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벼락스타 된 불안장애 청소년의 여정 그린 《디어 에반 핸슨》
(시사저널=조용신 뮤지컬 평론가)
올해 뮤지컬 해외 라이선스 작품 라인업 가운데 가장 기대를 모은 대표작 중 하나인 《디어 에반 핸슨(Dear Evan Hansen)》이 드디어 한국 초연이자 아시아 초연을 시작했다. 이 작품은 브로드웨이에서 2016년 초연한 후 이듬해 제71회 토니어워즈 9개 부문 후보에 올라 최우수 작품상, 극본상, 음악상, 남우주연상 등 총 6개 부문을 수상했다.
2018년 그래미상 최우수 뮤지컬 앨범상과 로렌스 올리비에 어워즈도 석권했다. 특히 미국 뮤지컬계의 아카데미상인 '토니상 음악상'과 오케스트레이션상을 수상한 음악이 인기를 끌었다. 공동으로 작사·작곡을 맡은 벤지 파섹(Benj Pasek)과 저스틴 폴(Justin Paul) 듀엣은 뮤지컬 영화 《라라랜드》 《위대한 쇼맨》보다 이 작품을 먼저 창작했다.
외톨이 주인공, 사랑받는 존재가 되다
우리나라에서도 주요 히트곡들을 여러 뮤지컬 배우와 가수들이 번안해 부르는 영상을 발표했다. 정식 뮤지컬이 공연되기 전부터 이미 팬들에게 널리 알려진 상태였다. 2021년에는 뮤지컬 영화가 발표됐다. 브로드웨이 초연에서 주인공 에반 핸슨 역을 맡았던 벤 플렛이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다. 오리지널 원작이 뮤지컬이어서 개막 이후 창작자들이 공동으로 쓴 소설책이 발표됐고, 우리나라에서도 발간돼 관심이 더 커진 상태였다.
이 작품은 고등학생 에반 핸슨을 통해 가정, 학교, 회사 등 우리가 속해 있는 여러 집단 속에서 누구나 한번쯤 겪었을 외로움에 대해 말한다. 불안장애를 앓으며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약물치료와 심리치료를 병행하고 있는 소심한 주인공이다. 어린 시절, 새로운 가정을 찾아 떠난 아버지의 빈자리를 느끼고 있다. 어머니는 자신과 아들의 생계를 유지하려고 간호사로 일하며 야간에는 법학을 공부하는 늦깎이 학생이다.
에반 핸슨이 행한 '선의의 거짓말'이 작품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로 인해 외톨이였던 그는 하루아침에 주변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존재가 되고, SNS에서는 유명 인사가 된다. 여름방학 때 팔을 다쳐서 깁스를 하고 있지만, 다친 팔에 응원하는 메시지와 그 흔한 사인 하나 해줄 친구가 없다.
개학을 하고 다시 세상 밖으로 떠밀려 나온 우리의 주인공은 내복약을 챙겨 먹으면서 상담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자신에게 격려의 편지 쓰기' 과제를 위해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첫 머리말은 "디어 에반 핸슨. 오늘은 멋진 날이 될 거야."
학교의 또 다른 외톨이이자 폭력적인 성향의 동급생 '코너 머피'는 학교 프린터에서 에반의 글에 있는 동생 조이의 이름을 우연히 발견하고 화를 내며 그 편지를 빼앗아 간다. 그러고선 며칠 후 뜻밖에 코너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문제가 생겼다. 에반의 편지가 코너 부모님에 의해 반대로 코너가 에반에게 쓴 편지이자 유서로 둔갑했다. 단 한 번도 제대로 대화를 나눠본 적도 없는 두 외톨이 에반과 코너는 갑자기 절친으로 포장되고 만다.
에반은 코너의 집에 초대돼 자신의 집에서는 못 느꼈던 커다란 환대를 받게 되자 가정의 편안함을 느낀다. 게다가 짝사랑하는 조이까지 자주 만날 수 있게 되자 생각 없이 시작된 거짓말을 멈추지 못한다. 가짜 추억까지 상상으로 만들어 들려주자 기뻐하는 코너의 부모님을 보면서 점점 대담한 거짓 절친 행세를 하게 되고, 날짜를 조작한 둘만의 가짜 이메일을 만드는가 하면, 학교 대표로 코너의 추도사도 낭독한다.
한때 대인기피에 시달린 에반은 이제 SNS를 통해 유명해지고, 코너처럼 도움이 필요한 소외된 사람들을 돕는 캠페인 '코너 프로젝트'의 리더가 되는 일이 벌어진다. 선의의 거짓말이 이제 선과 악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위험한 거짓말이 된 것이다.
인간은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메시지 담아
이 작품에서 1막의 엔딩 장면에 등장하는 SNS와 현실 친구들이 에반과 코너의 우정을 찬미하고 코너를 추모하는 곡 《You will be found》는 인류애와 공동체 의식이 넘치는 내용의 가사를 지닌 명곡이지만, 실제로는 브레이크가 고장 난 거짓에 온 세상이 속고 있는 상황을 노래하고 있어 무대 위 뮤지컬 드라마가 주는 아이러니함이 증폭된다.
하지만 거짓의 끝은 진실의 회복이다. 주인공이 이러한 과정을 겪으며 진실의 모습을 찾고 한 단계 성장했다고 느껴질 때 우리는 더 큰 위로를 보내줄 수 있다. 중요한 건 가정과 학교에서 보호가 필요하지만, 집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고 학교에서도 친구가 없어 외롭고 불안한 주인공에게 어느덧 주변 사람들이 손을 내밀었다는 것이다.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해 줬다. 저마다 비슷한 상처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 소통하고 연대하면서 서로에게 힘을 북돋아주는 것이다. 시작도 하기 전에 멈추는 법을 배운, 눈길을 끌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감춘 한 소년과 우리 모두가 공통적으로 느끼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공유하고 서로를 버팀목으로 삼는다.
작품의 주요 캐릭터는 청소년인 에반이지만 이 공연은 단순히 청소년 드라마가 아니고 모든 세대를 넘어 인류에 대한 큰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다. 사망한 아들에게 절친이 있을 거라고 믿고 기뻐하는 코너 부모의 행동과 의식은 청소년 자식을 둔 부모 세대에게는 너무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더구나 갑자기 행동이 달라진 아들로 인해 불안감과 동시에 시간을 많이 내주지 못해 미안함을 느끼며 전전긍긍하는 에반의 어머니 모습은 뭉클한 울림을 선사한다. 객석에서 부모와 청소년 자녀가 함께 관람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은 작품이기도 하다.
제목에서 보여주듯 주인공 에반 핸슨 역할 배우의 연기와 노래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은 작품이기도 하다. 박강현, 김성규, 임규형 세 명의 배우가 소심한 불안장애 소년의 미세한 디테일을 각자의 스타일로 연기하면서 조금씩 다른 에반 핸슨을 표현하고 있다. 강한 생활력을 가진 강단 있는 어머니 하이디 핸슨 역을 맡은 김선영, 신영숙의 연기도 백미다.
이 밖에도 코너 머피 역에는 윤승우와 임지섭이, 조이 머피 역에는 강지혜와 홍서영이 출연한다. 무대는 전면을 가득 채운 LED 스크린으로 구성돼 있다. 브로드웨이 초연에서부터 보여준 현대인들의 디지털 문화와 연결을 상징하는 현대적인 연출을 한국 무대에서도 같은 콘셉트로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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