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과 싸울 수 없다” 전경의 고백…‘열린 군대’의 씨앗이 되다

조일준 기자 2024. 4. 27.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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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커버스토리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10주년
1991년 명지대생 강경대, 전경 폭력에 숨져
‘양심선언’ 박석진, 23년 뒤 그날 ‘열군’ 출범
“채 상병 사망·수사 외압, 군대문화 병폐가 원인”
2012년 대선 개입이 단체 창립 계기
“중립성 무너진 군, 감시할 필요 절감”
2024 세계 군축행동의 날인 지난 22일 오전 박석진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상임활동가(뒷줄 오른쪽 둘째) 등 28개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뒤 평화를 염원하는 손팻말들을 들어 보이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10년 활동의 전체 맥락을 보여주는 식으로 구성해야죠.”

“스토리텔링을 잘 짜는 게 중요해요.”

“어떻게 일러스트를 할지가 관건일 것 같습니다.”

“그래픽이 너무 많으면 어수선해 보이진 않을까요?”

“많이 넣으면 좋을 것 같긴 한데, 리스트를 보고 검토하죠.”

지난 15일 저녁, 서울 성북구 삼선동의 작은 건물 3층.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이하 열군) 사무국에서 운영위원회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4월26일 저녁에 열릴 열군 10주년 후원의 밤 ‘꿈꿔온 10년, 열어갈 10년’(행사명)을 보여주는 프레젠테이션과 자료집부터, 초청장 발송, 행사장 세팅과 진행, 축하공연, 음식 준비까지 챙길 게 한둘이 아니었다. 운영위원 8명 중 열군 창립자인 박석진(55) 상임활동가를 뺀 7명은 20~30대 남녀 청년들이다. 열군의 정책과 활동은 운영위가 결정하고, 일상적인 실무는 박석진과 신재욱, 두 명의 상임활동가가 도맡다시피 한다. 열군은 “군사문화의 수직적 계급 구조와 무조건 상명하복 문화의 폐단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탄생한 만큼 단체 운영도 수평적 구조를 추구”(박석진)한다. 그는 관공서 업무 등 행정적 필요에 따른 ‘서류상 대표’일 뿐이다.

군사독재 정권 끝났지만…

열군이 2024년 4월26일로 창립 10돌을 맞았다. 한국 사회에서 몇 안 되는 군사 문제 전문 시민단체 중 하나다. 박 활동가는 “한국 사회에서 군대와 안보 문제는 성역화한 측면이 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한국전쟁과 분단은 북한을 항상 위협적 존재로 규정했고 그 과정에서 형성된 적대감과 힘에 의한 안보 논리가 많은 국민에게 내재화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의 박석진(오른쪽 맨 뒤)·신재욱(왼쪽 맨 앞) 상근활동가를 포함한 운영위원들이 지난 15일 서울 성북구 사무실에서 회의 중 창립 10주년을 뜻하는 열 손가락을 펴보이고 있다. 조일준 선임기자

그가 열군을 창립한 직접적 계기는 2012년 대선 때 국군 사이버사령부가 댓글 부대를 운영하면서 노골적으로 정치에 개입한 사건이었다. “한국 사회의 민주화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계기였던 1987년 민주화 운동이 사실은 군사 정권과 싸운 거잖아요. 시민의 힘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되찾고 개정 헌법에 ‘군의 정치적 중립성’(5조 2항)을 명시했는데, 그것이 무너지고 있었어요. 시민사회가 군대를 감시할 필요성을 절감했고, 뜻이 맞는 분들이 함께했죠.” 그는 “감시와 비판이라는 도구를 사용해, 시민의 힘으로, 한국군이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인권과 민주주의, 평화를 수호하는 진정한 ‘국민의 군대’가 되도록 노력한다”고 열군의 목표와 활동을 소개했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1960~80년대 군사독재 정권의 폭압을 물리친 뒤에도 뿌리 깊은 군사 문화의 잔재와 권위주의 그림자가 사회 곳곳에 남아 있다. 지난해 여름 호우 실종 민간인들의 수색 작업에 투입됐다가 거센 물살에 휩쓸려 숨진 해병대 채 상병의 사망 사건을 두고 권력의 최고위층이 보여주는 무책임과 수사 외압 의혹은 최근의 일례일 뿐이다. 박 상임활동가는 해병대 채 상병 사망과 이후 벌어지고 있는 사태는 윤석열 정부의 불통과 권위주의적 속성, 군 지휘관의 입신양명 욕구, 그리고 지휘관의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기 힘든 군대 문화의 병폐가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의 로고. 시민사회(civilian)가 군대를 감시하는 눈을 형상화했다.

