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허가제 20년…여전히 상처받고 있는 사람들 [창+]

손은혜 2024. 4. 27.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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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기획창 '고용허가제 20년-공존의 조건' 중에서]

살람 씨(가명)는 1년 반 전 한 축산업체와 계약을 맺고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일을 시작한 지 10개월째, 익숙해가던 일상이 송두리째 흔들렸습니다.

<인터뷰> 살람(가명) / 외국인 근로자
그날 저녁에 숙소에서 일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사장이 부르더니 한 시간 안에 떠나라고 했어요. 왜 그러냐고 물으니까 이유는 없고 그냥 제가 나갔으면 좋겠다 했어요.

<당시 촬영 영상>
- 대표: 야, 너 빨리 가서 짐 싸. 야, 미쳤나 진짜. 가!
= 살람: 아니야
-대표: 뭐가 아니야. 가라고 가. 야, 내가 가라면 가는 거야 짐 싸.
=살람: 지금 제가 안 가요.
-대표: xxx. 정신 나갔어. 야, 짐 싸라고!

막무가내로 사업장을 떠나라고 요구하는 사업주,
살람 씨는 납득 할 수 없었습니다.

<인터뷰> 살람(가명) / 외국인 근로자
열심히 일했어요. 택배 보내는 일을 주로 했는데, 제가 일을 할 때는 반품이 하나도 없었어요. 사장이 "이곳은 자신의 집이니 내보내는 건 자기 마음이다"라는 식으로 말했어요.

무방비로 회사 기숙사에서 나오게 된 살람 씨는 한동안 모텔을 전전해야 했습니다.

제작진은 사업주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인터뷰를 거절했습니다.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외국인 근로자들은 정해진 기간, 정해진 일터에서만 일을 한 뒤 본국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예외적으로 사업장을 바꿀 수는 있지만, 필수적으로 사업주의 동의를 받아야 하고, 신청 기한과 신청 횟수 등에도 제한을 받습니다.

일터를 바꾸기 위해 외국인 근로자에게 주어지는 기간은 퇴사일로부터 단 한 달. 기한을 넘기면 곧바로 출국해야 합니다.

직장에서 쫓겨난 뒤 체류자격마저 잃을까 봐 다급해진 살람씨는, 결국 고용센터의 지시에 따라 사업장 변경 신청을 했습니다.

그녀는 억울했습니다.

<인터뷰> 살람(가명) / 외국인 근로자
고용센터에서는 제가 전 직장을 당사자 간 합의로 그만두었다고 표시해야 한다고 했어요. 사장님이 표시한 대로 등록하지 않으면 구직 신청을 할 권리가 없다고 했어요.

하지만 고용센터 관계자는 센터 차원에서 합의를 강요하는 일은 없었다고 말합니다.

<녹취> 고용센터 관계자
(피해 관련해) 조사 중이거나 진정서 건이 접수되거나 하면 임시 사업장 변경 신청을 할 수 있거든요. 그런 제도를 활용할 수 있는 건데 본인들이 판단해서 한 거라서...

이처럼 사업주와 외국인 노동자 사이에 분쟁이 발생하면, 외국인 노동자들이 끝까지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INT> 김이찬/이주인권단체 '지구인의 정류장' 대표
이거는 해고의 권한이 일방에게만 있고 일, 직장을 그만두고 싶은, 노동을 그만두고 싶은 권리는 (노동자에게) 전혀 안 주어지고. 이 권한의 불균형에서 나온 거라고 생각이 들거든요? 노동자는 내가 체류권을 잃지 않기 위해서 내 스스로 거짓말을 해야 되는 상황인 거예요. 법률 자체가 한계가 있는 거죠.

얼마 전, 살람 씨는 다시 고용센터를 찾았습니다.

시민단체의 도움을 받아가며 피해를 밝히는 조사를 진행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INT> 김이찬/이주인권단체 '지구인의 정류장' 대표
결과를 받으면 근로감독관의 조사 의견서를 가지고 고용센터에 다시 사업장 변경 사유 변경을 신청 한번 해 봐야겠죠.

<인터뷰> 살람(가명) / 외국인 근로자
제 자신을 위한 정의를 찾고 싶어서요. 사장이 외국인 근로자들을 자신과 같은 사람으로 여겨줬으면 좋겠어요. 무시하거나 (<짓밟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갑자기 다른 사람으로 대체해 버리는 게 아니라요.

1년 전 방글라데시에서 온 칼레씨는 얼마 전까지 석재공장에서 일했습니다.

<인터뷰> 칼레(가명) / 외국인 근로자
재단실에서 일했어요. 재단실에서 돌 잘라서 (자른) 돌을 들어 올려서 바로 뒤에 놓았어요. 이걸 계속해야 돼요.

처음 해보는 일이라 바로 적응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회사는 칼레 씨를 기다려 주지 않았습니다.

괴롭힘은 심해졌고, 폭행의 강도는 점점 더 커졌습니다.

<인터뷰> 칼레(가명) / 외국인 근로자
다른 곳에서 한국인 직원과 같이 일을 했어요. 그 직원이 제가 빨리 빨리 못하니까 ‘왜 이렇게 천천히 해, ××야. 빨리빨리 해, ××야’라고 하면서 철근으로 ○○(급소/신체 중요부위)를 때렸어요.

칼레 씨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처음엔 대수롭지 않은 일인 양 처리했습니다.

<당시 촬영 영상>
아니, 장난한걸. 예쁘다고 그렇게 우리가 장난치고 이렇게 한 건데 (잘못 맞은 거지)~
(경찰: 욕하고 하면 노동부에 고발해, 오케이? 좀 참고, 좀 참아. 오케이?)

<인터뷰> 칼레(가명) / 외국인 근로자
아저씨가 때려요. 며칠 전에 공장장님도 나 때려요. 이렇게 때리면 어떻게 일해요, 이 공장에서?

회사 측은 사업장 변경을 요구하는 칼레 씨의 의견을 무시하고 오히려 한 달간의 정직 처분을 내렸습니다.

이후 경찰이 폭행 정황을 조사한 뒤 사건을 검찰로 송치하자, 그제서야 사업장 이동에 동의해 줬습니다.

하지만 사업장 변경 이유는 ‘근로자의 태업’으로 체크하도록 했습니다.

<인터뷰> 칼레(가명) / 외국인 근로자
이거는 거짓말이에요. 맨날 열심히 일했어요.
(기자: 그런데 왜 여기에 사인하셨어요, 맞다고? )
그 공장에 1시간도 더 있을 생각이 안 들었어요. 당장 거기서 나가고 싶었어요. 스트레스가 컸어요. 사람들 전부 싫었어요. 그래서 항복하고 사인해 줬어요.

이 같은 일을 수없이 봐왔다는 섹 알 마문 씨는 한국의 고용허가제도에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합니다.

<인터뷰> 섹 알 마문/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
법의 보호라는 건 내가 알아야 보호를 받을 수 있고 나한테 힘이 있어야 받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런데 남의 나라 와서 내가 회사를 바꾸려고 하면 내가 권리를 주장하려고 하면 누군가를 범죄자로 만들어야 돼요. 그건 한국 사람이라도 쉽지는 않을 거예요.

관련 방송: 2024년 4월 23일(화) 밤10시 KBS1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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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은혜 기자 (grace35@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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