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K리그 605경기 후 '은퇴 선언' 김영광 "제2의 인생, 이 길이 맞다고 생각했어요"

김형중 2024. 4. 27.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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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가 태동한지 40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스토리가 생성되었고 많은 이가 울고 울었습니다. 지금도 회자되고 있는 스토리의 중심으로 골닷컴이 찾아갑니다. 이번에는 22년 간 K리그 605경기를 뛰며 골문을 지켰던 김영광 전(前) 선수와 함께 추억보따리를 열었습니다.

[골닷컴] 김형중 기자 = K리그의 큰 별이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지난 1월 국가대표 출신 골키퍼 김영광이 22년 간의 프로 생활을 마치고 은퇴를 선언했다. 이제는 다양한 방송활동을 예고하며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는 그를 만났다.

지난달 서울 강남의 한 스튜디오에서 김영광을 마주했다. 은퇴를 발표하고 그 다음날부터 운동을 안 해도 되어서 너무 좋았다고 했지만, 피지컬은 여전했다. 그는 특유의 유머 감각을 발휘하며 지난날을 돌아보았다.

현재 근황은?
은퇴를 선언하고 방송유망주로서 최대한 열심히 하고 있다. 섭외되는 대로 나가고 있다. 일단 경험을 많이 해보는 게 중요한 것 같다. 30년 동안 한 축구 인생이 끝났다. 이제는 사회에 첫 발을 디딘 마음으로, 아무것도 아닌 백지 상태라는 마음으로 부딪혀보고 있다.

은퇴를 선언한 계기는?
사실 1년을 더 하자고 하는 팀이 4~5개 있었다. 항상 목표를 설정하고 축구를 했는데 마지막 목표가 (김)병지 형님의 최다 출전 기록(706경기)을 깨는 것이었다. 병지 형님도 그 기록을 깨라고 하셨다. 근데 계산을 해보니깐 3년을 모든 경기에 나가야 깰 수 있는 숫자였다. 1년만 더 하면 640경기 정도 되는데, 그게 의미가 있나 싶었다. 목표 의식이 떨어지다 보니, 팀에 들어 동계훈련을 갔을 때 과연 100% 최선을 다할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할 수는 있다. 설렁설렁 할 수 있었을 거다. 근데 그건 자기 자신을 속이는 거다. 100% 최선을 다하지 못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그만 하는 게 낫겠다 결정할 수 있었다.

후회는 없나?
후회는 없다. 그만 두기 직전까지 100%, 200%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가족들은 어떤 이야기를 해주었나?
그래도 좀 더 해보는 게 어떠냐고 했다. 하지만 나의 이런 마음을 이야기 하며 후회 없는 결정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라고 했던 팀들에 이제 막 경기를 나가려고 하는 좋아하는 후배들이 있었다. 굳이 그 자리에 가서 후배들의 원망의 대상이 되는 것도 원치 않았다. 그런 부분이 컸다. 그런 팀들을 제외하니 한 팀이 남았는데, '죄송합니다. 제가 최선을 다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며 정중히 거절했다.


김영광은 2002년 전남 드래곤즈에 입단했지만, 첫 시즌에는 단 한 차례도 기회를 받지 못했다. 당시 팀에는 박종문 골키퍼가 주전 자리를 꿰차고 있었다. 1년 동안 0경기 출전으로 시즌을 마감한 그는 새 시즌 더욱 이를 악물고 준비했다. 기회는 없었지만 언제 올지 모르는 기회를 위해 하루 4번(새벽-오전-오후-저녁)의 훈련을 매일 했다. 그러던 중 2003년 5월 데뷔전의 기회가 찾아왔다.

데뷔전까지 과정 기억나나?
당연히 기억난다. 밤에 잠을 자야 하는데 긴장되어서 전날 밤 베란다에서 줄넘기를 했다. 너무나 힘들게 온 기회여서 많이 떨렸다. 그땐 22세 룰도 없고 오로지 실력으로만 나갈 수 있었다. 처음에 경기를 못 나간 1년 반 동안 하루 4번 운동을 했는데, 기회가 안 오니 3번만 할까도 했다. 근데 밤에 자려고 누웠더니 너무 찝찝하더라. 그래서 이건 아니다 싶어 다시 나가서 운동했던 기억이 난다. 키가 작으니깐 다른 선수보다 빠르고 높게 점프해야 한다는 생각에 순발력과 점프 운동을 정말 많이 했다.