“윤석열 정부의 문제 중 하나는 굉장히 이데올로기적인 정권의 색채가 짙다는 겁니다. 그런 정권은 북한뿐 아니라 야당이나 시민사회와도 대립하는 속성이 강해요.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수사자료 회수 관여 의혹, 윤 대통령이 범죄 피의자인 그를 호주 대사로 보내버린 것도 그래요. 국민이 이 사건에 강하게 문제를 제기하는데, 수사를 받는 핵심 피의자를 딴 데로 보내버리면 문제가 없어지고 논란이 잦아들 거라고 판단한 거잖아요. 지금 우리 사회는 그런 식으로 꼼수를 써서 문제가 풀릴 만큼 낮은 수준이 아닌데 정치권력의 속성이 그런 짓을 하게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는 또 “군이 상명하복의 조직이라지만 정당한 명령이냐 아니냐가 복종 의무의 기준이 돼야 한다”며 “군인복무기본법(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에 ‘부당한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명시하고 양심선언자나 내부 고발자에 대한 보호의 실효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법·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20명 미만 후원자, 지금은 440여명

열군은 이제 10살이 됐지만, 박 활동가가 군대 감시 시민운동을 하게 된 배경은 그보다 훨씬 앞선 1991년 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앞서 1990년 10월 노태우 정부가 선포한 ‘범죄와의 전쟁’은 민주화 운동 세력을 겨냥한 ‘신(新)공안정국’으로 치달았다. 그에 맞선 시민사회의 저항도 학생과 노동자를 중심으로 격렬해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91년 4월26일, 명지대 1학년 강경대군이 전투경찰(전경)의 무차별 폭력으로 숨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박석진은 대학 1학년 재학 중 휴학하고 군에 입대했다가 전경으로 차출돼, 서울의 여러 대학과 거리에서 시위 진압의 최전선에 서야 했다. (▶관련기사= 강경대 죽음 뒤 “진정한 분노의 대상 알아야 한다” )

자괴감이 컸던 박석진 일경은 강경대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았다. 며칠간 깊은 고민에 빠졌다. 5월4일, 그는 연세대 학생회관에 있던 ‘고 강경대 열사 폭력 살인 규탄 및 공안통치 종식을 위한 범국민대책회의’를 찾아가 양심선언을 했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였지만 실정법으로는 ‘탈영 군인’이었다. 2년여 수배 생활 끝에 양심선언 동료 군경들과 청와대로 행진 중 체포돼 실형을 선고받았다. 복역한 뒤에는 잔여기간 복무까지 마쳐야 했다.

1991년 5월18일, 전경으로 복무중 양심선언을 하고 수배 중이던 박석진(당시 24살) 일경이 민주화 시위 중 전경의 폭력에 숨진 명지대 재학생의 장례식 당일 노제에서 추도사를 낭독하고 있다. 박석진 제공

그 뒤 박석진은 군대 문화를 바꾸는 시민운동에 힘을 쏟겠다고 결심했다. “힘들고 지칠 때면 경대를 많이 찾아갔어요, 광주 망월동에. 가서 술 한잔 따르고 저도 한잔 먹고. 경대 옆에서 밤을 새운 적도 몇번 있어요. 저는 ‘강경대 열사’라는 호칭보다 경대라고 부르는 게 편해요. 그를 직접 본 적은 없는데, 저 혼자 친해진 거예요.”

