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대통령이 유치한 美반도체기업 땅에 아파트 짓는 정부
오산 택지 후보 포함돼 건립 차질
경기도 오산시에 지을 예정이던 글로벌 반도체 장비 기업의 연구·개발(R&D) 센터가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정부가 2022년 윤석열 대통령 방미를 계기로 유치했다며 대대적으로 홍보한 투자 건이다. 하지만 이 기업이 매입한 부지가 국토교통부가 지정한 공공 택지 후보지에 포함되면서, R&D 센터 건축에 제동이 걸렸기 때문이다.
26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미국의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AMAT)가 경기도 오산에서 매입한 부지가 신규 택지 후보지(오산세교3지구) 안에 들어간 것으로 나타났다. AMAT는 네덜란드의 ASML에 이어 세계 2위 반도체 장비 기업이다. AMAT는 수천억 원을 투자해 2025년 완공을 목표로 반도체 장비 R&D 센터를 지을 계획으로 작년 8월 토지 소유주와 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약 3개월 후 정부가 발표한 약 8만가구 규모의 주택 공급 대책 후보지에 이 땅이 들어가게 됐다. 공공 택지에 포함되면 개발 행위가 금지돼 R&D 센터 건립이 불가능하다.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 택지를 조성하는 정책도 중요하다. 하지만 반도체 경쟁력 강화를 위해 세계 각국이 천문학적 보조금을 지급하며 기업을 유치하는 상황을 감안하면, 대체 부지를 물색하거나 택지 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행정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국토교통부나 산업통상자원부의 구체적 움직임은 없다. 안준모 고려대 교수는 “반도체 등 첨단 산업에 대한 국가 차원의 기획이 없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AMAT는 2022년 9월 연구·개발(R&D) 센터를 국내에 짓는다는 외국인 투자 신고서를 산업통상자원부에 제출했다. AMAT는 반도체 웨이퍼를 가공하는 핵심 공정 관련 장비를 만드는 회사다. 당시 정부는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 일정에 맞춰 AMAT를 포함해 글로벌 기업 7곳에서 11억5000만달러(약 1조600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고 홍보했다. AMAT의 정확한 투자 규모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수천억 원에 달할 것으로 업계는 추산한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세계적 장비 기업이 한국에 R&D 거점을 세우면서 상대적으로 한국이 취약했던 반도체 장비 산업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기대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들과 AMAT의 협력이 강화되는 계기도 될 수 있다.
AMAT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들의 생산 시설이 모여 있는 경기도에서 부지를 물색했다. 처음엔 용인을 고려했지만 한국전력 등과 전력 공급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포기했다. 어렵게 다시 찾은 부지가 오산 가장동이었다. 삼성전자의 생산 시설과 R&D 시설이 있는 평택·화성, SK하이닉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중간 지점이다. AMAT는 부지 1만7938㎡를 지난해 8월 계약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기본 건축 설계까지 끝냈고, 2025년 완공을 목표로 반도체 장비 반입 일정도 세웠다고 한다.
하지만 국토교통부가 지난해 11월 15일 신규 택지 후보지를 발표하면서 일정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AMAT가 매입한 부지가 오산세교3지구 공공 택지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이미 매입 대금을 대부분 치렀고, 마지막 행정적 절차인 등기 이전만 남겨둔 시점이었다. 국토부는 2025년 상반기까지 지구 지정을 완료하고 2027년 사전 청약과 주택사업계획 승인을 추진할 계획이다.
문제는 공공 택지 후보지 발표 이후 개발 행위가 금지된다는 것이다. 정부와 협의해 지구에서 AMAT의 부지를 제외하는 방법도 거론되지만 이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다른 기업과 형평성 문제 때문에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원래 계획대로 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수시로 기업과 접촉하며 투자 진행 상황을 체크하고 있었다”고 했다.
기업이 이주할 대체 부지를 마련하는 방법도 있지만, 원래 계획은 지연될 수밖에 없다. AMAT는 R&D 센터와 관련해서는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오산세교3지구는 반도체 클러스터 배후 도시로 개발될 예정인데, 이런 곳에서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투자가 무산되는 촌극이 벌어지는 상황”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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