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이했던 철인의 삶…겨울에 ‘터진 입’ 이젠 단속! [ESC]

정인선 기자 2024. 4. 2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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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인의 탄생 음주·음식 절제
식단 관리로 체지방·혈당 정상화
첫 대회 뒤 간식 즐기니 다시 악화
정직한 몸…6월 대회 앞두고 각성
겨울 동안 불어난 체중과 체지방을 줄이기 위해 친구들과 메신저 단체 대화방에서 ‘식단 인증’을 하며 함께 식단을 관리했다.

“운동과 음주의 조화를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요?” 질문을 하면서도 부끄러웠다. 근력운동을 위해 다니는 체육관 ‘파워존 에이치제이(HJ)’의 최현진 관장의 대답은 알쏭달쏭했다. “아직 간절히 원하는 게 없나 보죠.”

지인들이 “술 더 오래 마시려고 운동하는 거 아니냐“고 물을 만큼 나는 술을 좋아한다.(차마 ‘좋아했다’라고 과거형으로는 못 쓰겠다) 여럿이 왁자지껄 모여 마시는 술도, 집에서 조용히 마시는 ‘혼술’도 가리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팔이나 다리엔 살이 잘 붙지 않는 체질이지만 늘 배만은 예외였다. 체성분 분석을 하면 다른 신체 부위는 근육량 평균 이상, 체지방량 평균 이하였지만, 복부지방률과 내장지방레벨은 언제나 ‘표준 이상’을 가리켰다. 그런데도 최 관장 말처럼 “간절히 원하는 게” 없었기 때문일까. 술만 줄이면 해결될 문제라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오랜 음주 습관을 쉽게 끊어낼 수 없었다.

운동 많이 하는데 ‘대사증후군 위험’

덜컥 위기감이 든 건 30대에 접어든 직후였다. 건강검진에서 공복혈당수치가 정상 범위(70~99㎎/㎗)를 웃도는 100㎎/㎗가 나왔다. “당뇨 위험 수위 직전”이라는 의사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몇 주 뒤 지역 보건소에서 전화가 왔다. “대사증후군 특별 관리 대상으로 분류됐으니 6개월에 한 번씩 와서 검사를 받으라”는 거였다. 이 때부터 겁이 나기 시작했다. 운동을 이렇게 많이 하는데 대사증후군 위험군이라니!

지난해 이맘때 저마다 이유로 건강 적신호를 느낀 친구들이 메신저 단체 대화방에 모여 ‘식단 인증’을 하자고 했다. 나도 마침 첫 철인3종경기를 앞두고 몸을 좀 가볍게 만들면 좋겠다고 느끼던 때였다. 각자 일주일 단위의 목표를 정하고, 입에 들어가는 모든 음식을 사진으로 찍어 올리기로 했다. 나는 ‘일주일에 음주 2회 및 덩어리고기 3회 이하 섭취하기, 과자 먹지 않기, 아침에 빵 대신 구운 계란 2개와 사과 1개 먹기’ 등을 목표로 정해 두 달간 실천에 옮겼다.

맥주 대신 탄산수나 무알코올 맥주를, 식빵 대신 구운 계란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운동이 끝나고는 닭가슴살이나 소고기 대신 1인가구가 먹기 좋게 손질해 소분해 파는 생선구이나 두부부침, 템페(콩을 발효해 만드는 인도네시아 음식) 등을 번갈아가며 먹어 단백질을 보충했다. 육류 섭취를 줄이는 건 뜻밖에 어렵지 않았지만, 술의 유혹엔 역시나 종종 넘어가고 말았다. 둘째 달에는 ‘업무 미팅에서 마시는 술은 예외’라고 슬그머니 단서를 달았다.

