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송희일의 견문발검] 슈퍼마켓의 올리브 오일에 자물쇠가 채워졌다

이송희일 영화감독 2024. 4. 27.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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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이송희일 영화감독]

▲ 스페인 슈퍼마켓 오일 코너. 사진=이송희일 영화감독 제공

스페인 슈퍼마켓의 올리브 오일에 자물쇠가 채워졌다. 절도를 막기 위해서다. 최근 사람들이 슈퍼마켓에서 가장 많이 훔치는 게 올리브 오일이다. 올리브 농장에서도 절도 행각이 벌어져 단속에 나섰다. 세계에서 올리브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나라인데, 자물쇠를 채워서까지 올리브 절도를 막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기후위기로 올리브 가격이 4년 동안 3배가 껑충 뛰었기 때문이다. 유럽의 과수원이라는 별명이 무색하게 근래 들어 스페인은 유럽에서 가장 가문 지역이 됐다.

초콜릿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 따르면, 최근 2년 동안 코코아 가격이 136%나 급등했다. 3월26일에는 톤당 가격이 사상 처음 만 달러를 돌파했다. 전 세계 코코아의 2/3을 생산하는 가나와 코트디부아르가 기후 격변에 시달리는 까닭이다. 그런가 하면 최근 전 세계 설탕 가격이 55%나 급등하면서 초콜릿 가격 상승에 영향을 미쳤다. 설탕 수출국인 인도와 태국의 심각한 가뭄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지구 기온이 상승하면 식량 생산량은 감소한다. 지난 해부터 기후 임계점이라는 '1.5도'의 선이 붕괴되는 실정이다. 말 그대로 기후혼돈이다. 홍수와 가뭄이 농작물을 파괴하고, 해양 변화가 어업을 어렵게 하며, 해수면 상승과 염분 증가로 담수가 악화되고, 기후 패턴의 변화로 병충해가 극성을 피우고 있다. 미주개발은행(IADB)을 비롯한 다수의 기관들이 지적한 것처럼, 2050년까지 커피 재배지의 50%가 재배 부적합 지역으로 바뀌게 되는 것은 물론 시간이 지날수록 옥수수, 쌀, 밀, 대두와 같은 필수 곡물의 생산량도 부침을 거듭하며 식량위기가 가속될 것이다. 기후위기는 곧 식량위기다.

윤석열 정부가 말하는 것처럼 식량위기는 결코 '초국가적 위기'가 아니다. 환금 작물 수출에 의존하는 남반구가 북반구에 비해 훨씬 더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다. 그리고 한국처럼 식량 자급률이 바닥인 나라들이 심각한 영향을 받는다. 곡물자급률이 18.5%(2022년 기준)로 OECD 국가 중 최하위인 게 한국이다. 1인당 연간 36kg의 밀을 소비하지만, 밀 자급률은 채 1%가 되지 않는다. 식량 인플레이션의 파고에 더 출렁거릴 수밖에 없고, 그 충격의 여파는 고스란히 서민과 저소득층에게 돌아가게 된다.

사과값 파동과 소위 '대파 총선'의 배경엔 기후위기와 식량위기가 자리했다. 겨울과 봄철의 강우량 증가와 일조량 부족으로 사과는 물론, 양파와 감자에 이르기까지 농촌에서는 진즉에 비명이 터져나온 터였다. 하지만 야당은 대파를 그저 선거용 밈으로 이용하는 데 주력했고, 정부와 여당은 보조금을 유통 자본에 살포하며 대파값을 내리는 촌극을 연출했을 뿐이다. 정치가 사라진 자리에 그저 대파만 요란하게 날아다닌 선거였다.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월27일 충북 제천시 동문시장에 방문했다. 사진=더불어민주당 홈페이지

여야를 막론하고 대부분의 한국 정치인과 관료들은 식량을 수입하면 된다는 단순한 방정식에 사로잡혀 있다. 사과값 사태에서 보듯 대다수 언론 역시 '사과를 수입하면 된다'는 시장지상주의의 구호를 주구장창 외칠 따름이다. 자유무역 체제와 세계화가 한국의 농촌과 식량 시스템을 붕괴시켰는데, 식량위기라는 거대한 쓰나미 앞에서 이들이 내놓는 전략이란 게 고작 '수입하면 된다'는 초라한 자기 변명이다. 기후는 여권도 국경도 없지만 식량은 국경이 존재한다. 기후의 시간이 지날수록 보호 무역을 통해 국경 장벽이 올라가리라는 건 바보가 아닌 이상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실제로도 식량 보호 무역이 가일층 강화되는 추세다.

그 와중에 윤석열 정부는 '농촌의 재구조화'를 추진 중이다. 농촌을 7개의 특화지구로 격자화하는 것인데 농촌마을보호지구, 산업지구, 농촌융복합산업지구 등 기능별로 공간을 분리하고 산업시설의 집적화를 유도하겠다는 것이 목표다. 말은 그럴싸하지만 농민의 목소리는 배제한 채 난개발을 부추기고 규제 완화로 농촌의 민영화를 촉진하겠다는 이야기다. 식량위기 대응은커녕 농민 소멸을 재촉하는 정책이다.

▲ 3월18일 윤석열 대통령이 농협하나로마트 양재점을 방문하여 물가 상황 점검했다. 사진=대통령실 홈페이지

해법은 명확하다. 우선은 온실가스를 재빨리 줄이는 것이고, 두 번째는 식량주권을 단초로 농촌을 재지역화하는 것이다. 기후위기에 대한 회복과 탄력을 위해서는 소농 중심의 농생태학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이번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도 150개국 이상이 사상 처음으로 '지속가능 농업'이 기후위기와 식량위기에 대한 해법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생태친화적인 농법과 소농에 대한 전폭적 지원으로 농촌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하는 것이 당면한 위기에 대한 정공 해법이다.

과연 정치인들과 관료들이 이걸 모를까? 이미 알고 있다. 단지 그게 돈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장주의적 세계관으로는 도착한 위기를 단 1인치도 헤쳐나갈 수 없다. 다음 선거에는 대파 말고 양파를 들고 또 설칠 텐가? 어리석음의 본질은 재발(再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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