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은의 이슈 뒤에는] 4. 날벼락 같았던 경복궁 담벼락 낙서테러…상처 지웠다

신정은 2024. 4. 27.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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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2차 보존 처리 작업 마무리
문화재 훼손 범죄 매년 잇따라 발생
“교육 기회 확대와 강력 처벌 등 방지책 마련돼야”

시간이 멈추지 않는 한 우리 모두는 크고 작은 ‘이슈’를 겪으며, 혹은 견뎌내며 살아간다. 감동하고 환호하거나 때론 분노하는 다양한 이슈거리가 넘쳐나는 세상 속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어떤 시각으로 이를 바라보고 있을까. 곳곳 발생하는 이슈들의 속 사정을 들어보고, 단편적으로 바라봤을 땐 보이지 않던 측면의 시각으로 다시금 조명하고자 한다.
 

4. 날벼락 같았던 경복궁 담벼락 낙서테러…상처 지웠다


지난 연말 경복궁 담장 일부가 ‘낙서 테러’로 뒤덮여 국민의 공분을 일으킨 사건이 발생한지 몇달만에 2차 보존 처리 작업이 마무리되면서 아픈 흔적을 씻어낸 경복궁 담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앞서 지난해 12월 경복궁은 스프레이 낙서로 두 차례 훼손됐다. 10대 남녀 두 명이 1차 훼손을 저지른 지 하루 만에, 바로 다음 날 모방범에 의해 2차 훼손이 이어졌다.

1차 낙서범인 임 모(18) 군은 미성년자인 점이 고려돼 구속영장이 기각됐으나, 2차 낙서범 설 모(29) 씨는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한편 경복궁 담장 낙서의 2차 보존 처리 작업은 이달부터 재개됐다. 이로써 경복궁에 남아있던 낙서의 미세한 흔적까지도 사라졌다. 훼손된 문화재가 입은 피해를 완전히 복구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문화재 훼손은 범죄이며 처벌받아 마땅하고, 나아가 역사와 문화를 훼손하는 일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경복궁의 담장 복구를 위한 전문가들의 섬세한 노력을 살펴보고 문화재 훼손 범죄의 현황·예방책을 짚어본다.

▲ 지난 1월 4일 오전 낙서 제거 1차 작업을 마친 서울 종로구 고궁박물관 인근 담장을 따라 시민들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 아래는 지난해 12월 16일 국립고궁박물관 방향 경복궁 서쪽 담벼락에 붉은색과 푸른색 스프레이로 쓰인 낙서. 연합뉴스 자료사진

◇ 경복국 담장 2차 복원 마무리…보존 처리제로 쓰이는 낯선 이름의 ‘젤란검’

지난 18일 경복궁에 새겨진 스프레이 낙서 2차 보존 처리 작업이 시작됐다.

문화재청과 국립고궁박물관에 따르면, 지난 18~19일 이틀간 경복궁 영추문 일대에서 복구 작업을 실시한 데 이어 22~24일에는 국립고궁박물관 쪽문 주변을 중심으로 총 12~13m에 이르는 구간의 작업을 마쳤다. 지난해 이뤄진 1차 작업 당시 스프레이가 담장의 석재 내부로 침투하지 않도록 오염 물질을 제거했다면, 2차 작업으로 미세하게 남아 있는 세부 흔적을 지워냈다. 육안으로 보이는 흔적까지 최대한 없애는 과정이다.

지난 작업에는 당시 동절기라는 점과 궁장 위치별 석재의 상태를 고려해 레이저 세척, 미세 블라스팅, 모터 툴을 사용해 긴급 보존처리 했지만 이번 작업은 아세톤과 젤란검을 이용한 화학적 방법을 적용했다.

생소한 이름의 ‘젤란검’은 국내에서 흔히 사용되는 물질은 아니다. 유럽에서 오염물을 제거할 때 사용하는 젤 타입의 클리닝 세척제인데, 문화유산 보존처리제로 쓰이기도 한다.
 

▲ 지난 4월 18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 영추문에서 지난해 말 스프레이 낙서로 훼손된 궁궐 담장에 2차 보존 처리 작업이 진행되는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정소영 국립고궁박물관 유물과학과장에게 젤란검을 사용한 복구 과정에 대해 질문했다.

그는 “이번 작업은 기존 방식과 다르게 접근하기 위해 젤란검을 선택했다”며 “기성품으로 제작된 젤 타입의 젤란검을 구입할 수도 있지만, 파우더 형태의 젤란검을 구매해 농도를 직접 맞춰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궁장의 표면 사이즈가 제각각이다 보니, 그에 맞게 젤란검을 손수 만들어 사용한 것이다.

