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업 성지’ 성수, 언제까지 힙할까? 상권 성장의 공식 [딥다이브]

한애란 기자 2024. 4. 2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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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7대 상권이 어디인지 아시나요. 명동, 강남역, 홍대, 가로수길, 청담·도산공원, 이태원·한남, 그리고 성수입니다. 2년 전만 해도 ‘6대 상권’이었는데, 성수가 추가됐죠. 매출 성장률 면에서 가장 압도적인 상권이기도 합니다.

성수가 뜬다, 힙하다는 얘기가 나온 진 사실 오래됐죠. 그래서 요즘엔 ‘이제 성수도 곧 한물가지 않을까?’라고 묻는 이들이 많아지는데요. 상권이라는 게 본래 생물 같아서 갑자기 쑥쑥 크기도, 급 시들어버리기도, 다시 살아나기도 하는 법이죠. 신구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 리테일 임차자문팀 이사를 만나 성수를 중심으로 한 상권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붉은 벽돌로 된 낡은 건물은 성수동을 힙하게 만드는 주요 구성요소다. 성수동 연무장길에서 가장 먼저 터를 잡은 카페 겸 갤러리 대림창고의 모습. 동아일보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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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의 시작과 상권 성장 공식

허름한 정비공장과 철공소, 인쇄소가 모인 준공업지역. 성수의 본 모습이죠. 이런 성수의 변화가 시작된 건 2011년입니다. 지금은 성수의 대표 거리가 된 연무장길에 복합문화공간 ‘대림창고’가 문을 열었죠.

“2012년이었어요. 당시 H&M이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 콜라보레이션을 기념한 파티를 대림창고에서 열었죠. 그땐 행사는 다 강남에서 했거든요. 행사를 가면서 ‘아니 무슨 성수에서 행사를 해?’라고 했어요. 공장이 늘어선 길이 저녁이라 컴컴했죠. 그리고 빨간 벽돌의 커다란 창고건물에 탁 들어갔는데. 공간이 주는 임팩트가 있는 거예요.
남신구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 이사(왼쪽)가 19일 인터뷰를 진행하며 성수 상권을 설명하고 있다. 패션산업 담당 기자 출신인 남 이사는 2012년에 쿠시먼에 합류해 국내외 리테일 브랜드에 새 매장을 어디에 열지를 자문하는 팀을 이끌고 있다. 글로벌 브랜드는 한국 1호점을 출점할 때 준비과정이 길게는 3~4년까지도 걸리다 보니, 어느 브랜드가 한국에 언제 진출하는지를 가장 일찍 파악하는 편이다. 동아일보 촬영
오래된 공장 건물을 트렌디한 상점으로 바꾸는 유행이 전 세계적으로 시작되던 시점이었습니다. 2005년 재개발이 시작된 뉴욕 브루클린의 환골탈태가 영감을 줬죠. 한강만 건너면 바로 압구정·청담인 데다, 지하철 2호선이 연결된 황금입지. 이전에도 막연히 ‘앞으로 뜰 곳’이란 평가를 받아왔던 성수에 ‘한국의 브루클린’이란 수식어가 붙습니다.

상권의 성장엔 공식이 있습니다. 어디든 처음 뜨기 시작할 땐 먹고 마시는 곳, 업계 용어로 F&B(Food and Beverage)부터 들어오죠. 힙한 카페와 식당들이 생겨나면서 주목을 끌고요. 이어 화장품이나 소품처럼 작고 가벼운 브랜드들이 자리를 잡습니다. 이후 유동인구(트래픽)가 늘고 매출이 성장하면 패션 브랜드가 들어오는데요. 처음엔 개인이 운영하는 작은 브랜드가 먼저 오지만 점점 대기업, 글로벌 브랜드까지 진출합니다.

뜨는 상권은 많지만, 이 단계를 착착 밟아 성장을 이루는 곳은 드뭅니다. 좀 뜨는 듯하다 마는 곳이 대부분이죠. ‘다음엔 어디가 뜰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가 어려운 이유입니다.

