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컷] 1960년대 서울 풍경
황규태(86)는 촬영한 필름을 태우거나 프린트한 사진의 일부만 확대해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사진가다. 사진의 일부만 따와 합성해서 새로운 작품으로 만드는 것이 포토샵이나 AI로 사진보정도 되는 오늘날엔 아무것도 아니지만 1960년대부터 이런 작업을 해왔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외국 사진 잡지들을 보면서 사진을 공부하던 시절 황규태는 잡지에서 우연히 본 제리 율스만(Jerry Uelsmann)의 초현실적인 사진에 충격을 받고 그때부터 합성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후에 그는 태양이나 고층 빌딩을 촬영한 필름을 태워 인화하거나 다른 사진에서 일부만 따와 새로운 이미지를 조합해서 몽타주 형식의 사진을 만들어 낸다. 남들이 뭐라 하든 개의치 않고 그는 사진이 합성된 것을 드러내기도 한다. 황 씨가 만든 합성 사진들은 새롭고 유쾌하고 재밌다.
또 이태리 감독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블로우업(Blow-up)’이라는 영화를 보고 아이디어를 따와 자신이 촬영한 사진을 확대해서 전혀 다른 이미지로 재해석하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창조했다. 영화에선 우연히 찍은 사진의 일부가 살인 현장이 된다는 설정이다. 블로우업은 풍선에 바람을 넣어 부풀리듯이 사진을 크게 확대하는 것을 뜻한다. 사진가는 영화 스토리를 그대로 따와 자신의 사진 스타일로 만들었다.
10여 년 전부터 사진가는 디지털 사진의 픽셀(pixel: 화소)까지도 확대해서 형체는 없고 픽셀의 알록달록한 원색을 조합했는데 이를 두고 그는 “놀이로 하는 것”이라 말했다. 그러나 얼마나 오랫동안 컴퓨터 앞에 앉아서 포토샵으로 놀았는지 허리 시술을 3번을 해서 현재는 복대를 차고 있다고 했다. 그만큼 구성적인 완성도를 위해 피나는 집중과 시도가 따랐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자유롭고 거침없는 창작 스타일이 정착되기 전에 황규태는 1960년대 우리나라 사진가들의 중심에 있던 현대사진연구회의 초창기 회원이었다. 이런 황규태의 다큐멘터리 사진들을 볼 수 있는 전시회가 서울 종로구 인사동 갤러리 인덱스에서 열리고 있다. 이름도 ‘비포 블로우업(Before Blow Up)’이라는 제목으로 ‘재해석한 1960년대’라는 부제로 책도 냈다.
‘봄, 홍대 부근’이라고 적힌 설명엔 숲길에 나물바구니를 든 수줍은 소녀의 웃는 모습이 있다. ‘물 긷는 여인’, ‘돌아다보는 여자’, ‘신문팔이 소년’, ‘뚝방길’ 이라는 제목의 사진들 모두 1960년대라고 적혀 있다. 국내에 본격적인 산업화가 시작되기 전의 모습들이 기록되어 있다. 사진가는 그 시절을 가난했지만 아름답고 당당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바라본 것이다. 전시는 5월 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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