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동생과 불륜으로 아기까지 낳았다”···한 문인의 이중적 사생활 [사색(史色)]
[사색-66]“이슬처럼 떨어지는 작은 잉크 한 방울이 수백만명을 사색으로 이끈다.”
‘문장의 힘’을 이토록 절묘하게 포착한 문인이 또 있을까요. 미문으로 가득한 작품으로 18세기 잉글랜드 최고의 스타로 떠오른 조지 고든 바이런 경입니다. 천재적인 문학 소양이 있던 데다가, 얼굴 또한 미남 중 미남. 이성으로부터 인기 폭발이었지요.
풍운아가 향한 곳은 독립전쟁 중인 그리스. 무슬림의 맹주 오스만 투르크와 힘겨운 전쟁을 벌인 그리스에 힘을 보태기 위해서였습니다.
천재적 문장가로 사람들을 울리고, 유부녀를 포함해 뭇 여성들과 성관계로 물의를 일으켰으며, 타국의 자유를 위해 총을 들다 산화한 인물. 오늘날 도덕적 잣대로 설명이 안되는 바이런 경 이야기를 전합니다. 지난 4월 19일이 그가 죽은 지 정확히 200년이 되던 날이었습니다.
바이런의 집안은 유구한 역사를 가진 귀족이었습니다. 1066년 정복왕 윌리엄과 함께 잉글랜드로 건너온 유서 깊은 가문이었지요. 으리으리한 저택에서 수많은 하인을 거느리며 살았을 것처럼 보이지만, 바이런의 집안은 이런 귀족들의 삶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집안 남자들이 하나같이 ‘사고뭉치’였기 때문이지요.
존은 개의치 않고 열렬히 구애하다가, 1778년 사랑의 도주에 성공합니다. 두 사람은 아이 셋을 낳았지만, 존은 아내를 거칠게 대하는 파렴치한이었습니다. 손찌검했고, 돈을 내놓으라고 윽박지르기도 했었지요. 셋째 아이를 낳은 이듬해, 그녀가 숨을 거둡니다.
외모가 수려하지 않지만 돈은 많았습니다. 존이 찾던 꿈의 이상형. 두 사람은 이내 결혼했습니다. 아이 하나를 낳았지요. ‘조지 고든 바이런’이었습니다. 아내 집안의 더 많은 재산을 차지하기 위해 아이의 이름에 이례적으로 ‘처가의 성’을 사용했습니다.
바이런은 어렸을 때부터 외로웠습니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데다가, 그에겐 신체장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른쪽 다리뼈가 안쪽으로 휜 안짱다리였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캐서린은 화가 날 때면 아들의 장애를 노골적으로 비하하기도 했었지요. ‘절름발이 꼬맹이’(a lame brat)는 그의 어머니가 그를 부르는 또 다른 호칭이었습니다. 바이런의 내면에 고독과 우울, 소외가 스며든 배경입니다.
어린이는 너무 순진해서 때론 어른보다 잔인합니다. 바이런이 만난 어린 친구들 모두가 그랬습니다. 그가 성치 않은 몸으로 수영, 크리켓 등 체육활동을 누구보다 열심히 한 배경도 여기에 있었지요. 멀쩡한 다리를 가진 녀석들을 이겨보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21살이 됐을 무렵, 1809년 바이런은 여행을 떠납니다(귀족은 원래 일하지 않는 법입니다). ‘그랜드 투어’였습니다. 유럽의 주요 도시를 돌면서 세상에 대한 인식을 확장하는 그랜드 투어가 귀족사회에서 유행했기 때문입니다.
아테네의 고대 유적지를 탐방하고, 자연을 즐기면서 그는 자신이 ‘고대 그리스인’이 되었다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스파르타의 유로타스 강에서 직접 수영하면서 스파르타 전사처럼 행동하기도 했었지요. 바이런 경에게 그리스 아테네로의 투어는 단순한 여행 이상의 의미가 있었던 것이지요.
문인의 여행은 때론 명작의 마중물이 됩니다. 바이런이 출시한 ‘차일드 해럴드의 순례’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바이런경이 그랜드투어 때 경험했던 것을 바탕으로 가상의 순례기를 시의 형식으로 쓴 것이지요.
고독하고, 반항적이며, 감정적 고뇌에 수시로 휩싸이는 주인공 해럴드에 모두가 빠져든 것이었지요. 그의 책 출간 이후로 그와 같은 주인공상을 ‘바이로닉 히어로’(바이런적인 영웅)라고 불렀을 정도입니다. 후대 문학가들도 깊이 있는 캐릭터에 영향을 받습니다.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주인공 히스클리프가 대표적입니다.
