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와인] ‘술로 찍은 갱스터 영화’ 킹스 오브 프로히비션 샤도네이

유진우 기자 2024. 4. 27.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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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벌어진 사건 가운데 술에 관한 역사상 가장 큰 일을 꼽아보라면 십중팔구는 금주법(禁酒法·the prohibition law)을 꼽는다.

미국은 1776년 영국에서 건너온 청교도들이 중심이 돼 세운 나라다. 청교도들은 성경을 써 있는 그대로 믿었다. 독실한 신앙과 금욕주의, 영적(靈的) 각성이 청교도를 상징했다. 그래도 술에는 관대했다. 미국 건국 초기 개척 과정에서 고단한 하루를 버티려면 술은 필수였다.

그러나 미국 건국 50여년이 지난 1820년대부터 술이 설 자리가 좁아졌다. 기독교 단체와 여성 단체를 중심으로 음주가 가정폭력을 일으키고, 하층 노동자 계급 빈곤과 근무 태만을 부른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건국 85년이 지난 1861년에 접어들자 당시 33개였던 연방 주 정부 가운데 유난히 보수적인 13개 주에서 음주를 금지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금주 운동은 한층 강도가 세졌다.

술 만드는 데 쓰이는 곡물을 아껴야 한다며 ‘전쟁 중인데 술이 웬말이냐’는 인식이 퍼졌다. 당시 유럽에서 건너와 미국에 자리를 잡았던 독일 이민자들이 양조업으로 부를 쌓는 것도 견제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었다.

결국 1917년 미국 전역에서 술 제조, 판매·운반, 유통·수출입까지 모두 금지하는 수정헌법 18조가 국회를 통과했다. 1920년에는 마침내 금주법이 발효됐다. 기독교와 여성 단체가 금주 운동을 벌인 지 꼭 100년 만이었다.

이후 이야기는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음주를 법으로 전면 금지하자, 미국인들은 밀주(密酒)를 담가 팔았다. 몰래 담근 술을 파는 불법 조직들은 거액을 거둬 들였다. 전설적인 마피아 두목 알 카포네가 이때 세력을 불렸다.

알 카포네는 미국 중부 시카고를 근거로 활동하면서 1927년 당시 주류 밀매로만 1억달러(약 1300억원)에 달하는 수입을 올렸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현재 2조2000억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미국 사법당국은 그에게 ‘공공의 적(Public Enemy)’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산발적인 범죄 집단이었던 다른 갱단 역시 밀매 수익을 기반 삼아 기업형 범죄조직으로 탈바꿈했다.

럭키 루치아노는 알 카포네와 쌍벽을 이룬 마피아 두목이다. 루치아노는 혈통이나 인종을 초월한 기업형 범죄조직을 미국에서 최초로 창설한 인물이다. 이탈리아계 마피아를 중심으로 아일랜드계 같은 거물 범죄조직을 포섭해 전미범죄연합체(National Crime Syndicate)를 만들었다. 그는 시칠리아 출신으로 미국 동부 뉴욕에서 활동했다. 이 때문에 알 카포네보다 인지도는 떨어져도, 위세는 더 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중부를 알 카포네가, 동부를 루치아노가 장악했다면 서부에는 벅시 시글이 있었다. 그는 사막이었던 미국 서부 라스베이거스를 도박과 환락의 도시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본명은 벤자민이다. 하지만 못된 짓을 너무 많이 해 ‘벌레 같다’는 뜻으로 벅시(Bugsy)라고 불렸다.

그래픽=손민균

호주 와인 생산자 칼라브리아 패밀리 와인 그룹은 2021년 이 금주법 시대 이야기를 술로 풀어냈다. 이들은 ‘금주법 시대의 왕들(킹스 오브 프로히비션·Kings of Prohibition)’이라는 이름으로 여섯가지 와인을 선보였다.

각 와인에는 사용한 포도 품종별 풍미에 맞춰 알 카포네, 럭키 루치아노, 벅시 시글, 빌 맥코이, 로이 옴스테드 같은 당대 유명 마피아 두목 이름을 인용했다. 여러 포도를 섞어 만든 가장 대중적인 레드 블렌드 와인에는 알 카포네, 호주를 상징하는 제일 진하고 남성적인 시라즈 품종 와인에는 럭키 루치아노를 새기는 식이다.

와인 병도 금주법 시대에 맞게 새로 디자인했다. 지금 사용하는 와인 병은 대체로 병목과 병 몸통 부분이 길쭉하다. 반면 금주법 시대 사용했던 술병은 이보다 병목과 병 몸통이 짧고 통통했다. 20세기 초반 널리 쓰였던 원통형 우유병을 따라한 형태다. 마피아들은 우유병을 닮은 이 병에 우유 대신 밀주를 넣어 주요도시에 유통했다.

앤드류 칼라브리아 칼라브리아 패밀리 와인 그룹 이사는 “병 디자인과 영화 같은 메시지로 금주법 시대 스타일이 소비자 눈에 즉시 들어오도록 했다”며 “독특한 접근 방식이 젊은 와인 애호가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길 바랬다”고 말했다.

이들 와인은 단순히 영화 같은 작법 요소를 와인에 더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호주에서 거의 키우지 않는 포도 품종을 사용하거나, 포도를 수확하는 방식에 변화를 줘 신선한 맛을 강조했다.

벅시 시글 이름을 달고 나온 템프라니요 품종 와인은 주로 스페인을 포함한 이베리아 반도 일대에서 선호하는 품종이다. 호주에서는 키우기 시작한 지 채 30여년이 되지 않았다. ‘해상 밀매업자’ 빌 맥코이 이름으로 나온 말벡은 아르헨티나가 전 세계 생산량 90% 이상을 차지하는 포도다.

킹스 오브 프로히비션 샤도네이는 칼라브리아 패밀리 와인 그룹이 내놓은 유일한 화이트 와인이다.

남성 마피아 두목을 내세운 다른 품종과 달리, 유일하게 여성 밀주 유통업자를 표방했다. 이 와인 밑 부분에 이름을 남긴 스텔라 벨라마운트는 미국 네바다주에서 이름 난 밀주업자다. 기록에 따르면 그녀가 취급하던 불법 주류 양이 유달리 많아 미국 법무장관과 주류 규제당국, 지방검사가 따로 그녀를 잡기 위한 전담 수사반을 꾸렸다.

이 와인은 마치 밀주를 담그듯, 호주 남동부 지역에서 밤에 수확한 샤르도네 품종 포도만 사용해 만든다. 극적 효과를 높이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신선한 포도를 얻기 위한 양조 기법이다. 밤에 포도를 수확하면 포도 알맹이가 품은 향이 더 잘 유지되는 경향이 있다. 수확한 포도가 햇빛을 맞아 산화하는 불상사도 줄일 수 있다.

킹스 오브 프로히비션 샤도네이는 올해 대한민국 주류대상에서 신대륙 화이트 와인 가운데 가장 좋은 와인에 수여하는 베스트 오브 2024를 수상했다. 수입사는 현대백화점 계열 와인수입사 비노에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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