먹는 양은 줄이지 않고 종류만 바꿨을 뿐인데 효과가 바로 나타났다. 두 달이 지나자 체중은 이전과 그대로인데 골격근량이 1㎏ 늘고 체지방이 2㎏ 줄어 있었다. 1년째 100∼106㎎/㎗를 맴돌던 공복혈당도 정상 범주인 98㎎/㎗로 내려왔다. 복부지방률과 내장지방레벨 또한 성인이 된 뒤 처음으로 ‘표준’ 범위에 들어왔다. 전에 없던 복근이 빼꼼 모습을 드러내는 등 ‘눈바디’(눈과 체성분 분석기 브랜드 ‘인바디’를 합친 단어)로도 변화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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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아는 맛, 잠시 미래로

트레드밀에서 달리기 훈련을 하고 있는 모습.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첫 대회를 무사히 치르고 나자 한동안 대회가 열리지 않는 겨울이 금세 찾아왔다. 연말 휴가지에서 그동안 참았던 술과 디저트를 마음껏 즐겼다.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연초에 수영, 평롤러, 트레드밀 달리기 등 실내 훈련량을 늘렸다. 휴가지에서 터진 식욕이 늘어난 훈련량을 만나자 걷잡을 수 없게 커졌다.

원래도 소화가 빠른 편에 기초대사량이 높아 삼시세끼를 먹어야 하는 아침 8시, 낮 12시, 저녁 6시가 되면 배꼽시계가 정확히 울리곤 했는데, 이젠 오후 3시, 밤 9시 등 간식 시간에도 배꼽시계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 때마다 손에 잡히는 과자와 빵 등을 입에 가져갔다. 본격적인 훈련에 돌입해야 하는 봄이 오면 마시지 못할 거란 생각에 술도 열심히 마셨다.

이번에도 효과(?)는 금방 나타났다. 겨울이 다 지나갈 때쯤 불안한 마음을 안고 보건소를 찾았더니, 겨우 정상 범위로 내려 놨던 공복혈당이 처음 관리를 시작한 때보다 훨씬 높은 112㎎/㎗까지 치솟아 있었다.(검사 바로 전날 마신 맥주의 영향이 컸을 수 있다) 체중과 체지방량도 한참 식단을 관리하던 여름에 비해 각각 2㎏, 4㎏씩 늘어 있었다.

한 해 운동 성과는 ‘비시즌 농사’에 달려 있다는 말은 운동 뿐 아니라 식단에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지난해 각자 목표한 바를 이루고 뿔뿔이 흩어졌던 ‘식단방’ 동지들을 재소환했다. 서로를 감시하는 눈이 사라지자 다들 이전의 습관으로 슬금슬금 돌아가 있었다.

훈련에 필요한 에너지는 충분히 채우되 불필요한 체지방을 덜어내는 걸 목표로 ‘일주일에 음주 1회 및 육류 5회 이하 섭취하기, 과자 먹지 않기’를 실천했다. 특히 새벽에 수영과 달리기 연속 훈련을 한 날이면 낮 시간 ‘입터짐’을 막으려 아침을 더욱 신경써서 먹었다. 원래 먹던 구운 계란 2개와 사과 1개에 호밀빵이나 고구마 등 탄수화물을 추가했다. 점심은 일반식을 양껏 먹고, 저녁 운동 전후에는 질 좋은 탄수화물과 단백질을 각각 챙겨 먹었다.

하프 아이언맨 대회(수영 1.9㎞, 자전거 90.1㎞, 달리기 21.1㎞)를 두 달 가량 앞둔 4월 말 현재, 다행히 지난해 ‘최적’이라 느낀 수치를 되찾았다. 트레드밀을 달릴 때의 느낌도 다시 가벼워졌다.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몸이 이렇게까지 정직하게 변한다는 사실이 한편으로 뿌듯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야속했다. 마음만 고쳐 먹으면 몸 상태를 바꿀 수 있다는 건 결국 ‘잘 되면 내 덕, 못 되면 내 탓’이란 뜻이니까.

퇴근 뒤 냉장고 속 맥주에 손이 가려 할 때면 스스로 묻는다. “아직 간절히 원하는 게 없나 보지?” 처음 질문을 들었을 때는 알쏭달쏭했지만 이젠 아니다. 두 달 뒤 만족스러운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하며 웃을지, 심각한 표정으로 여기저기서 핑계를 찾고 있을지는 오늘의 내가 정한다. 누군가 말했듯 “먹어 봐야 어차피 아는 맛”, 미래의 내게로 잠시 미뤄 두자.

글·사진 정인선 기자 ren@hani.co.kr

한겨레신문 스포츠팀 기자. 일하지 않는 시간엔 요가와 달리기, 수영, 사이클, 케틀벨 등 각종 운동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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