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주의자'를 자처하는 트럼프 'MAGA' 운동의 흑막 [PADO]

김수빈 에디팅 디렉터 2024. 4. 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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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트럼프의 등장 이후 미국 정치의 양극화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공화당의 퇴락입니다. 링컨과 시어도어 루스벨트, 아이젠하워, 트루먼의 정당이었던 공화당은 이제 공공연히 선거 음모론을 거론하고 미국의 우크라이나 지원을 앞장서서 가로막는 고립주의의 정당이 돼 버렸습니다. 미국이 갈 길을 택하는 것은 미국 유권자의 몫이겠지만 공화당의 이러한 변화가 세계 속에서 미국의 지위를 떨어뜨리고 있음은 분명합니다. 그 주된 원인은 공화당을 주변부에서부터 조금씩 잠식하다가 이제 공화당 주류를 위협하고 있는 극우파의 득세인데 이를 단순히 트럼프 개인의 영향만으로 치부하면 안 됩니다. 스티브 배넌은 MAGA 운동의 '흑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인물로, 레닌, 에릭 호퍼, 크리스토퍼 래쉬의 통찰을 빌려 미국이라는 국가의 체계를 무너뜨려고 합니다. 아직까지 미국 대선의 향방은 예측하기가 어렵고, 설사 트럼프가 당선된다 할지라도 이미 많은 스캔들을 일으켰던 배넌이 다시 중용되진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심지어 바이든이 재선에 성공한다 할지라도 배넌은 미국 민주주의의 손꼽히는 위험요소로 남을 것입니다. 정치운동의 새로운 장을 연 인물로서도 배넌을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사 전문은 PADO 웹사이트(pado.kr)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사진=Jabin Botsford/The Washington Post

검은 철조망의 장막이 미국 국회의사당 구역의 밝은 대리석 기둥 주위를 휘감았다. 4미터 높이의 장벽 위에는 면도날형 철조망이 덮여 있고, 방탄복과 소총을 든 전투복 차림의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다.

이는 의회가 트럼프의 선거 패배를 공식적으로 인증하려는 걸 막기 위해 일군의 트럼프 지지자들이 의회를 점거하는 폭동을 일으킨 사건이 벌어진 후, 의회를 지키고자 급조된 것이었다.

인근 타운하우스 중 한 곳의 지하실에서 스티븐 K 배넌은 곧 방송을 시작할 참이었다.

자신의 팟캐스트 스튜디오에 앉은 배넌은 평소처럼 잠이 부족하고 카페인을 과다 섭취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날 아침, 2021년 2월 첫 번째 토요일에는 그의 매섭고 작은 눈이 흥분으로 반짝였다. 그는 자신의 긴 회색빛 머리칼을 뒤로 쓸어 넘기는 두꺼운 검은색 헤드폰을 착용했는데 머리칼 끝이 올리브색 야상의 견장에 스칠 정도였다.

백악관 전략가라는 직함을 갖고 있다가 팟캐스트 진행자가 된 것이 추락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배넌에게는 본연의 자리를 찾은 것에 더 가까웠다. 그는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 그에게 쉽게 어울리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바로 엄청난 온라인 팔로워를 거느린 외부의 선동가다.

이 타운하우스 지하실은 지난 몇 년 간 브라이트바트뉴스(Breitbart News)의 본부였다. 이 매체는 반동적인 우익 내셔널리즘--근래에는 온라인 세대를 위해 '대안우파'(alt-right)로 리브랜딩되었다--을 대변하는 매체로 부상하고 있었다.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워싱턴 정가는 면도를 안 해 수염이 수북한 목에 셔츠 여러 겹을 입고 등장한 배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배넌은 이 타운하우스를 "브라이트바트 대사관"이라고 부르며 그 이국적인 분위기를 즐겼다.

2013년 11월, 이 타운하우스에서 열린 책 출판 기념회에서 배넌은 "나는 레닌주의자"라고 선언했었다.

스티브 배넌. /사진=Bill O'Leary/The Washington Post


"무슨 뜻이에요?" 인근에 위치한 보수 싱크탱크 소속의 역사학자 로널드 라도시가 충격을 받아 물었다. 라도시는 레닌이 인류의 고통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너무나 잘 알았다.

레닌의 개념 중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그가 1902년 논문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제안한 '혁명정당'이었다. 혁명정당은 경쟁이나 능력이 아니라 이념에 대한 충성심을 기반으로 사회를 조직하기 위한 제도였다.

"레닌은 국가를 파괴하길 원했죠. 제 목표도 그렇습니다." 배넌이 답했다. "나는 모든 것을 무너뜨리고 오늘날의 모든 기득권을 파괴하고 싶어요."

배넌의 이분법적 세계관은 어릴 때부터 시작되었다. 버지니아주 리치먼드에 있는 가톨릭 군사학교에서 그는 1492년 스페인 재정복을 기독교 서구 세계와 이슬람 세계 사이의 계속되는 문명 충돌의 전환점으로 배웠다.

성인이 된 그는 훈족의 왕 아틸라와 위대한 군사 작전에 관한 책을 탐독했다. 그는 역사, 특히 역사적 주기(cycle)의 개념에 집착했는데, 이는 시간이 미국인들이 보통 배우는 것처럼 선형적으로 진보하는 게 아니라 고대 전통의 관점처럼 뚜렷한 단계로 반복하는 패턴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었다.

배넌은 특히 역사학자 닐 하우와 윌리엄 스트로스의 1997년 책 '제4의 전환The Fourth Turning'에 나오는 버전의 주기론을 좋아했는데, 이 책은 미국 역사를 고점, 각성, 해체, 위기의 20~25년 길이의 주기로 정리했다. 이 책은 전 세계와 미국에서 내셔널리즘과 권위주의가 부상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배넌은 단순히 이 예언을 공부하거나 지켜보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예언을 직접 실행하는 사람이자 다음 시대를 건설하는 사람이 되고자 했다.

그래서 트럼프가 2015년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하기 위해 황금색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것을 보면서 그가 처음 한 생각은 "저건 히틀러야!"였다. 이는 나치의 프로파간다 영화에서처럼 권력의 미학을 본능적으로 이해하는 사람을 의미했다.

그는 트럼프에게서 자신이 조장하고 있는 사람들의 불안감을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미국인의 불만과 욕망을 스스로에게 투영할 수 있는 인물을 보았다.

(계속)

PADO 웹사이트(https://www.pado.kr)에서 해당 기사의 전문을 읽을 수 있습니다. 국제시사·문예 매거진 PADO는 통찰과 깊이가 담긴 롱리드(long read) 스토리와 문예 작품으로 우리 사회의 창조적 기풍을 자극하고, 급변하는 세상의 조망을 돕는 작은 선물이 되고자 합니다.

김수빈 에디팅 디렉터 subin.ki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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