1812년 책을 출간한 해였습니다. 인기스타가 된 바이런이 사교 모임에 도착했을 때,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캐롤라인 램 부인. 그녀의 남편은 후에 총리에 오르는 유력 정치인 윌리엄 램이었습니다.
비극은 사랑의 끓는 점이 다른 데서 시작됩니다. 미지근한 바이런과 뜨거운 캐롤라인. 바이런이 그녀를 만나기 거부했을 때, 그녀가 사교모임에서 공개적인 자살 시도를 했을 정도였습니다. 런던 사교계는 수군거렸지요. “캐롤라인 부인이 불륜 행위를 하다가 미쳐버렸군.”
“우리 어디서 본 적 있지 않아요?”
그녀는 어딘지 모르게 바이런을 닮아 있었습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어거스타의 아버지가 ‘매드 잭’, 존 바이런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두 사람은 이복남매. 존이 첫 번째 결혼에서 낳았던 딸, 어거스타가 유부녀가 된 모습으로 이복동생인 바이런 앞에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그녀 마음의 빈자리를 이복동생 바이런이 채워줬지요. 바이런은 다른 여성과 결혼한 이후에도 어거스타를 만난 것으로 추정됩니다. 1814년 어거스타가 셋째 딸 엘리자베스를 낳았을 때, 런던 사교계는 “바이런의 아이”라고 수군댔지요. 근친상간이라는 대형 추문이었습니다.
바이런의 두 번째 그랜드 투어가 시작된 건 그때였습니다. 주변 사람으로부터 쏟아지는 손가락질을 ‘강심장’인 그조차도 견딜 수 없었지요.
추문을 못 견딘 아내도 이미 딸을 데리고 떠나버린 뒤였습니다(딸 에이다는 이후 엄마 밑에서 수학천재로 자라납니다. 암호화폐 에이다가 그녀의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첫 번째 목적지는 스위스. 그의 주치의가 함께 머리를 식히자고 제안한 곳이었습니다. 빌라 디오다티에 바이런과 다른 문학인들이 모여서 여러 밤을 보냈습니다. 때는 1816년. 인도네시아 화산 폭발로 화산재가 해를 가리면서 기온이 급감하고 비가 많이 오는 날이 잦아졌지요. ‘여름없는 해’라고 불린 그 시기였습니다.
민간전설에서 돈 후안은 자유분방하고 능동적으로 여성을 꾀는 바람둥이지만, 바이런의 작품에서 돈 후안은 여성에 의해 유혹당하는 순진한 남자로 그려집니다. 마치 바이런 자신의 스캔들이 모두 여성에 의해 강요당했다는 듯이.
이탈리아 제노아에서 거주하던 1823년의 이야기입니다. 그리스로부터 편지가 도착합니다. 그리스 독립전쟁에 참전해 달라는 제안. 바이런은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재건은 그의 오랜 화두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바이런은 물질적, 정신적으로 그리스의 독립을 지원합니다. 잉글랜드에 있는 자산을 팔아 그리스를 도울 생각이었지요. 2만 파운드에 달하는 거금이었습니다. 감동한 그리스인들이 바이런과 함께 총을 들기로 결심합니다. 30명의 장교, 200명의 병사가 모여 ‘바이런 여단’이 결성되지요. 수는 적었지만 기세가 대단한 부대였습니다.
바이런의 그리스 독립 열정은 그렇게 꺼져갔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00년 전인 1824년 4월 19일, 그의 나이 고작 36살이었습니다.
바이런의 영웅적 행동에 감동한 유럽이 그리스 독립을 돕기로 결정합니다. 그리스 혁명을 지지하는 여론이 폭발했고, 러시아·프랑스·영국 등이 군사적 지원을 시작했지요. 죽은 바이런이 만든 기적이었습니다.
그가 남긴 메시지가 여전히 우리 내면과 공명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는 선과 악이 너무 이상하게 혼합되어 있어서 나를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다.”
ㅇ영국의 위대한 시인 중 하나인 바이런은 유려한 문장과 뛰어난 미모로 사교계의 주목을 받았다.
ㅇ성에 방종했던 그는 이복동생과 불륜 스캔들로 조국을 떠나야 했다.
ㅇ이후 바이런은 그리스 독립 전쟁에 참가했다. 고대 그리스를 이상향으로 삼아서였다.
ㅇ그리스에서 영국의 시인 바이런을 추앙하는 이유다. 세기의 바람둥이, 위대한 독립운동가가 공존하는 다면적 인물이었다.
<참고문헌>
ㅇ박재영, 궁지에 몰린 바이런:돈·결혼·그리고 문학적 명성, 19세기 영어권 문학 18권 2호, 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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