“예를 들면 경리단길은 예전에 굉장히 핫했고요. 망원동이 갑자기 주목받기도 했죠. 여기저기가 막 뜨는데요. 실제로는 거기에 패션브랜드까지 들어와서 상권이 유지·발전되는 곳은 매우 한정적이에요. 쇼핑할 때 ‘거기에 무슨 브랜드가 있더라’라며 찾아갈 수 있는 상권은 손에 꼽히죠.”

뜨는 상권 중 하나였던 성수는 2019년 블루보틀 1호점이 들어서면서 입지가 확고해집니다. 다만 그때까지도 성수라는 상권은 점으로 이뤄졌죠.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겁니다.

“예전엔 성수라고 하면, 그게 뚝섬역인지 성수역인지 서울숲 옆인지가 모호했어요. 도대체 그 뜬다는 성수가 어디인 건지, 말하는 사람마다 달랐죠. 그런 ‘점’들이 하나로 모이기 시작한 게 코로나 이후인 2021년쯤이고요. 지금은 연무장길이라는 ‘선’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오프라인 상점의 암흑기였던 코로나 팬데믹에 성수라는 상권은 오히려 도약기를 맞았다는 점이 흥미로운데요. 그 중심엔 이게 있습니다. 팝업스토어.

팝업이 만든 넷플릭스 같은 공간

쿠팡이 이달 19~21일 성수동에 연 대형 뷰티 팝업스토어. 뉴시스
팝업의 성지. 성수를 일컫는 말이죠. 역시나 인터뷰를 진행한 4월 19일에도 연무장길 곳곳에서 크고 작은 팝업스토어가 열렸는데요. 진로 소주, 농심 짜파게티, 샤넬, 쿠팡처럼 건물 하나를 통째로 빌려 운영하는 팝업도 많았습니다. 평일 낮인데도 대기줄이 꽤 길더군요. 성수에선 이런 팝업스토어가 일주일에 40~60개씩 열린다고 합니다.

브랜드는 왜 오프라인 팝업을 할까요. 아이러니하게도 온라인 쇼핑 비중이 너무 커진 게 그 배경입니다.

“이전부터 오프라인 상점이 죽을 거란 얘기는 많았어요. 그리고 코로나가 닥치면서 거의 모든 거래가 급격히 모바일로 다 넘어갔죠. 그럼 우려대로 오프라인이 사라졌느냐 하면 아니었어요. 이전엔 오프라인에서 쇼핑하고 온라인에서 마케팅했던 세상인데, 이게 완전히 뒤바뀝니다. 쇼핑은 온라인에서 하지만 온라인 마케팅은 한계가 있으니 마케팅은 오프라인으로 나오는 거예요. 오프라인에서 보고 느끼고 체험하는 게 훨씬 더 브랜드를 각인시키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죠. 무신사 같은 국내 최고의 온라인 플랫폼이 오프라인 매장을 내는 이유이기도 하죠.”
하이트진로가 성수동 연무장길에서 5월 6일까지 진행하는 소주 팝업스토어. 뉴시스
팝업스토어는 물건을 팔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철저히 마케팅을 위한 공간입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게 2020년 4~12월 성수 연무장길에서 열린 침대 브랜드 시몬스의 팝업스토어였죠. ‘침대 없는 팝업스토어’로 불리며 크게 화제가 됐는데요. 코로나 와중에도 6만명이나 찾았을 정도로 히트하면서 성수동이 MZ에 먹히는 팝업 명소임을 입증합니다. 이듬해 2021년 LG전자의 ‘금성오락실’ 팝업스토어도 큰 인기를 끌었고요. 급기야 2022년 5월 이 브랜드가 팝업스토어를 내면서 성수는 명실공히 팝업의 성지가 됐죠. 바로 디올입니다.
“명품브랜드는 MZ세대를 만나고자 하는 니즈가 강해요. 백화점의 VIP 고객은 계속 품고 가야 하지만, 사실 코로나 때 명품브랜드가 성장한 배경엔 젊은층이 있거든요. 20대도 명품 스티커즈 신고, 티셔츠 입게 된 거죠. 명품브랜드 입장에선 백화점이 아닌 미래의 소비자들이 있는 재미있는 공간에서 젊은 브랜드로 만나야만 하는 건데요. 그게 바로 디올이 파격적으로 성수에 연 이유였고, 대성공을 거뒀죠.”
디올은 2022년 성수동 연무장길에 연 팝업스토어 ‘디올 성수’를 현재까지 운영 중이다. 앞에서 사진 찍으려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동아일보 촬영
팝업은 성수 상권의 정체성이 됐습니다. 팝업스토어들이 생겼다 사라지길 반복하면서 골목의 얼굴이 수시로 바뀌는데요. 올 때마다 바뀌는 곳, 지루할 틈이 없는 곳이 됐죠. 마치 추천 영상이 수시로 바뀌는 넷플릭스를 연상케 합니다.

