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의 세계 일주로 '지구 구형론'을 입증한 탐험가 [역사&오늘]

김정한 기자 2024. 4. 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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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1년 4월 27일, 포르투갈 태상의 스페인 탐험가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사망했다.

당시 포르투갈이 인도에서 향신료를 가져오는 것을 부러워한 스페인의 카를로스 1세가 서쪽에서 향신료 무역로를 개척해보자는 마젤란에게 모험을 걸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마젤란은 필리핀 막탄섬에서 스페인 국왕의 명령을 듣기를 거부하는 토착민들과 충돌해 싸우던 중 전사했다.

마젤란은 목숨을 잃었지만, 그의 함대는 항해를 계속 이어가 1522년 9월 스페인에 귀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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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7일, 스페인 탐험가 마젤란 사망
페르디난드 마젤란(출처: Unknown author, 초상화(1550-1625),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521년 4월 27일, 포르투갈 태상의 스페인 탐험가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사망했다. 그는 세계 최초로 세계 일주에 성공한 유럽인이자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증명한 인물이었다.

1517년 마젤란은 서쪽 항로를 통해 동인도 제도에 도달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아직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몰랐던 당시로는 획기적이면서도 목숨을 건 계획이었다. 당시 포르투갈이 인도에서 향신료를 가져오는 것을 부러워한 스페인의 카를로스 1세가 서쪽에서 향신료 무역로를 개척해보자는 마젤란에게 모험을 걸기로 결정했다.

마젤란은 1519년 9월 함선 5척과 270여 명의 선원들로 구성된 함대를 이끌고 스페인을 출발했다. 항해는 쉽지 않았다. 뒤늦게 행선지를 알게 된 선원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배 한 척은 암초에 좌초했으며, 한 척은 스페인으로 돌아가버렸다.

우여곡절 끝에 함대는 남미 최남단의 곶 '케이프 혼'(Cape Horn)을 돌파하고 험난한 해협을 지나 넓고 잔잔한 바다에 진입했다. 이것이 '태평양'(太平洋)의 명칭의 유래가 됐다. 또한 그들이 지나온 해협은 '마젤란 해협'으로 명명됐다.

함대는 더 서쪽으로 향해 태평양을 횡단하는 데 성공했고, 필리핀 제도에 도착해 토착민들과 교류하고 스페인의 영토로 선포했다. 하지만 마젤란은 필리핀 막탄섬에서 스페인 국왕의 명령을 듣기를 거부하는 토착민들과 충돌해 싸우던 중 전사했다.

마젤란은 목숨을 잃었지만, 그의 함대는 항해를 계속 이어가 1522년 9월 스페인에 귀환했다. 무사히 돌아온 배는 '빅토리아호' 하나였고, 생존자는 선원 18명과 도중에 태우고 온 인디오 3명 등 21명뿐이었다.

마젤란의 탐험은 유럽인들에게 새로운 세계에 대한 지식을 제공하고, 해양 무역로를 개척하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그의 탐험은 유럽 열강들의 식민지 확장을 위한 발판이 됐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토착민의 삶과 문화가 파괴됐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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