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술과 과학]④ 1700종서 선택된 효모 6종…맛있는 술의 비밀

제주=이종현 기자 2024. 4. 27.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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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막걸리 포함 전통주 대부분 수입산·제빵용 효모로 만들어
국세청·환경부, 10년에 걸쳐 양조용 토종효모 균주 발굴
우리 술 다양화 위해선 지역별 효모 발굴 필요
현장 연구자들 “적극적인 지원 중요해”
우연히 어느 양조장 대표를 만났는데, 대뜸 효모 키우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냐고 묻더군요. 그걸 제대로 하는 사람이 없어서 다 수입해서 쓰고 있다고요. 절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말씀드렸죠. 저는 미생물대사공학을 전공했는데 미생물의 대사경로를 바꿔서 새로운 걸 만드는 일이 어려운 건 아니었습니다. 의학용 미생물 사업을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 이야기를 나누고 일단 양조용 미생물부터 시작해보자고 결심을 하고 창업에 나섰습니다.
김도형 바이오크래프트 대표

바이오크래프트는 효모 전문 연구기업을 표방하고 있다. 효모 전문 연구기업이라는 수식어 자체가 국내에 유일무이하다. 김도형 바이오크래프트 대표를 비롯해 4명의 교수가 공동창업한 회사로 13명의 직원 대부분이 생물학이나 발효공학, 양조 관련 전문인력이다.

미생물학을 전공한 연구자들이 양조용 효모 전문 기업을 만든 건 당연한 수순이다. 효모는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미생물이지만, 효모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과학적인 지식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국내 유일의 효모 전문 연구기업인 바이오크래프트는 제주도에 연구소, 파주에 생산시설을 두고 양조용 효모를 생산하고 있다. 바이오크래프트가 효모를 생산하는 발효기 모습./바이오크래프트

효모는 술이나 빵, 된장 같은 발효식품을 만들 때 사용되는 미생물이다. 꽃의 꿀샘이나 과일의 표면처럼 당분이 풍부한 곳이나 전통 누룩에 많이 있다. 효모의 기원은 기원전 4000년 고대 바빌로니아 시대까지 거슬러 갈 만큼 인류와 친숙한 존재다.

효모는 술을 만드는 과정에서 다양한 역할을 한다. 탄수화물을 분해해서 얻은 당분이나 과실에 함유한 당분을 이용해 에탄올을 만드는 게 효모다. 김도형 대표는 “효모를 이용하면 알코올 도수를 월등히 높이는 게 가능하다”며 “누룩만 사용했을 때는 알코올 도수가 14도가 최고라면 효모는 18도까지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누룩만 사용했을 때는 많은 수의 효모가 있지 않아서 같은 기간 발효를 해도 알코올 도수가 낮은 반면 좋은 효모를 발효에 추가하면 더 빠르게 알코올 도수를 높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특히 누룩에는 나쁜 향을 내는 효모가 있을 수 있는데 좋은 효모를 선별해서 사용하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알코올 도수가 높아지면 그만큼 생산량을 높이는 게 가능하기 때문에 효모의 존재가 주류업계에서는 선물과도 같다.

또 효모는 알코올 발효 과정에서 다양한 향기를 내준다. 알코올이 발효할 때 나오는 퓨젤 오일이나 에스터류, 알데하이드류, 유기산류가 어우러져서 우리가 흔히 꽃향이나 바나나향, 사과향이라고 지칭하는 술의 향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과정도 효모 없이는 불가능하다.

효모가 달콤한 과일향을 내는 데에는 흥미로운 이유가 있다. 2014년 국제 학술지 셀 리포츠(Cell Reports)에 흥미로운 논문이 실렸다. 술을 만들 때 효모를 넣으면 다양한 과일향이 난다. 술을 빚을 때 효모의 과일향을 이용하는 건 당연한 일이 됐지만, 정작 왜 효모에서 과일향이 나는 지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다. 벨기에 VIB 시스템 생물학연구소 연구진은 효모가 과일향을 만드는 이유가 생존을 위해서라는 가설을 세웠다.