“그게 바로 상권을 살리는 재밌는 포인트인데요. 만약 팝업이 없고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면 좀 지루해질 거예요. 그럼 오늘 왔으니 내일 또 와야 하는 게 아니고, 뻔한 거리가 될 텐데요. 성수는 팝업이 주 단위, 일 단위로 워낙 다양하게 열리다 보니까 오늘 놀다 갔지만 내일 또 새로운 게 있고, 다음 달 보면 또 완전히 달라져 있죠. 생동감 있고 더 재미있는 상권으로 유지될 수 있어요.”

그래서 ‘맥락이 없다’, ‘혼란스럽다’라는 반응도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종잡을 수 없는 다양성이 요즘 추세라는군요.

“실제 이 길을 걸으면서 ‘이런 브랜드도 있었어?’라는 질문들 많이 하세요. 아예 간판을 못 읽는, 우리가 몰랐던 온라인에만 있었던 브랜드들이 막 밖으로 뛰쳐나왔거든요. 도대체 여기가 옷 파는 곳인지, 가방을 파는 곳인지, 들어오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모르겠는 매장들이죠. 다양한 게 공존하는 그런 게 바로 지금 트렌드예요. 딱 ‘이거다’라는 답이 있는 게 아니라 각자 라이프스타일을 존중하고, 자기만의 재밋거리를 찾아다니는 거죠.”

팝업스토어는 성수동 부동산 시장을 확 바꿔놨습니다. 아예 팝업 대관만 전문으로 하는 공간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죠. 이날도 여기저기서 팝업 대관용 건물이 공사 중인 게 보였는데요. 팝업은 짧게 공간을 빌리기 때문에 임대차계약이 아닌 사용대차계약을 맺습니다. 이 때문에 상가임대차보호법(1년에 임대료 최대 5% 인상) 적용도 받지 않고, 임대료를 마음대로 올릴 수 있습니다. “철저하게 수요 공급으로 움직이는” 시장입니다. 최근 성수의 대형 팝업용 공간은 임대료가 하루 1000만원이 넘기도 합니다. 참고로 10여 년 전 평당 3000만원 정도였던 이 지역 땅값은 최근엔 2억~2억5000만원에 달한다는군요.

힙스터 떠나면 성수의 미래는?

평일 낮 성수동 연무장길의 모습. 오래된 수제화, 피혁 매장과 트렌디한 가게가 섞여 있다. 건물 2~3층 외벽을 모두 광고로 채운 건물도 많다. 동아일보 촬영
평일 낮에도 몰려든 20대 젊은이들, 팝업스토어에 들어가려 줄 서있는 인파, 거기에 외국인 관광객 무리까지. 누가 뭐래도 성수는 지금 제일 핫한 상권입니다. 그래서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연 성수는 언제까지 이렇게 핫할까요. 앞으로 더 뜰까요, 아니면 이제 질까요.

“저희끼리도 엄청나게 토론하고요. 마케팅 업계에서도 화두입니다. 지금까진 너무 좋은데, 성수가 더 갈 거냐 말 거냐, 과연 6개월 뒤에 성수에서 팝업을 해도 되느냐 아니냐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죠. 그런데 성수만큼 (팝업의) 파급효과가 나타날 수 있는 곳이 있느냐면, 아직은 없는 게 맞습니다. 따라서 좀 더 갈 거고요. 또 팝업이 진짜 마케팅의 큰 축이 됐기 때문에 ‘팝업을 이제 안 할 거야’라는 브랜드도 없죠.”