“젤란검을 제작하는 과정은 도토리 가루로 ‘도토리묵’을 만드는 모습과 흡사하다. 파우더 형태의 젤란검을 물에 균일하게 섞어서 녹인 후, 전자레인지와 냉장고에 넣고 빼는 것을 반복하며 굳도록 한다. 만드는 과정이 복잡하고 어렵진 않다. 다만 어느 정도의 젤란검을 첨가해야 벽에 부착시키기에 적당한지 두께를 조절하느라 이것저것 테스트를 실시하는 예비 실험 절차를 거쳤다. 1차 작업 이후에도 시간이 지나면서 생기는 변화에 대비하기 위해 매주 화요일마다 사진 촬영을 하며 상태를 기록하기도 했다.”

 

▲ 긴급 보존 처리 후 모니터링하는 직원들의 모습. 문화재청 제공

 

이렇게 2차 작업을 실행할 준비를 모두 마쳤다. 이후 훼손된 경복궁 벽면 표면에 아세톤을 도포한 후, 젤란검을 붓으로 부착하는 형태로 작업이 진행된다. 정 과장은 “젤란검이 생각보다 접착력이 강하지 않아서 벽면에 바로 붙진 않았다”며 “모양에 맞춰서 쉽게 부착하기 위해 붓질을 하고 손으로 톡톡 두드리는 과정을 거쳤다”고 부연했다. 이번 작업은 1차 작업에 비해 구간이 넓지 않아 국립고궁박물관 유물과학과 소속 전문가 14명이 투입됐다.

정 과장은 “1차 작업은 하루 종일 현장에 남아있었지만, 이번엔 아세톤을 도포하고 붙인 젤란검이 건조될 때까지 시간을 가져야 했지만 1차 때보다는 짧게 오전 중 작업이 끝났다”고 전했다.

하지만 소요 시간은 적었지만 보존 과정에서 드는 복구 비용은 역시 만만치 않았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재료비, 물품 임대료, 인건비 등 최소 1억원 이상이 소요된 것으로 추산된다. 정확한 비용은 감정 평가 전문기관을 거쳐 최종 산출, 이후 훼손자에게 손해배상 비용을 청구할 예정이다.

 

▲ 경복궁 담장을 스프레이로 낙서한 1차 피의자 10대 임모군(왼쪽)과 2차로 낙서한 20대 설모씨의 영장실질심사가 지난해 12월 22일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렸다. 사진의 왼쪽은 임군이 영장심사에 출석하는 모습. 오른쪽은 설씨가 영장심사를 마치고 법정을 나서는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 알게 모르게 최근 12년 간 문화재 훼손 범죄 33건…낙서 테러만 7건

지난해 6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탈리아 수도 이탈리아 수도 로마의 2000년 된 유적 콜로세움 벽면에 낙서를 해 전세계인의 공분을 산 사건이 있었다. 이처럼 문화유적 훼손은 곳곳에서 벌어진다.

문화재청 자료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23년까지 발생한 우리나라 문화재 훼손 범죄 현황은 총 33건이다. 이 가운데 낙서 테러는 7건으로 파악됐다.

경복궁 낙서를 비롯해 △2011년 울산 천전리 각석 △2014년 합천 해인사 △2014년 서울 한양도성 △2015년 충남 아산 당간지주 △2017년 울산 언양읍성 △2018년 부산 금정산성에서 낙서로 인한 훼손이 발생했다.

 

▲ 지난해 12월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 쪽문 경복궁 담벼락 앞에서 문화재청 관계자들이 스프레이로 쓴 낙서 제거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올해 1월에도 서울 종로구 성균관 담장이 낙서로 훼손된 사실이 지난달 뒤늦게 알려졌다. 종로구 등에 따르면 성균관 문묘 쪽 외곽 담장엔 알파벳 ‘A’와 ‘P’, ‘버리지 마세요’ 등 문구가 붉은색과 검은색 스프레이로 쓰여있었다. 해당 낙서 행위는 발견되기 수개월 전에 이뤄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문화재보호법은 ‘누구든지 지정 문화유산에 글씨 또는 그림 등을 쓰거나 그리거나 새기는 행위 등을 하여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를 어길 경우 원상 복구를 명하거나 관련 비용을 청구할 수 있으며, 지정문화재의 현상을 변경하거나 그 보존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행위를 한 자는 5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그럼에도 문화재 훼손 시도는 매년 끊이지 않고 발생해 우려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문화재 보존의 소중함을 다루는 초기 교육과 강력한 처벌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정소영 과장은 “문화재 훼손 행위를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하고 ‘이것쯤이야 괜찮겠지’라고 생각함으로써 관련 범죄가 반복되는 듯 하다”며 “지속적으로 문화 유산을 누리기 위해선 문화재 보존의 중요성을 다루는 교육이 더욱 다양하게 이뤄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행정적인 예방책으로 CCTV 설치나 순찰 인력을 강화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관련된 콘텐츠나 교육의 기회를 늘리는 방안에 대해 꾸준히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양학부 교수도 “CCTV를 많이 설치하는 것은 단기적으로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어릴 때부터 교육을 강화해 인식을 변화시키는 것이 장기적인 예방법”이라며 “또한 이번 기회에 솜방망이 처벌이 아닌 강력한 처벌로 국민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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