효모가 만드는 에틸아세테이트나 페닐에틸 아세테이트 같은 성분은 꽃이나 과일 향을 내는데 이 향이 초파리를 끌어들이고, 초파리를 이용해 효모는 다른 환경으로 널리 퍼질 수 있는 조건을 갖춘다는 이야기다.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효모가 열악한 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곤충을 이용한다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식물이 살아남기 위해 곤충을 끌어들이고 곤충의 몸에 꽃가루를 묻혀서 이동시키듯이 효모도 비슷한 전략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수입·제빵용 효모로 만들던 우리 술…토종효모 발굴로 판 바꿔

이렇게 술을 만들 때 빠져서는 안 되는 효모지만, 정작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거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했다. 국세청에 따르면 효모의 국내 시장 규모는 연 230억원 수준인데, 거의 대부분을 일본이나 유럽에서 수입했다. 한국식품연구원 등 몇몇 공공 연구기관이 소규모로 효모를 발굴해 보급하는 사업을 했지만, 수입산을 대체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대형 경기도농업기술원 지방농업연구사는 “한국식품연구원이나 농촌진흥청이 했던 효모 보급 사업들은 바이오크래프트 같은 기업이 나오기 전에 진행이 돼서 연구 결과를 실용화로 연결하기가 어려웠다”며 “국가사업으로 진행하다 보니 파급이 잘 안되는 어려움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규모가 있는 양조장들도 수입산 효모를 쓰거나 제빵용 효모로 술을 만드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한 양조장 대표는 “대중적으로 유명한 막걸리 중에도 제빵용 효모를 쓰거나 중국 등에서 수입한 효모를 소분해서 쓰는 경우가 많다”며 “국산 양조용 효모라는 대안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다들 쉬쉬하면서도 쓰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국세청 주류면허지원센터는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과 함께 토종효모 균주 6종을 발굴했다. 국세청 주류면허지원센터의 강길란 연구원이 토종효모로 만든 탁주와 약주, 증류식 소주, 맥주의 품질을 확인하고 있다./국세청

변화가 시작된 건 2022년 2월이었다. 국세청 주류면허지원센터와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이 공동 연구를 통해 수입 효모를 대체할 양조용 토종효모 균주 6개를 찾았다. 탁주용 효모 2개, 약주용 효모 2개, 증류주용 효모 1개, 맥주용 효모 1개였다. 장영진 국세청 주류면허지원센터 기술지원과장은 “국내 양조장들이 사용하던 제빵용 효모는 향과 상관없이 알코올을 빨리 만드는 용도였다 보니 술의 향이 좋지 않았다”며 “효모를 만드는 업체가 있긴 있지만 향이나 맛이 거친 경우가 많았고, 시장 자체가 크지 않다보니 투자가 이뤄지기 힘든 영역이어서 정부의 역할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수십 년 동안 되지 않았던 양조용 효모 국산화가 하루아침에 해결될 순 없었다. 토종효모 균주 발굴 작업은 크게 두 단계에 걸쳐 진행됐다. 먼저 국립생물자원관이 2012년부터 2017년 초까지 5년에 걸쳐서 전국의 야생화, 열매, 누룩으로부터 자생 효모 균주를 분리했다. 이렇게 모은 효모 균주가 1700여종에 이른다. 국립생물자원관은 다시 2020년 10월까지 4년 동안 1700여 종의 효모 균주에 대한 유전자 분석 작업을 통해 양조용 효모의 가능성이 있는 88종의 균주를 선별했다.

국세청 주류면허지원센터는 국립생물자원관이 제공한 88종의 균주를 대상으로 2021년 12월까지 4차에 걸쳐서 걸러내는 실험을 진행했다. 효모의 크기와 당분해력, 발효력, 응집성, 개체수 등 13개 항목을 선정해서 이 항목에 걸맞는 효모 33종을 추렸다. 이후 이들 균주를 이용해서 실제로 술을 만드는 시험양조를 거쳐서 만들어진 술의 품질을 분석하는 방식으로 주종별로 5~6종의 후보 균주를 선별했다. 이후 정밀분석과 관능검사, 대용량 양조를 통한 양조 적합성 검사를 통해 최종적으로 6종의 효모 균주를 선정한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은 제주도 서귀포시에 있는 국세청 주류면허지원센터의 실험실에서 진행됐다. 국세청은 주류의 제조·판매 면허관리와 세원관리, 주류 품질·규격관리를 맡고 있다. 국세청 산하 주류면허지원센터가 주류 규격 검사와 주류제조장 시설 점검 등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 전문 역량을 활용해 양조용 효모 국산화라는 성과에도 기여한 것이다.

