도 새벽은 기적을 만들 수 있다. 평범한 사람을 보자. 이들은 하루를 3등분(아침, 점심, 저녁) 한다. 그러나 성공한 사람들은 5등분으로 하루를 보낸다. 새벽, 아침, 점심, 저녁, 밤!" 

4월25일 오전 서울의 한 호텔에서 손흥민 부친 손웅정 감독이 시사저널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손흥민 선수에 대한 언급을 안 할 수 없다. 우리나라와 토트넘 홋스퍼에서 주장을 맡으며 팀을 이끌고 있다. 리더십에 만족하는 편인가.

"우리나라도, 토트넘에서도 흥민이가 어떻게 주장이 됐는지 모르겠다(웃음). 흥민이가 서른이 넘었다. 다 큰 자식이다. 잔소리하지 않는다. 흥민이는 흥민이의 색깔이 있다. 나와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운동을 하고 있지 않나. (흥민이에게) 해줄 말도 없고, 얘기해준 적도 없다. 흥민이가 알아서 해결해야 할 문제다. 부모로서 흥민이가 축구를 재밌게 하면 된다." 

한국 축구 얘기는 빠질 수 없다. 이전 국가대표 선배들과 달리 지금 선수들은 '국가를 대표한다는 명예를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선수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앞서 말했듯 (축구를 하는) 시대가 다르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가 올 수 있다. 그리고 선수 개인의 성향에 따라 다르다. 개인적인 생각은 있다. 선수들은 분명 처음 축구를 시작할 때 가슴에 국가대표를 다는 꿈을 꿨을 것이다. 그런데 태극마크는 그냥 다는 게 아니다. 5000만, 우리나라 국민의 얼굴을 함축시켜 놓은 것이다. 엄청난 정체성을 띠고 있다. 이에 맞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었다는 책임 의식이 강해야 한다. 막중한 임무를 지닌 선수들이 모인 성스러운 자리가 국가대표다." 

축구 국가대표 평가전에 출전했던 손흥민(레버쿠젠)이 2015년 4월1일 오전 소속팀으로 복귀하기 위해 아버지 손웅정씨와 함께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출국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와 관련해 손흥민 선수에게 따로 말해준 게 있나.

"국가대표는 정말 신성한 자리다. 공을 먼저 찬 사람으로서 말하고 싶다. 물론 선수들과 다른 마음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스스로 국가대표를 은퇴하는 경우는 없다고 생각한다. 국가에서 나를 부르지 않으면, 그때 국가대표에서 은퇴해야 한다고 본다. 어릴 적 축구를 시작할 때부터 흥민이에게 자주 말했다. 네 스스로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할 수 없다고. 그 말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얘기해 주고 있다. 흥민이가 알아서 잘할 것이다."

다시 감독님으로 돌아오자. 어떤 가치를 최우선으로 삼고 인생을 살고 있나.

"시간만 나면 내가 좋아하는 청소를 하고, 운동하고, 공부(독서)하면서 지내고 있다. 이제 세월이 흘러 노인이 되어가는 중이다. 진짜 어른으로서 젊은이에게 존경을 받고자 한다. 로마 속담에 이런 게 있다. '집안에 어른이 없으면 돈을 주고 사라.' 이제는 우리 젊은 세대들이 현 세대를 이끌어가는 주인이다. 내가 가진 지식을 공유하면서 젊은이들에게 좋은 향기를 주는 노인이 되고 싶다. 더러운 냄새 나는 노인 말고. 공부를 통해 어른이 되고, 노인이 된다. 그것이 책이다. 그걸 토대로 나는 내 삶을 꾸려가고 있는 중이다." 

축구를 정말 사랑하는 것 같다. 먼 훗날 축구계에 어떤 인상을 남기고 싶은지.

"밀알. 50년 넘게 축구계에 몸담았다. 대단한 선수는 아니었지만. 지금도 나는 내가 좋아하는 축구를 하고 있다. 행복한 사람이다. 강원도 춘천에서 큰아들과 유소년 축구팀을 운영하고 있다. 훈련이 참 혹독하다. 그래도 끝나면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온다. 그리고 안아 달라고 조른다. 만나면 반가우니까 포옹을 한다. 아이들이 정말 좋은 축구선수가 될 수 있도록 지도하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축구를 계속하는 이유다. 정말 좋은 한국 축구, 태극마크를 달 수 있는 선수들을 많이 육성해 우리나라 축구에 도움을 주는 역할을 계속하고 싶다." 

손웅정 SON축구아카데미 감독이 기자회견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네 인생 '기본기'에 대한 질문을 던지다
유소년 축구 지도자 손웅정 감독이 말하는 《나는 읽고 쓰고 버린다》

손웅정 감독은 독서를 중시한다. 그에게 책은 절대적이자 인생의 참 스승이다. 힘든 시절, 책은 마음의 위안이 됐다. 프로 4년 차에 예상치 못한 부상으로 조기 은퇴한 후 하루 2~3번씩 고된 막노동을 했어도 새벽 3시30분이면 일어나 책을 꼭 읽었다. "성장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고 생각했다.

바쁜 일상 속에 틈을 내 책을 읽은 지 30년, 독서노트를 쓴 지 15년이 됐다. 그는 책을 읽으면, 지독하게 읽는다. 좋은 책이 있으면 3번 정독은 기본이다. 먼저 검정 볼펜으로 밑줄을 쳐가면서 읽고, 두 번째는 파랑 볼펜, 세 번째는 빨강 볼펜으로 메모를 한다. 그 후 자신의 독서노트에 옮겨 적는다.  

이런 그가 신간 《나는 읽고 쓰고 버린다》를 펴냈다. 2023년 3월부터 2024년 3월까지 1년간 김민정 시인과 여러 차례 진행한 인터뷰를 책으로 묶었다. 이 인터뷰는 손웅정 감독이 2010년부터 작성해온 독서노트 가운데 여섯 권을 바탕으로 진행됐다. 손 감독은 "(손)흥민이를 포함해 가족들 가운데 그 누구에게도 이 노트를 보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파급력이 상당하다. 출간 1주 만에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예스24에 따르면 이 책은 4월 4주 종합 베스트셀러 1위 및 자기계발 분야 1위를 기록했다. 4월17일 판매가 시작돼 하루 만에 종합 17위에 진입했고, 한 주가 지난 지금은 종합 1위를 달성했다.

저자는 책을 통해 묻는다. "기본에 충실하고 이론을 다지면 나만의 경쟁력은 절로 커지는 건데 그걸 안 한다? 도둑놈 심보지. 그거야말로 욕심이지." 그러고선 저자는 답을 이어간다. "기본은 불편한 것이다. 결국 불편함은 노력이다. 내가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 불편함이 지속된다는 건 한편으로는 내 몸에 좋은 습관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기본기다."

저자는 평생 일군 축구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치열하게 겪었던 자신의 경험담을 책을 통해 소개한다. 기본, 가정, 노후, 품격, 리더, 코치, 부모, 청소, 운동, 독서, 사색, 통찰, 행복 등 13가지 키워드를 통해 우리에게 큰 감동의 울림을 전한다.

"약속이 무너지면 가정이 무너진다. 노욕처럼 추한 게 없다. 큰 종은 잡소리가 나지 않는다. 높은 나무 위에서 내려다보듯 거리를 두고 지켜보는 게 부모의 일이다. 발밑에는 축구공이 있고, 손끝에는 책이 있다." 손웅정 감독의 인생 수업을 경청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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