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과 이스라엘이 ‘찔끔 보복’으로 전면전 피한 이유

채인택 국제 저널리스트 2024. 4. 27.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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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에서의 미국의 힘’이 양국 모두 확전 꺼리게 만들어

(시사저널=채인택 국제 저널리스트)

우려했던 이스라엘과 이란의 맞대결이 즉각적인 초강경 대응이나 확전 없이 일단 소강 상태에 들어갔다. 양측의 보복성 폭격이 모두 제한적으로 이뤄지면서다. 4월1일 이스라엘의 시리아 다마스쿠스 이란대사관 영사부 폭격에 대한 보복으로 이란이 13~14일 밤(현지시간) 예루살렘을 비롯한 이스라엘 여러 곳을 향해 탄도미사일 120기, 순항미사일 30기, 자폭드론 170기를 발사하자 이스라엘은 19일 보복에 나섰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이란 중부 이스파한 인근의 군 방공기지를 가볍게 건드렸을 뿐이다. 이스파한은 이란의 주요 우라늄 농축시설이 있는 도시지만 뉴욕타임스(NYT) 등의 보도에 따르면 이스라엘이 이를 목표로 삼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이스라엘이 발사한 일부 미사일을 목표물에 도달하기 전에 공중 자폭시켰다는 주장도 있다. 

이스파한은 중심부 인구가 200만 명, 광역권을 포함하면 400만 명이 몰려 사는 대도시다. 16~17세기 사파비 왕조의 수도로 모스크·시장·교량 등 이슬람 페르시아 문화의 유적이 잘 보존돼 중국 시안(西安)이나 이탈리아 피렌체에 비견되는 유서 깊은 역사도시이자 관광지다. 이에 따라 폭격이 진행됐으면 대규모 인명 살상과 문화유적 파괴로 인해 양국 간에 돌이킬 수 없는 확전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상징적인 타격만 하고는 침묵 모드에 들어갔다. 

이스라엘의 아이언돔 미사일 방어 시스템이 가자지구에서 발사된 로켓을 요격하고 있다. ⓒREUTERS

미·영·프 전투기가 공중 요격 도왔다?

이란도 4월13~14일 이스라엘을 드론 등으로 공격한 후 이스라엘이 보복하면 강경 대응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시리아 주재 자국 대사관 영사부 폭격에 대한 보복은 끝났다고 선언했다. 게다가 이스파한까지 이스라엘 미사일(이란은 깡통 수준의 드론이라고 주장)이 들어왔는데도 더 이상의 대응에는 나서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NYT,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서방 지도자들이 이스라엘의 강경파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를 적극적으로 설득한 결과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네타냐후는 전쟁을 계속하는 게 곧 정치 생명 연장으로 이어지는 강경 주전파다. 그런 네타냐후를 바이든 대통령이 지역 안정이니 인도주의니 하는 말로 설득해 봐야 들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렇다면 바이든은 도대체 어떤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나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엄청난 압박'을 네타냐후 앞에 내놓았던 것일까.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중동에서의 미국의 힘'이다. 잠시 당시를 복기해 보자. 이스라엘은 4월13~14일 이뤄진 이란의 드론·순항미사일·탄도미사일의 99%를 막아냈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서방 언론들은 이스라엘이 자랑해온 자국산 방공무기체계인 아이언돔이 제대로 작동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는 일부만 맞을 뿐이다. 

이스라엘은 날아오는 발사체 종류에 따라 서로 다른 3중 공중방어체계를 갖추고 있다. 거리가 250km 떨어진 발사체면 '다윗의 무릿매(David's Sling)'로, 90~150km면 애로(Arrow·화살) 미사일로 각각 요격한다. 무릿매는 돌을 끈에 넣고 돌려서 던지는 무기로 구약성서에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칠 때 사용한 바로 그것이다. 거리가 40~70km의 로켓이나 포탄은 아이언돔으로 막는다. 지난해 10월에는 하마스가 로켓을 다량으로 발사하자 용량을 초과했는지 아이언돔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이스라엘은 최소 2개 포대의 다윗의 무릿매를, 3개 포대의 애로 포대를, 그리고 10개 포대의 아이언돔을 가동한다. 여기에 사거리 160km의 미국산 패트리엇 포대로 최소 6개 포대를 운용하며 요지나 주요 기지를 방어한다. 이번 이란의 공중무기 공격은 이런 여러 가지 방공무기를 총동원해 막았을 것이다. 