제주도 서귀포시에 있는 국세청 주류면허지원센터는 국내에서 유통되는 주류의 규격과 품질을 관리하고, 발효 미생물 연구 등을 수행하고 있다. 주류면허지원센터 실험실에 규격 검사를 위해 들어온 술 샘플이 모여 있다./제주=이종현 기자

장영진 과장은 “효모 균주 하나가 양조용으로 적합한 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유전자 분석부터 가스크로마토그래피 같은 다양한 검사를 거쳐야 하고, 최종적으로는 실제 술을 빚어서 품질과 관능 검사를 해야 한다”며 “하나하나에 대한 테스트에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양조용 효모 균주를 선별하는데 4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양조용 효모는 바이오크래프트에 이전돼 대량 생산을 거쳐 실제 양조장에 공급되고 있다. 지금은 액상 효모 형태로만 공급되지만, 국세청 주류면허지원센터는 추가 연구를 통해 건조 효모로도 토종효모 균주를 공급할 계획이다. 김도형 대표는 “포천이동막걸리를 비롯해서 70군데 정도 양조장이 국산 효모를 사용하고 있다”며 “국세청과 환경부가 만든 토종 효모 균주 6개 중 5개는 여러 양조장과 크래프트 비어 제조에 적극적으로 쓰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 술 다양화 위해선 효모 연구 지원도 절실

양조용 토종 효모 균주는 모두 ‘고향’이 있다. 효모 균주 자체가 자연에서 발굴한 미생물이기 때문이다. 탁주용(스위트용) 효모와 약주용(스위트용) 효모의 경우 전남 구례 지리산의 산수유 열매에서 분리했다. 이 효모는 성분 분석 결과 감칠맛을 내는 호박산(Succinic acid)과 장미향을 내는 에틸 페닐 아세테이트 성분이 많아서 자연스러운 달콤함과 풍미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제주도 연동의 누룩에서 찾은 증류주 전용 효모는 퓨젤 오일 함량이 기존의 전통주 효모보다 15% 정도 낮아서 알코올취가 적고 부드럽다는 평가를 받았다.

장영진 과장은 “미생물은 지역의 환경에 맞춰서 진화하기 때문에 어느 지역에서 채취했는지, 꽃에서 채취했는지, 누룩에서 채취했는지에 따라서 효모 균주의 향과 특성이 모두 달라진다”며 “유럽 맥주가 맛과 향이 다양한 건 특성이 다른 수백 가지 종류의 맥주 효모가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토종효모 균주를 발굴할 수록 우리 술도 맛과 향이 다채로워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토종효모 균주를 찾는 건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고 있다. 생물자원을 둘러싼 각국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국산 미생물 자원을 확보하는 게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생물자원의 보호를 천명한 나고야 의정서가 발효되면서 수입 생물유전자원을 이용하는 경우 자원 보유국에 로열티를 지불해야 된다. 아직 양조용 효모에 대해서는 나고야 의정서가 적용되고 있지 않지만, 전문가들은 시간 문제로 본다. 수입산 효모로 막걸리나 약주를 만들 때마다 일본이나 독일에 별도의 로열티를 지불해야 한다는 뜻이다.

김도형 바이오크래프트 대표는 “100가지 종류의 미생물을 찾았다고 해도 그 중에 배양이 가능한 미생물은 하나에 불과하다. 그만큼 좋은 미생물, 효모를 찾는 게 어렵다는 이야기”라며 “지금도 수입산 효모가 있는데 굳이 토종효모 균주를 발굴해서 쓸 필요가 있느냐고 묻는 양조장 관계자가 있는데, 나고야 의정서가 시간 문제인 만큼 불필요한 외화 유출을 막고 토종 미생물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연구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도형 바이오크래프트 대표는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불필요한 외화 유출을 막고 토종 미생물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토종 효모 발굴에 더 많은 연구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이종현 기자

국세청 주류면허지원센터도 양조용 토종효모 균주의 추가 발굴을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국세청 주류면허지원센터는 전국에서 3곳의 지역을 선정해 지역 효모 균주를 발굴하고 전통주 제조업체와 협력해 토종효모 균주로 술을 만드는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장영진 과장은 “효모 균주를 발굴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려면 추가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대형 지방농업연구사는 “국가에서 효모지원사업을 하는 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일본처럼 양조장들이 자체적으로 효모를 발굴하고 사용하는 체계를 만드는 게 장기적으로 필요하다”며 “정부 기관이나 지역의 대학이 양조장과 연계해서 양조장 맞춤형 효모를 발굴하고 양조장의 차별화된 효모를 직접 만들어서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참고자료

Cell Reports(2014), DOI : https://doi.org/10.1016/j.celrep.2014.09.009

국립농업과학원(2019), DOI : https://doi.org/10.23000/TRKO201900016012

Nature Communications(2018), DOI : https://www.nature.com/articles/s41467-018-03293-x

Frontiers in Genetics(2020), DOI : https://doi.org/10.3389/fgene.2020.5827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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