열군이 출범한 2014년 4월26일은 23년 전 대학생 강경대가 스러진 바로 그 날짜였다. 창립총회 발기인들은 “민주주의의 근간인 군의 정치적 중립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군대 내에서 발생하는 구조적 폭력과 시대착오적 통제에 반대하며, (…) 군사주권의 회복, 평화와 복지를 위한 군축을 위해 시민사회와 연대하겠다”고 밝혔다. 열군의 지난 10년은 그런 다짐과 선언을 실천해온 시간이었다. 시작은 열악했다. 그해 12월, 열군의 첫 총회 참석자는 20명이 채 되지 않았고, 한 해 후원금 총액은 180만원에도 못 미쳤다. “상근 활동가가 저 혼자였는데, 당연히 활동비 같은 것은 없었고, 격일로 밤샘 세차 일을 하거나 새벽에 어린이집 식자재 배달 등 일을 병행하며 활동을 이어갔죠.”

10년이 지난 지금 정기후원회원은 440여명으로 늘었다. 부정기적인 시민 후원금과 아름다운재단 등 민간단체의 프로젝트 지원금도 소중하게 쓰인다. 그래도 회원 수는 활동의 중요성에 비춰 턱없이 적고 살림살이는 늘 빠듯하다. 박 활동가는 “시민단체는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 정부 지원금은 전혀 받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신재욱 상임활동가는 지난 2월 성공회대 대학원에서 ‘군 민주화 운동가들의 정체화 과정 연구; 1987~1993 군인·전경 양심선언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열군은 시민들의 신청을 받으면 열리는 상설 강좌 3개를 비롯해 다양한 기획 강좌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우리 안의 군사주의, 마치 공기처럼 스며 있는’은 우리 사회가 오랜 군사정권을 거치면서 학교와 직장, 미디어 등에서 남성성, 수직적 인간관계 등 군사 문화가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는 현실을 돌아보고 참가자들이 자신의 경험과 의견을 나눈다.

지난 7일 전국역사교사모임 선생님들이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의 상설 프로그램 ‘전쟁기념관 다시보기’에 참여하고 있다.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누리집 갈무리

2016년부터는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 주목해 “노골적인 적대와 힘에 의한 안보의 논리가 촘촘하게 구성된 전시물”(박석진)들을 비판적으로 살펴보는 ‘전쟁기념관 다시 보기’도 정례화했다. 지난 7일에는 전국역사교사모임 선생님들이 참여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활동가로 일하는 허진선(30)씨가 열군 운영위원이 된 것도 2018년 이 프로그램에 참가한 뒤였다. “제가 민변의 미군문제연구위원회 간사여서 군사·안보·평화 이슈와 관련된 토론회나 행사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때 처음 전쟁기념관에 가보고 깜짝 놀랐어요. 국가가 규정하는 적절한 안보관이라고 할까, 국민은 그 틀 안에서 생각해야 된다는 일종의 프로파간다(선전)처럼 느껴지는 내용들이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된 거예요. 우리 안의 군사주의가 일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데 평소엔 느끼기 어렵다는 생각에 열군의 연속강좌를 들었어요.”

