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미국만 ‘나홀로 경제성장’ 이어갈까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2024. 4. 27.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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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준 예상과 다르게 금리 인상 효과 제한적
시장 기대했던 6월 금리 인하 사실상 물 건너갔나

(시사저널=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영화 《극한직업》에서 위장하기 위해 가게를 차린 것뿐이지만 손님이 너무 많이 몰려 힘든 수원 왕갈비 통닭집의 김영호 형사는 이렇게 소리친다. "왜 이렇게 장사가 잘되는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2021년 3월부터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다. 정책금리가 1년 반 만에 0.25%에서 23년 만에 최고 수준인 5.5%까지 상승했다. 당연히 경기 침체가 예상됐다. 실제로 2021년 상반기 미국 경제는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2022년의 주식과 채권시장도 모두 20% 넘게 폭락했다. 2023년 초에는 은행 위기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미국 경제는 대다수 전문가의 예상과 달리 진행됐다. 연준이 금리 인상을 시작할 당시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직전 2개 분기 평균치가 2.5%였으나 지금은 4.2%에 달한다. 실업률은 3.8%로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수준이고 기업 이익은 3조 달러에서 3조4000억 달러로 늘어났다. S&P500지수는 4300선에서 약 5000선으로 뛰었다. 연준이 금리를 올리면서 예상했던 상황과 다르게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미국 금리가 가파르게 치솟았지만 미국 경제는 여전히 견조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어 배경이 주목된다. 사진은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직원이 원-달러 환율 흐름을 지켜보는 모습 ⓒ시사저널 최준필

올해 경제성장률 2.1%에서 2.7%로 조정

사실상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미국 경제만 빠른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미국의 올해 성장률 예상치를 기존 2.1%에서 2.7%로 상향 조정했다. GDP(국내총생산) 규모로 우리나라의 15배인 미국이 올해 성장률 전망치 2.3%인 우리보다 높다. 경제가 너무 좋아 문제인 건 물가가 좀처럼 잡히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올해 물가상승률 2% 목표치를 확신하기까지는 예상한 것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했다. 이미 6월의 금리 인하는 물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월가는 기준금리가 빨라야 오는 9월에나 인하될 것으로 예상한다. 11월 미국 대선을 생각하면 그 이후로 미뤄질 것이란 관측도 있다. 미국보다 기준금리가 2%포인트나 낮은 우리로서는 답답한 일이다. 미국이 먼저 금리를 낮춰줘야 하는데, 그 가능성이 자꾸 줄고 있다.

미국은 도대체 왜 이렇게 경제가 좋은 것일까. 수원 왕갈비 통닭집에 손님이 많은 이유는 결국 통닭이 맛있기 때문이었다. 미국의 경기가 좋은 이유도 비슷하다. 무엇보다 소비가 너무 좋다. 미국 경제가 나빠지려면 소비가 둔화하거나 감소해야 한다. 소비는 미국 GDP 성장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그러나 물가가 오르는데도 가계는 소비를 줄이지 않았다. 미국 소비의 주요 지표인 소매판매는 3월에도 전월보다 0.7% 늘어나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집계한 전문가 예상치 0.3%를 크게 웃돌았다. 높아진 금리에도 여전한 소비는 안정적 고용과 임금 상승 덕분이다. 미국의 고용시장 지표는 여전히 탄탄하다. 실업률 3.8%는 사실상 완전고용 수준을 의미한다. 3월 한 달에만 신규 고용은 30만3000명을 기록했다.

생산성 향상도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최근 3분기 동안 생산성 상승률은 코로나19 이전 10년간 평균 생산성 상승률보다 세 배 이상 높았다. 낮은 실업률과 높은 생산성 덕분에 임금상승률도 2023년 6월 이후부터 물가상승률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사실 노동시장이야말로 미국 경제의 성장을 가능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평균연령은 다른 선진국보다 젊고 출생률도 높다. 앞으로 10년간 전 세계 15대 경제 대국 중 7개 국가가 노동력 감소를 겪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민 유입이 많은 미국은 아니다. 미국 노동인구는 5%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노동력의 양과 질에서 미국은 비교할 수 있는 나라가 없다.