거기에 더해 주목할 점이 있다. 이란이 발사한 공중무기의 대부분이 이스라엘 밖에서 요격됐다고 이스라엘군 대변인이 밝혔다는 사실이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 등은 이스라엘은 물론 미국·영국·프랑스의 전투기가 요르단이나 이라크 상공에서 이란의 공중무기를 요격했다고 보도했다. 이를 위해 이스라엘과 수교한 아랍 국가인 요르단·UAE는 물론, 수교를 추진하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중단한 사우디아라비아도 발사체 정보 등을 공유하며 이란 공중무기 요격을 도왔다고 한다. 

유심히 살펴봐야 할 부분은 중동에 배치된 미군 전력의 규모다. 2021년 8월 아프가니스탄 철군 이래 미국이 중동을 전략적으로 포기하고 있다는 국제정치 전문가들의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미국이 중동에 전개하고 있는 군사력을 살펴보면 실제 막강하다. 미국은 현재 중동에서 사우디(1곳, 이하 기지 숫자), 바레인(3), 아랍에미리트·UAE(3), 카타르(2), 쿠웨이트(4), 이라크(3), 요르단(1) 등 최소 17곳에 군사기지를 두고 있다. 대부분의 기지에 전투기 등 막강한 군사력이 배치돼 있다. 

주목되는 건 2008년 사우디에서 철군한 미군이 2019년 수도 리야드 근처의 프린스 술탄 공군기지로 돌아왔다는 사실이다. 현재 3000명 이상의 미군이 주둔하면서 B-1 폭격기와 F-15 전투기, 그리고 스텔스기인 F-22 랩터 등 최강 공중 전력을 운용한다.

미국에 안보 기대고 있는 이스라엘

사정이 이러니 네타냐후 총리는 4월13~14일 이란의 공중 공격을 막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미국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바이든이 공언한 대로 미국이 지원하지 않는다면 이스라엘의 보복 작전도, 이란의 재공격에 대한 방어도 쉽지 않다는 현실론이 작용했을 것이다. 외부나 외국의 공격으로 이스라엘 땅에서 다시 인명 피해가 발생한다면 네타냐후는 하마스에 이어 이란에도 국민의 생명을 잃게 한 무능한 지도자로 낙인찍힐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 안보가 얼마나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지를 잘 아는 네탸냐후로서는 바이든이 직접 압박했을 경우 무시하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하마스와의 전쟁을 마무리하기도 전에 이란과 전쟁을 벌일 경우 아무리 이스라엘이라 해도 두 개의 전쟁을 동시에 치르기에는 벅찰 수밖에 없다. 

이란도 말로는 이스라엘이 보복하면 더욱 엄청난 공격을 가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실제 군사적 운신의 폭은 넓지 않다. 경제력과 자체 군사력도 문제지만, 중동의 미군 전력이 마음에 걸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이란은 1980~88년 이란-이라크 전쟁을 치르면서 20만~60만 명의 군인이 숨지고 32만~50만 명이 부상한 경험을 안고 있다. 상처가 워낙 컸던지 이란은 아직도 전국의 모스크나 공공건물에 남녀 전사자의 사진이 붙은 현수막을 걸어놓고 추모한다. 이런 이란이 단기간에 승리할 가능성도 없이 정면으로 이스라엘과 군사 대결이라는 모험을 하기란 쉽지 않다. 다만 중동에선 특유의 문화 때문에 서방식 논리나 전망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왕왕 있어 앞으로 어떤 우발적인 사고가 벌어질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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