팝업 말고도 성수의 강력한 무기가 있습니다. 바로 오피스입니다. 성수동의 오피스 공실률은 0%. 그만큼 수요가 넘쳐나서 곳곳에 오피스 빌딩 올라가고 있는데요. 이미 이곳에 자리잡은 무신사 외에도 젠틀몬스터 본사가 곧 준공예정입니다.

특히 리테일 상권 중심인 연무장길 주변에 대형 오피스 빌딩이 잇달아 들어서는데요. 북쪽으로 불과 160m 간격을 두고 나란히 있는 성수일로6길엔 최신식 오피스빌딩 ‘팩토리얼 성수’가 두 달 전 준공했고요. 또 연무장길 남쪽으로 약 280m 떨어진 옛 이마트 본점 자리엔 크래프톤이 대규모로 사옥을 짓고 있습니다. 연무장길을 중심으로 남쪽과 북쪽 블럭이 모두 오피스로 채워지는 중이죠.
연무장길 바로 옆엔 오피스 빌딩이 즐비하다. 사진은 이지스자산운용이 개발해 지난 2월 준공한 10층짜리 건물인 팩토리얼 성수. 동아일보 촬영
“넥타이 맨 아저씨들보다는 백팩 메고 지하철 타고 출근하는 젊은층이 많은 기업들이 성수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어요. 무신사·젠틀몬스터·크래프톤이 대표적인데요. 카테고리는 다르지만 ‘젊음’이란 느낌을 공통적으로 가진 기업이죠.”

대형 오피스 빌딩들이 지어진다는 건 상주인구가 엄청나게 늘어난다는 뜻입니다. 그것도 주로 소비여력이 큰 젊은 직장인들이죠. 상권의 성장을 따지는 가장 큰 기준은 결국 매출인데요. 그런 면에서 성수 상권의 미래는 긍정적입니다. 설사 유행이 지나고 힙스터가 떠난다 해도, 직장인들이 밀려올 테니까요.

“상권이 힙한 것과 상권이 성장·성숙하는 건 다른 개념입니다. 힙스터들 입장에선 옛날엔 ‘나만 아는’ 성수였는데, 지금은 모두가 찾아오는 성수가 됐어요. ‘특별함이 사라진 것 같다’고 느낄 거고요. 아마 힙하다는 느낌은 결국 줄어들 수밖엔 없을 거예요. 만약 성수에 오피스가 들어서지 않는다면, 힙한 이미지가 사라지는 순간 갑자기 공실만 남아버릴 수 있겠죠. 하지만 성수는 계속 오피스가 등장하고 상주인구가 늘고 있어요. 상권의 성숙도가 올라가서 안정화되면 매출과 찾는 소비자는 오히려 더 늘어날 수도 있죠. 그 균형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성수의 방향성이 달라질 겁니다.” By.딥다이브

솔직히 취재 전까지는 연무장길이 어디 붙어있는지도 몰랐습니다. 길거리에 사람이 너무 많아 놀랐고, 계속 상권이 확장 중이라는 데 또 놀랐습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

-낡은 공장으로 가득했던 성수동이 뜨기 시작한 지 10여 년. ‘한국의 브루클린’으로 불렸던 성수는 코로나를 계기로 급부상합니다. 온라인 쇼핑 비중이 확 커지면서 반대로 오프라인 마케팅에 대한 수요가 커졌기 때문입니다.

-상권은 식음료로 시작해 화장품 같은 소품을 거쳐, 패션 브랜드 순으로 단계를 거치며 성장합니다. 성수는 2022년 디올의 팝업스토어가 들어오면서 ‘팝업의 성지’이자 가장 핫한 상권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합니다.

-‘성수가 언제까지 핫할까’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 건 사실입니다. ‘힙함’은 분명히 언젠가는 줄어들 수밖에 없죠. 하지만 성수는 오피스타운이라는 믿을 구석이 있습니다. 힙스터는 떠나도 젊고 소비력 높은 상주인구가 빈 자리를 채울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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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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