2006시즌을 마치고 울산으로 이적했다. 당시 이적료가 22억 원으로 파격적이었다. 이적료에 울산 외국인 선수 레안드롱이 전남으로 이적하는 것까지 포함된 거래였다. 울산 유니폼을 입은 김영광은 펄펄 날았고 2013년까지 231경기에 나설 수 있었다.

어떻게 이적하게 되었나?
당시 울산이 골키퍼를 많이 원했었다. 그리고 울산 수석 코치님이 청소년 대표 월반했을 때 지도해 주셨던 코치님이었다. 그리고 울산 골키퍼 코치님이 제 나이 때 청소년 대표팀 할 때 코치님이셨다. 다 좋게 봐주셔서 울산으로 갈 수 있었다.

이적료가 화제였는데?
사람들이 22억을 내가 받은 걸로 안다. 그건 이적료라 내가 받은 건 하나도 없다. 이적료가 워낙 셌기 때문에 연봉은 크게 안 올랐다. 잘 하면 인상된다는 조건이었는데, 가자마자 컵대회도 우승하고 잘 해서 나중에 많이 인상되었다.


2015년 그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2부 리그 서울 이랜드 FC로 전격 이적했다. 신생팀이었던 만큼 베테랑이 필요했던 서울 이랜드는 김영광 영입으로 뒷문 단속을 단단히 했다. 5년 간 187경기를 소화하며 팀의 구심점 역할을 해냈다. 이 기간 54번의 클린시트 경기를 치르기도 했다. 지난 3월 서울 이랜드 구단은 창단 10주년 행사로 김영광을 초청해 감사함을 전했다.

2020년 30대 후반에 접어든 김영광에게 손을 내민 구단은 성남이었다. 당시 성남의 김남일 감독은 최후방의 안정감을 위해 김영광을 선택했다. 김영광은 첫 시즌 24경기에 나서며 이에 보답했다.

성남 시절 김영광에게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다.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지만 당시로선 민망하기도 했던 일이었다. 2021년 9월 수원FC전에서 헛발질 때문에 내준 실점이었다.

그날 상황에 대해 이야기 한다면?
왼발 킥 폼이 원래 좋진 않은데, 그땐 제대로 폼 나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기가 막히게 볼이 떴다. 크게 헛발질 해서 끝나고 무릎에 얼음까지 댔다. 그때 수원종합운동장 보수공사 때문에 수원삼성과 수원FC가 모두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경기를 했다. 경기를 많이 하다 보니 잔디가 좋지 않았다. 팬들이 잔디 때문이라고 많이 해주셔서 위안은 됐다. 그런데 헛발질 하고 나서, 굴러가는 볼을 막아보겠다고 달려가서 골대 그물에 걸린 내 모습이 너무 처량해 보였다. 너무 창피했고, '그만 해야되나'라는 생각까지 했다(웃음).


이제 축구 선수 타이틀을 내려놓은 김영광은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 스포츠계 출신 방송인으로 '스포테이너'의 길을 가려 한다. 쉽진 않겠지만 재밌게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고 다방면에 관심이 많은 자신의 캐릭터를 활용해 보고자 정한 길이었다.

앞으로 계획은?
스포츠인으로서 삶을 살다가 은퇴 후 자리를 잡고 계신 분들이 많다. 강호동님, 서장훈님, (안)정환 형 등이 계신데 저도 그 길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분들의 장점을 잘 배우고 나아가려고 한다. 목표는 크게 잡아야 하지 않나? 나중에 그 선배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도록 열심히 해보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팬들께 한마디 부탁한다.
이제 축구선수를 그만 두고 사회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축구선수를 하는 동안 팬들께서 정말 많이 사랑해 주셨다. 팬들이 안 계시면 축구선수는 아무것도 아니다. 축구를 사랑하는 마음 변치 않으셨으면 좋겠다. 요즘 후배들이 많은 팬들 앞에서 경기하는 걸 보면 너무 뿌듯하다. K리그, 대표팀, 여자축구, 아마추어 축구 모두 많이 사랑해주시길 부탁 드린다.

*김영광 선수 인터뷰 풀영상은 '믹스트존K' 채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사진 = 골닷컴, 한국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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