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먹잇감이 될 수 있다 [새로 나온 책]

시사IN 편집국 2024. 4. 27.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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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기자들이 직접 선정한 이 주의 신간. 출판사 보도 자료에 의존하지 않고 기자들이 꽂힌 한 문장.

컬트

맥스 커틀러·케빈 콘리 지음, 박중서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

“내 느낌에는 그가 조만간 거물이 되려는 시도를 할 것만 같다.”

한국 사이비 종교의 민낯을 다룬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의 배경을 미국으로 옮겨온 책이다. 인생의 절반을 교도소에서 보낸 찰스 맨슨은 심리적 조작을 통해 자신을 따르게 된 ‘패밀리(추종자)’와 함께 살인·강도 등 각종 기행을 벌였다. 놀랍게도 이들의 강력한 결속력은 오직 맨슨의 말과 행동, 그릇된 믿음에서 자라났다. 마셜 허프 애플화이트는 신생 종교인 ‘천국문’을 만들었는데, 신도들은 전용 숙소에서 기거하며 가족·지위·돈 등 가진 것을 모두 주저하지 않고 내놓았다. 이 ‘집단 광기’가 외로움과 취약함을 숙주 삼아 몸집을 불려왔다는 사실을 짚은 대목은 누구나 컬트의 먹잇감이 될 수 있음을 상기시킨다.

 

사이렌과 비상구

오유신 지음, 이매진 펴냄

“폭력, 빈곤, 불안… 이 세계를 설명할 수 있는 키워드들은 모두 나하고 연결돼 있었다.”

원가족이 해체되고 학교에서는 폭력을 겪었다. 우울과 불안이 지속되고 일상은 빈곤했다. 교사가 된 저자는 묻는다. 이 아픔을 어떻게 더 나은 삶을 향한 자원으로 삼을 수 있는지. 그와 같고도 다른 ‘몸’들을 지닌 사람들을 찾아 나선 까닭이다. 성희롱 피해 교사부터 섭식장애가 있는 여성 청소년, 조현정동장애를 지닌 딸을 돌보는 엄마 등 학교의 다양한 얼굴을 우리 앞에 꺼내놓는다. 돌봄, 노동, 몸에 관해 저마다 고민해온 기록들이 이 사회의 사이렌과 비상구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교육이란 결국 학교에서 가르치는 일 이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픔이 길이 될 수 있을까’에 관한 하나의 대답이기도 하다.

 

워크는 좌파가 아니다

수전 니먼 지음, 홍기빈 옮김, 생각의힘 펴냄

“개인적인 것만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식이 되면서 희망을 포기하게 되었다.”

미국에선 주류 운동권 집단으로 성장한 ‘워크(woke)’를 한국어로 번역하면 ‘깨어 있기’쯤이 될 것이다. ‘정치적 올바름(PC주의)’ 운동이 이에 해당된다. 서방국가들에선 워크가 ‘좌파’의 대명사로 인식되고 있다. 도덕철학자인 저자는, 워크가 주변으로 밀려난 피억압자들을 위한 분노에서 시작되었지만 어느새 “트라우마의 숲”에 빠져 피해자의 자리를 선점하려고 투쟁하는 분열과 고립화의 ‘부족주의’에 빠져버린 사실을 혹독하게 비판한다. 특히 저자는 워크가 좌파나 리버럴의 핵심 철학인 보편주의와 진보의 가능성까지 부정하는 것으로 치달았기 때문에 ‘좌파’와 한데 묶여서는 안 된다고 역설한다. 지구 곳곳에서 발흥하는 극우 포퓰리즘에 맞서려면 분열적 부족주의가 아니라 위협받는 모든 이들이 동맹체를 이룰 수 있는 이념과 사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스티프트

수전 팔루디 지음, 손희정 옮김, arte 펴냄

“왜 트럼프 신봉자들은 본인들의 물질적 이득에 반하는 정책을 추구하는 후보를 지지하는가?”

2016년 트럼프와 힐러리가 맞붙은 미국 대선을 두고 ‘성별 전쟁’ 선거라는 헤드라인이 줄곧 나왔다. 그러나 저자는 “성별 간에 벌어진 전투라기보다는 한 성별 안에서 벌어진 전투”였다고 짚는다. 이 모든 것이 다 사기이고 배신(Stiffed)임이 명백해졌을 때, 왜 젊은 남성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가? 책은 이 질문에서 시작한다. 〈백래시〉 저자이자 페미니스트 저널리스트 수전 팔루디는 6년간 미국 전역을 순회하며 ‘화가 난 남자들’을 인터뷰했다. 왜 남성들은 ‘남자다움’이라는 족쇄로 자신들을 옭아매는 국가와 문화에 저항하지 않을까?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무려 1144쪽에 이르는 방대한 양이다. 혼란한 지금 시대를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기록이 나왔다.

 

아무튼, 데모

정보라 지음, 위고 펴냄

“사계절 필수 준비물은 물, 깔개, 보조배터리, 여행용 휴지다.”

소설을 쓰고 동유럽권 문학작품들도 번역하는 정보라 작가가 쓰고 번역하는 와중에도 (어쩌면 가장) 열심히 하는 것 중 하나는 데모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를 위한 오체투지에 참여하고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오체투지에도 동참했다.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행진에 참가했고, 세월호 농성장과 전장연 지하철 선전전에도 함께했다. 왜 데모인가 물으면, 그의 박사논문 주제가 유토피아였다는 점에 힌트가 있다. ‘나와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과 함께 이상향의 목적지를 추구하는 과정’이 유토피아이며 내가 죽어도 동지들이 남아 뜻을 같이하는 사람을 만날 테고, 그렇게 하는 한 영원히 이상향을 추구할 수 있다. 데모를 위한 실용 팁도 실로 구체적인, 작가는 오늘도 ‘투쟁’이다.

 

안녕 선생님

소향 외 지음, 생각학교 펴냄

“선생님과 학생의 행복은 결코 분리되어 있지 않다.”

선생님을 소재로 한 문학 앤솔러지로, 저자 네 명 중 두 명이 현직 교사다. 한 교사의 죽음에서 소설은 시작된다. 불행한 사건 앞에 학교폭력 담당 변호사, 동료 교사, 학부모, 학생, 사이버 레커의 서로 다른 시각이 드러난다. 한 명의 죽음이 하나의 사실로 설명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소설에는 각자의 사정에 골몰한 채 타인의 사정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현재 교실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구성원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학교에서 어떻게 교사와 학생들이 소진되는지 체감할 수 있다.

시사IN 편집국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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