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로 보는 세상] 자유와 해방을 향한 수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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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을 두 범주로 나눈다면 구상과 추상이다.
구상이 '스토리텔링'이라면, 추상은 '느낌'이다.
주로 자연을 기하학적 추상으로 그리며 자유를 노래한 유영국(1916~2002)이 일본 유학 시절(1940)에 그린 '작품'이라는 단순한 제목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목격한 군국주의 폭압과 자유의 상실을 수직선과 강렬한 원색으로 표현한 것으로 추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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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도광환 기자 = 미술을 두 범주로 나눈다면 구상과 추상이다. 구상이 '스토리텔링'이라면, 추상은 '느낌'이다. 구상이 '객관'이라면, 추상은 '주관'이다.
인상주의 화가들이 뿌린 씨앗이 추상으로 실현된 건 1910년 전후다. 바야흐로 더는 구상이 인간 본질을 드러낼 수 없다는 한계에 봉착했을 때 등장했다.
20세기 인류가 떠안은 한계는 '불안'이었다. 의식이건 무의식이건, 잠재된 내면의 불안을 극복하려 할 때 추상이 유영했다. 역사나 신화, 풍경에서 찾는 미적 가치가 화가들 내면을 달래줄 수 없었다.
표현주의 화가들처럼 인체를 뒤틀고 강렬한 색으로 붓질하기도 했지만, 더 멀리 다다른 지점은 형태와 이야기의 파괴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지나 미국은 현대미술 중심으로 부상했다. 유럽에 대한 열등감을 해소하려는 노력은 정치와 자본의 힘을 업고 '추상표현주의'를 달성하며 우뚝 섰다. 잭슨 폴록(1912~56), 윌럼 데 쿠닝(1904~97), 마크 로스코(1903~70), 바넷 뉴먼(1905~70) 등이다.
이들 중 로스코와 뉴먼이 추구한 '색면 추상'은 대상이 없는 회화의 세계다. 오로지 느낌만 존재한다. 로스코가 자기 작품을 45cm 앞에서 감상하라고 한 이유도 대상을 찾지 말라고 한 잠언이다.
뉴먼은 스스로 평론했다. '숭고는 지금'이라는 글에서 자기 작품에서 그동안 잃어버린 숭고미를 찾아보라고 강조했다. 평면 위에 그은 수직선에 질문과 해답을 뒀다.
1948년 작품인 '하나임-1'이다. 뉴먼은 이 선을 '지프(zip)'라고 불렀다. 길게 그은 수직선은 뚜렷하지 않은데, 마스킹 테이프를 사용한 덕에 물감이 테이프 사이로 일부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수직선은 점점 늘어난다. 1950~51년 작업한 '영웅적이고도 숭고한'에서는 가로 5m가 넘는 화폭에 다섯 개의 선이 붉은 화면을 분할하듯 그려져 있다. 명쾌한 선들이 아니기에 '경계', '잠식', '탈주', '증발', '주저' 등의 철학적 사유를 일깨운다.
사망한 해(1970)에 그린 '자정 블루'는 우울한 색과 오른쪽에 치우친 수직선에서 죽음에 대한 예견을 감지한다. 뉴먼의 '지프'들은 멈춰 있지 않다. 숭고를 지향한 그의 의지가 그렇고, 다소 흐느적거리는 선의 표현이 그렇고, 끝이 없을 거처럼 솟구치는 선의 폭발력이 그렇다.
우리 현대 회화에서 뉴먼의 수직선보다 앞서 그린 화가를 발견하곤 숨을 멈출 듯 놀랐다. 우연일까? 아래 작품이다.
주로 자연을 기하학적 추상으로 그리며 자유를 노래한 유영국(1916~2002)이 일본 유학 시절(1940)에 그린 '작품'이라는 단순한 제목이다.
그의 초기작이라고 볼 수 있는데, 중앙의 노랑과 오른쪽 빨강 수직선이 거대한 힘을 품은 듯 뻗어 있다. 이 시기 몇몇 작품에서 비슷한 시도를 한 듯하다.
뉴먼 그림이 등장하기 전이니, 그의 영향을 받은 건 아니다.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목격한 군국주의 폭압과 자유의 상실을 수직선과 강렬한 원색으로 표현한 것으로 추측한다. 당시 그가 참여한 화파도 '자유 미술가협회'였다.
이후 펼친 세계에선 삼각형을 기조로 원색의 자연을 다채롭게 변주했지만, 그 시초를 수직선에서 감지하고 싶다.
뉴먼과 유영국이 그린 수직선은 영적 종교성도 떠올리게 한다. 종교의 목적도 결국 자유다. 그건 예술의 지향점이기도 한, '울림'이다. '자유와 해방을 향하는 출구를 가리키는 나침반'이다.
doh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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