이쯤 되면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과연 연준의 금리 인상이 정말 미국 경제를 가라앉혀 물가를 잡을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수준이었는지부터 말이다. 통화 당국이 물가를 잡으려면 먼저 실질 중립금리(Neutral Real Interest Rates)를 추정한 후 중립금리보다 기준금리를 높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실질 중립금리는 중장기적으로 한 경제의 실제 GDP와 잠재 GDP를 일치시켜 인플레이션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게 하는 단기 실질금리로 정의한다. 물가를 자극하지도 둔화시키지도 않는 금리 수준을 의미한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에 따르면 미국의 지난해 4분기 실질 중립금리는 0.73%에서 1.12% 정도로 추정된다. 연준의 기준금리 5.5%에서 3월의 소비자물가 상승률 3.5%를 빼면 2% 수준이다. 중립금리보다 높다. 물가상승률 대신 기대인플레이션율을 넣어도 비슷하다. 그러나 미국의 중립금리는 연준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높을 수도 있다. 중립금리는 성장 잠재력을 반영한다. 미국의 잠재성장률이 높아졌다면 중립금리도 높아져야 한다. 현재 미국의 기준금리는 미국의 경제력을 기준으로 생각해 보면 크게 긴축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일부에서 1%포인트 이상의 추가 금리 인상을 주장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사실 연준의 긴축이 대외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철저했다고 할 수는 없다. 연준은 금리를 올리면서도 필요하면 수시로 대규모 금융지원을 시행해 왔다. 지금도 연준의 보유자산은 7조5000억 달러 규모다. 미국의 경기가 위축되지 않은 데는 정부의 재정지출이 미친 영향도 빼놓을 수 없다. 코로나가 유행하던 2020년부터 2021년 사이에 미국 정부는 무려 5조 달러를 경기 부양을 위해 쏟아부었다. 정부가 뿌린 돈은 가계로 들어가 지금도 일부는 계좌에 남아있다. 저축이 많은 가계는 금리 상승이 오히려 반갑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상하는 동안에도 정부의 지출 확대는 이어졌다. 학자금 부채 탕감 규모만 1530억 달러였다. 지금도 미국 정부는 대규모 적자재정을 편성해 반도체를 포함한 각종 산업에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정부지출은 지난해 미국 경제성장의 약 25%를 차지했다.

경기 침체 전 '폭풍전야'인가

물론 언젠가는 모두 끝이 난다. 미국의 돈줄 조이기가 실제로는 제한적이었다고 해도 영향은 있다. 미국 경제에 나쁜 조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서비스업을 합친 종합고용지수는 2020년 이후 처음으로 하락했다. 임금 증가 추세는 여전하지만 조금씩 둔화하고 있다. 시간제 근무가 많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좋은 신호는 아니다. 계좌에 남아있는 정부의 지원금도 이제 곧 바닥이 날 것이다. 지난해 미국 가계저축률은 3.3%로 금융위기 직전 해였던 2007년 이후 가장 낮았다.

반면 신용대출은 늘어나고 있다. 신용대출 잔액은 사상 처음으로 5조 달러를 돌파했다. 자동차 대출 연체도 늘고 있고 모기지 금리가 연 7%대로 높아지면서 3월 기존 주택 매매 건수는 한 달 전보다 4.3% 줄어들었다. 2022년 11월 이후 가장 큰 하락 폭이다. 미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와 3개월 국채 금리는 2022년 10월 역전됐고 이후 역전 상태를 지속하고 있다. 과거에도 종종 미국 경제는 경기 침체가 시작되기 직전까지 낮은 실업률을 유지하면서 호경기의 모습을 보이곤 했다. 경기를 전망하는 일은 미국 연준도 때로 실패한다. 경기 하강은 없으리라고 단언하기는 아직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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