‘허락되지 않은 기억 온라인 전시관’은 앞서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은 2020년 열군이 기획과 운영을 주관하고 41개 시민단체가 공동주최한 사진전 ‘허락되지 않은 기억 RESTRICTED’을 일회성 전시에 그치지 않고 온라인 플랫폼으로 구현한 것이다. 전시 명칭이 ‘허락되지 않은 기억’인 것은 ‘허락된 기억’이 있다는 걸 전제로 한다. 국가가 한국전쟁의 기억을 통제하고 독점해왔다는 뜻이다. 사진전은 피난, 폭격, 파괴, 학살 등 국가가 ‘공식 기록물’ 기억에서 배제했던 주제들을 다뤘다. 전시물 대다수는 미군 사진부대가 찍은 선전용 사진인데, 목적에 위배되는 일부 사진들에는 ‘RESTRICTED’(접근 제한, 대외비)라는 도장이 찍혔다가 세월이 흘러 비밀이 해제되면서 그 문구를 삭제한다는 뜻의 중간줄이 그어졌다. 열군은 기억의 위계를 뒤집어 ‘금지를 금지한다’는 뜻으로 재해석했다.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가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펴낸 간행물과 자료집의 일부. 조일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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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관점에서 보는 국방 정책

열군은 상설강좌 말고도 군 수뇌부와 정치권력의 최상부에서 결정되는 국방·안보 정책의 문제점을 짚기위해 매년 하반기 ‘시민의 눈으로 군대를 보다’라는 제목의 연속 기획강좌를 열고 있다. 지난 1월에는 국방부가 2년마다 발표하는 국방백서의 최신판을 꼼꼼히 분석한 ‘2022 국방백서, 시민의 관점에서 다시보기―해설 및 분석’을 발간했다. 한국에서 시민단체가 국방백서를 분석한 보고서를 펴낸 것은 열군이 처음이다. 열군은 내년 초에 나올 ‘2024 국방백서’를 시민사회의 각계 전문가들과 함께 분석하고 ‘시민에 의한 국방정책 제안’을 정부에 전달한다는 구상도 갖고 있다.

열군은 또 2020년부터 2023년까지 한국전쟁 70년 기간을 맞아 한국전쟁의 상흔이 담긴 공간을 누구든 쉽게 찾아갈 수 있는 한국전쟁 다크 투어 가이드북 ‘허락되지 않은 기억을 찾아서’를 발간(2021년)하고, 이듬해부터는 이 책을 활용한 역사기행을 매년 진행하고 있다. 열군은 가이드북에 실린 장소들의 해설 영상을 담은 큐알(QR) 코드 모음집을 부록으로 함께 내고, 단체 누리집(인터넷 홈페이지)에는 접속 링크들을 올려놨다.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가 창립 10주년을 맞은 4월26일 서울 대학로 한예극장에서 연 후원의 밤 행사에서 제주 강정마을 평화합창단이 축하 공연을 하고 있다. 조일준 선임기자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가 창립 10주년을 맞은 4월26일 서울 대학로 한예극장에서 연 후원의 밤 행사에 참가한 시민들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조일준 선임기자

열군은 향후 10년의 비전으로 ‘역사에 열린, 시민에 열린, 평화에 열린 군대를 만들기 위한 활동’을 선언했다. 이런 지향은 올해 2월부터 운영위원으로 참여한 김선우씨와 백소현씨가 성공회대 재학 중이던 2021년 리포트 과제로 ‘시민단체 활동 참관 및 컨설팅 보고서’를 쓰면서 ‘열린 군대’의 미래지향적 의미를 설정하면 좋겠다고 한 제안이 밑거름됐다. 이후 열군 운영위원회에서 수차례 워크숍을 통해 구체적 내용을 가다듬고 올해 초 정기총회에서 채택됐다.

‘열린군대’의 새 비전은 이렇다. ‘역사에 열린’은 학살과 독재로 얼룩졌던 한국군의 과거를 성찰하며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책임을 다하는 것, ‘시민에 열린’은 안보·국방정책의 수립과 시행에 시민의 관점과 감시를 수용하는 것, ‘평화에 열린’은 적대에 기반한 군사적 수단이 아니라 대화·협력·군축 등 비군사적 수단을 수용하며 국가안보를 구실로 주민 생존권을 위협하지 않는 것. ‘꿈꿔온 10년, 열어갈 10년’을 맞은 열군이 ‘역사와 시민과 평화에 열린 군대’라는 목표를 향해 다시 운동화 끈을 조이고 있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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